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1 토기의 등장과 확산
  • 01. 토기란 무엇인가?
최종택

토기(土器)란 문자 그대로 흙을 빚어 만든 그릇을 일컫는 말이다. 토기의 원료인 점토는 물과 섞으면 자유롭게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지만 일단 가열되면 단단하게 굳어서 변형되지 않는다. 이러한 토기의 특성 때문에 지난 1만여 년 동안 인류는 음식을 조리하고, 담아서 먹거나, 저장하고, 운반하는 데 토기를 사용해 왔다.

토기는 점토를 빚어 만든 다른 형태인 자기(磁器)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낮은 온도에서 구워진 토기는 미세한 구멍이 많은 다공질 그릇을 일컫는 반면에, 표면에 유약을 발라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자기는 그릇 전체가 유리질화된 것을 의미한다.

도자기라는 말은 점토를 빚어 만든 그릇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이를 구분하는 명칭은 나라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토기와 자기로 구분하지만 중국에서는 도기(陶器)와 자기로 구분하고, 서양에서는 토기(earthenware pottery)와 석기(炻器, stoneware pottery), 자기(porcelain)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은 원료 점토의 성분과 표면에 유약을 발랐는지 여부, 구워진 온도 등의 차이에 따른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그릇의 단단한 정도와 액체를 흡수하는 정도의 차이를 반영하는 구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분야별로 사용하는 용어에 차이가 있는데, 고고학 분야에서는 토기와 자기라는 구분을 사용하지만, 미술사 분야에서는 도기와 자기라는 구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낮은 온도에서 구워진 무른 질의 선사시대 그릇은 토기, 삼국시대의 단단한 석기질 토기는 도기, 그릇 전체가 유리질화된 것은 자기로 구분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라 자기 발생 이전의 그릇을 일괄하여 토기로 표현하기로 한다.

인류가 흙을 빚어 토기를 만든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0년 전의 유적인 체코 공화국의 돌니 베스토니체(Dolni Vestonice)에서는 점토를 빚어서 구운 여성상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그릇으로서의 토기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보다 한참 뒤의 일로 지금으로부터 약 12,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동굴 유적에서이다. 이때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비슷하거나 조금 늦은 시기에 우리나라 동남해안 지역과 연해주 지역,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 중국 동북부와 남부 지역 등 세계 각지에서 토기가 제작되기 시작한다.1) 칼라 시노폴리 저, 이성주 역, 『토기연구법(Approaches to Archaeological Ceramics)』, 도서출판 고고, 2008, p.28의 그림 1-1 참조.

이처럼 토기의 제작은 신석기시대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 과거 500만 년 동안 인간은 추운 빙하기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전 무렵부터 기후가 점차 따뜻해져 오늘날과 비슷한 기후환경이 형성되었다. 따뜻해지자 추운 기후에 적응한 큰 짐승들은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식량자원은 물론 생계방식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작고 날랜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화살과 같은 새로운 도구를 발명하였으며, 짐승을 길러 가축화하고 식물을 개량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아울러 식량자원을 따라 떠돌아다니던 구석기시대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정착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식량생산과 정착생활로 인해 저장용 그릇의 필요성이 높아졌으며, 단단하고 형태가 변하지 않는 토기는 이러한 용도에 적합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저장용 그릇이 필요하였지만 이동생활을 하던 구석기시대에는 이동성이 떨어지는 토기보다는 짐승의 가죽이나 식물 넝쿨로 만든 도구들이 더 유용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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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 제작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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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 제작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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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를 발명하게 된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0만 년 전 인류가 불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대한 오랜 관찰과 경험적 지식이 축적된 결과로 생각된다. 즉, 불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 물과 섞이면 자유롭게 형태가 변형되고, 불에 구워지면 단단해지는 점토의 성질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석기시대 인류는 석기 이외에도 나뭇가지나 넝쿨, 짐승의 가죽이나 뼈 등으로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이고, 이 중에는 넝쿨을 엮어서 만든 그릇도 있었을 것이다. 넝쿨로 만든 바구니 형태의 그릇이 흙이 묻은 채 방치되었다가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 바구니 형태의 토기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또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적당히 마른 후 우연한 기회에 불이 나서 단단하게 굳어져 그릇 모양의 형태가 남게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그야말로 가정에 불과하지만 토기의 발명은 점토와 불에 대한 오랜 관찰을 통한 경험적 지식이 축적된 결과이며, 신석기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시작된 생활방식의 변화는 토기의 발명을 앞당긴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는 신석기시대 토기의 발명과 식량 생산 및 정착생활, 마제석기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인류문명 발달사에 있어서 첫 번째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하여 ‘신석기혁명’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처럼 토기의 발명은 문명 발생의 여명기에 일어난 획기적인 사건이며, 현재까지도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생필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토기에는 그 시대의 제작기술과 생활방식 및 문화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어떤 이의 사람됨을 그릇에 비유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토기는 고고학자들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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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에서 토기가 출토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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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는 비록 깨지기는 해도 부식되지는 않으므로 형태를 보존하고 있어 신석기시대 이후의 거의 모든 유적에서 출토된다. 토기는 가죽이나 식물로 만든 용기에 비해 무겁고 깨어지기 쉬어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우므로 공간적으로 제한된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때 문에 토기에는 강한 지역색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토기는 깨어지기 쉬운 특성 때문에 제작과 폐기의 순환이 빠르며, 시간에 따른 제작기술과 형태의 변화가 심하다. 토기 고유의 기능은 음식물을 조리하고, 저장하거나 운반하는 것이지만 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형태가 다르다. 음식을 담아 제사를 지내거나 죽은 자를 위해 무덤에 함께 묻어주기도 하며, 토기로 종교적 상징물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고고학자들이 과거 사회를 연구하는 데 토기보다 유용한 자료는 없다.

토기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제작기술에 관한 것이다. 토기 주원료인 점토의 특성과 원산지, 토기를 빚는 방법과 구운 방법, 구운 온도 등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하여 토기를 만들던 기술체계를 연구한다. 더불어 토기의 형태적 특징과 사용한 흔적을 분석하여 토기의 기능을 추론하고, 주변 지역의 토기와 비교를 통하여 토기의 분배와 교역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일반적으로 선사시대의 토기는 특별한 전문 조직이 없이 집안에서 제작되었지만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는 국가에서 토기의 생산과 분배를 주관하고 통제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과거의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20세기 초 일본인들에 의해 한반도의 고고학 연구가 시작되면서 토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등 혼란이 있었으며, 이 문제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 청동기시대의 존재가 확인된 이후 비로소 해결되었다. 20세기 전반의 연구는 토기의 기원과 생산자 및 사용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한반도 고고학의 시대 구분의 골격이 갖추어지면서 연구자들의 관심은 편년의 문제로 옮겨졌다. 편년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토기 연구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 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토기 가마의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토기 제작기술의 해명을 위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더불어 토기에 대한 자연과학적 분석과 출토된 토기 자료들의 통계 분석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실험을 통한 토기제작 기술의 복원이 시도되는 등 연구의 관점이 다양화되었다. 또한, 한반도 토기에 대한 연구의 진전에 따라 한반도 주변의 중국 동북 지방, 연해주 및 일본 각지의 토기들과의 비교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재 한국 고고학 분야에서 토기의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관점 하에 다루어지고 있다. 토기문화의 기원 및 형성 과정과 편년에 대한 연구는 전통적이면서도 현재까지도 핵심적인 연구주제이다. 특히, 편년 분야의 연구에는 상당한 진척이 있어서 삼국시대의 경우 25년 또는 50년을 단위로 하는 안정적인 편년체계가 구축되었다.

토기의 제작기술 역시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 분야의 하나이며, 선사시대 토기와 역사시대 토기의 변화 과정을 포함한 각 시대별·지역별 토기 제작기술의 변화 과정이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토기 제작기술의 복원은 토기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으며, 집단의 이동이나 집단 간의 접촉에 의한 문화 변동의 연구도 토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삼국시대 토기양식의 형성이 고대국가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아 고대국가의 형성 시점을 추론하기도 하고, 특정한 토기양식의 확산과정을 통해 고대국가 영역의 확대를 유추하는 등, 토기 연구는 다양한 관점 하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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