• 한국문화사
  • 31권 서구 문화와의 만남
  • 4 ‘서양과학’의 도래와 ‘과학’의 등장
  • 04. ‘서양과학’의 승리: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
문중양

조선 후기 과학의 변동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적인 이해는 서양의 근대과학을 수용하면서 그것이 과거의 중세적인 전통과학을 대체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세부적인 전개 과정에 대한 종래 우리의 이해는 그동안 성급한 판단과 잘못된 시각으로 각색되어진 바가 컸다. 예컨대 실학의 과학사상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해석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일찍이 조선 사회가 전통에서 탈피하여 근대로 전환되는 과정에 전통적 자연인식 체계와는 다른 서양의 근대과학적 자연인식 체계의 싹이 실학에서 보여 진다고 이해되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17세기 이후 실학자들은 근대과학 수용의 주체로서 그들의 자연지식은 전통적 자연인식 체계를 극복했거나 그럴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기대되었다. 조선 후기 전통과학의 변동이 서양과학이라는 외적인 충격에 의해서 시작되었든, 아니면 내재적 변화의 전개과정에서 비롯되었든, 어느 경우에나 한국에서의 근대 과학의 형성은 서양에서 자란 근대과학의 수용 및 정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이해되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의 근대과학 형성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서양의 근대과학이 어떻게 수용되었으며, 그 결과 전통과학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극복’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종래 논의의 이면에 깔려있는 역사적 시각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조선 후기의 전통과학이 서구의 근대적인 과학에 의해서 얼마나 성공적으로 극복되었는지 살펴보려는 여러 시도가 바로 실학 이전의 주자학적 세계관과 자연관, 그리고 사유체계가 중세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실학의 과학사상이 등장하기 이전 조선 지식인들의 자연을 이해하였던 방식은 ‘과학적’이지 않았으며, 실학자들의 주체적인 사상적 변혁을 통해서든, 또는 유입된 서양 자연지식의 확산에 의해서든, ‘비과학적=전통적’이었던 조선 유학자들의 전통적(성리학적) 자연이해는 점진적으로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전통과학=비과학적’ 대(對) ‘근대과학=과학적=객관적’의 대립구도를 역사발전 과정에 상정한 것으로, 서양의 근대과학을 적극 수용하였던 노력은 ‘역사의 발전’으로, 반대로 전통적인 사유체계를 고집하였던 부분은 ‘역사의 회귀’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 그와 같은 현상은 적어도 조선시대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이후 조선 유학자들의 자연에 대한 이해는 조선 성리학의 성숙과 함께 지속적으로 깊어지고 체계화되었던 것이다. 즉, 우리의 침체되어 있던 전통과학이 서양과학 수용의 충격으로 비로소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우주설(宇宙說)』(1631)에서 잘 드러나듯이 서양의 근대과학이 유입되어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의 전통과학, 특히 자연이해의 방식과 태도는 충분히 성숙해 있었던 것이다.231) 필자는 그러한 조선 유학자들의 성숙한 자연에 대한 이해의 모습을 다음 논문에서 보여주려고 했다(문중양, 「16·17세기 조선 우주론의 상수학적 성격—서경덕과 장현광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34, 1999, pp.95∼124). 또한, 서양과학 유입 이후 전통과학과 서양과학이 대립적이었다는 것도 사실과 달랐다. 최근의 상수학(象數學) 적 우주론 연구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우주론 논의가 상식적으로 이해하던 것처럼, 즉 서양의 과학적인 우주론을 수용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자연인식 체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전통적인 성리학적 자연인식 체계의 고도화와 세련화를 통해서 서양과학이 담고 있는 자연에 관한 객관적 사실들을 전통과학의 체계로 회통(會通)하면서 전개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232) 박권수, 「徐命膺의 易學的 天文觀」, 『한국과학사학회지』 20권 1호, 1998 ; 문중양, 「18세기 조선 실학자의 자연지식의 성격—象數學的 宇宙論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사학회지』 21권 1호, 1999, pp.27∼57 ; 문중양, 「조선 후기 자연지식의 변화패턴; 실학 속의 자연지식, 과학성과 근대성에 대한 시론적 고찰」, 『大東文化硏究』 38, 성균관대학교, 2001를 들 수 있다.

17세기 이후 실학자들의 자연지식은 그 이전 시기의 자연지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또는 실학적 자연이해의 성장과정을 전통적인 자연관을 부정하고 서양과학적인 자연이해를 추구하였던 불연속적인 비약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여야 한다. 대신에 실학적 자연이해의 성장을 전통적인 성리학적 자연인식 체계의 전개과정이라는 연속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한 사실을 작은 예를 통해서 살펴보겠다. 바로 조선에 전래된 서양 천문학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설(地球說)이나 지동설(地動說), 그리고 만유인력(萬有引力)과 같은 원리들을 전통적인 기(氣)의 개념과 메카니즘으로 설명해 나갔던 조선 유학자들의 사색이 그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조선 유학자들이 서양과학의 새로운 원리와 사실들을 상수학적 자연인식 체계라는 전통적인 성리학적 패러다임으로 회통하려고 하였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기의 개념과 메카니즘이라는 또 다른 성리학적 자연인식 체계로 재해석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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