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1 토기의 등장과 확산
  • 02. 선사시대의 토기 제작기술
최종택

흔히 토기를 질그릇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질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토기를 구성하는 주원료는 질흙, 즉 점토이지만 토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그 밖에 다른 물질들과 도구들이 필요하다. 토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점토이다. 점토는 암석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고운 입자의 흙으로 입자의 크기는 0.004㎜ 이하이다. 암석이 풍화작용을 통해 분해되면 실리카(규소)나 알루미늄과 같은 광물질이 만들어지며, 물과 결합하여 점토광물이 만들어진다.

그 밖에 점토에는 포타슘(칼륨), 나트륨, 철분, 마그네슘 등의 광물질과 기타 미량원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점토에 포함되어 있는 미량원소의 종류는 점토의 원재료인 모암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며, 이러한 까닭에 토기에 포함된 미량원소의 함량을 분석하면 점토의 원산지를 밝혀낼 수 있다.

점토는 포함된 광물질의 조성과 배열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점토는 운모와 같이 몇 개의 층을 가진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보통 2층 또는 3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 2층 구조의 점토로는 카올 리나이트, 3층 구조의 점토로는 몽모릴로나이트(맥타이트)와 일라이트라고 불리는 것이 대표적인데, 카올리나이트가 가장 흔한 형태이며, 순도가 높은 카올리나이트는 자기의 원료로 사용된다.2) 칼라 시노폴리 저, 이성주 역, 앞의 책, p.39.

점토의 고운 입자는 표면에 많은 양의 수분이 흡착될 수 있도록 하여 손으로 주물러 빚은 대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가소성(可塑性)을 갖게 되는데, 순순한 점토 입자만으로는 가소성이 떨어진다. 흔히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공작용 점토만으로는 동물이나 사람과 같은 형태를 만들기 어려워 철사나 나무 같은 보조물을 이용해 골격을 만들고 점토를 붙여서 형태를 만드는 것도 가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사시대에도 점토의 가소성을 높이기 위해 원료 점토에 입자가 굵은 모래(석영)나 석면, 장석, 운모, 석고, 조개껍데기 등 무기물이나 식물의 씨앗, 껍질, 재 등의 유기물, 그리고 깨진 토기 조각을 잘게 부수어 넣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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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바탕흙의 현미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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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물질들은 원료점토의 가소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형태를 갖춘 토기를 말리거나 굽는 과정에서 부피가 줄어드는 정도를 완화시켜 파손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직 접 불에 올려놓고 조리를 하는 토기에는 굵은 입자의 모래알갱이가 포함된 경우가 많은데, 이는 토기가 열을 받았을 때 부피가 팽창하는 정도를 줄여주어 파손을 막고 열 전달을 빠르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점토의 가소성을 높이고, 파손을 줄이기 위해 추가하는 이러한 물질을 보강제(temper, 완화제)라고 하는데, 일부는 원료 점토에 포함된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원료 점토에 포함되는 보강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보강제의 분석을 통해 토기의 제작시기와 제작지를 추정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토기의 원료가 되는 점토에는 순수한 점토 입자와 물 외에 다양한 물질이 보강제로 첨가되는데, 이 세 가지 물질을 합쳐서 바탕흙[胎土]이라고 부른다.

토기를 만드는 작업은 가장 중요한 원료인 점토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선사시대의 도공은 운반수단의 제약으로 먼 거리로부터 원료 점토를 운반해 오기 어려웠으므로 주로 마을 주변에서 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보강제는 점토에 비해 필요한 양이 적고, 산지가 제한적일 경우가 많으므로 비교적 먼 거리에서 운반해 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토기 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토기의 소성에 필요한 연료도 중요한데, 부피도 크고 무거우므로 주변에서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러 민족지 연구에 따르면 선사시대 토기를 소성하기 위한 연료로는 나뭇가지 외에도 볏짚과 같은 식물의 줄기나 짐승의 배설물도 함께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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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토기 제작법
선사시대 토기 제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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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점토가 준비되면 다음에는 바탕흙을 준비한다. 선사시대에는 순도 높은 점토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채취된 점토에는 자갈 같은 굵은 입자의 광물질과 유기물 등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를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갈이나 커다란 입자의 불순물들은 손으로 일일이 골라낼 수 있지만 이보다 작은 입자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다른 형태의 작업이 필요하다. 많이 사용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원료점토를 말린 다음 빻아서 입자를 고르게 한 후 체로 걸러내는 방법이다. 또는 원료점토나 빻은 점토를 물에 풀어서 잘 저은 후 수면 위에 떠오른 가벼운 유기물과 바닥에 가라앉은 무겁고 굵은 입자의 불순물을 제거하기도 하는데 이를 수비(水飛)라고 한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나면 점토의 가소성을 높이기 위해 보강제를 첨가해야 하는데, 보강제의 종류와 양은 제작할 그릇의 형태와 기능에 따라 선택한다. 일반적으로 점토에 첨가하는 보강제 양은 바탕흙의 50% 이내로 알려져 있으며, 조리용기처럼 열을 직접 받는 토기에는 굵은 모래알갱이나 석면 등을 보강제로 첨가하며, 다른 종류의 그릇에 비해 첨가하는 양도 많다. 그 다음에는 보강제가 첨가된 점토를 적당양의 물과 함께 골고루 반죽하는데, 이 과정에서 점토 입자와 보강제 사이에 공기가 남아있으면 소성과정에서 부풀어 오르거나 찌그러지게 되므로 발로 밟거나 망치로 두드리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작업 과정을 통해 바탕흙이 준비되면 본격적으로 그릇의 형태를 빚는데 이를 성형(成形)이라고 한다. 보통 성형 과정은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1차 성형과 만들어진 그릇의 표면에 장식을 하거나 문질러 광택을 내는 등의 2차 성형으로 나뉜다. 토기를 빚는 가장 단순한 방식은 준비된 바탕흙을 손으로 주물러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손으로 점토 덩이를 감싸 잡고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오목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도 아가리가 넓은 둥근 형태의 그릇을 만들 수는 있으나 큰 그릇을 만들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손빚기법[手捏法]은 작은 그릇을 만드는 데 적당한 방법이며, 선사시대 때 주로 사용한 방식이다.

이보다 좀 더 발전된 성형법으로는 바탕흙을 편평한 바닥에 놓고 손으로 문질러서 가늘고 긴 점토 띠를 만든 후 용수철처럼 연속으로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서리기법[捲上法]이라고 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테쌓기법[輪積法]이 있는데, 바탕흙을 바닥에 놓고 눌러서 납작한 점토 띠로 만든 후 한 층씩 쌓아올려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점토 띠를 만들어 쌓아올리는 것은 같으나 서리기법은 가늘고 긴 점토 띠를 계속해서 돌려 쌓는 것이고, 테쌓기법은 폭이 넓은 점토 테를 한 층씩 쌓는다는 차이가 있다. 점토 띠의 폭은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7㎝가량이며, 아주 큰 토기의 경우 15㎝ 가량 되는 것도 있다. 서리기와 테쌓기는 손빚기에 비해 상당히 발전된 방식으로 비교적 큰 그릇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래위로 쌓인 점토 띠를 잘 접착하지 않으면 말리거나 구울 때 파손될 위험이 높다. 단단히 접착한 경우에도 다른 부위에 비해 약하므로 사용 중에 파손되는 경우도 많다. 출토된 선사시대 토기의 경우 점토 띠의 상하 접착 면이 떨어져 깨진 것이 많은 것이 그 이유다. 이러한 성형법은 토기의 부위별로 다르게 적용되기도 하는데, 둥근 바닥면은 손빚기로 제작하고 위쪽은 테쌓기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 외에도 이미 제작된 틀에 점토를 붙여 찍어내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선사시대 토기는 편평한 바닥이나 작업대 위에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홈이 파인 바닥에 둥근 판을 놓고 손으로 돌려가면서 작업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회전판은 흔히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는 물레[轆轤]의 초보적인 형태인데, 둥근 형태의 토기를 제작하는 데 편리할 뿐만 아니라 작업 속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삼국시대에 물레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물레는 발로 회전판을 돌리면서 두 손으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에는 회전하는 물레의 원심력을 이용해 점 토 덩이로부터 직접 토기의 형태를 뽑아 올리는데, 고려시대 이후의 자기는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형이 이루어진다.

이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토기의 일차적인 형태가 완성되면 토기 표면을 다듬는 작업이 이어진다. 손빚기나 서리기, 테쌓기 등으로 성형된 토기의 표면은 매끄럽지 못하거나 두께도 고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새라고 불리는 나무 칼 등의 도구를 이용해 표면을 긁어내거나 깎아내어 고르게 다듬는다. 또는 넓적한 나무판을 이용해 토기 표면을 두드려 모양을 조정하는 타날(打捺)기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토기 표면을 두드릴 때는 버섯같이 생긴 내박자(內拍子)를 그릇 안쪽에 대고 바깥쪽을 넓적한 나무판 등으로 두드리는데, 이때 두드리는 판에 문살무늬를 새기거나 노끈을 감아서 두드리면 토기 표면에 문살무늬나 노끈무늬가 새겨진다. 타날기법을 이용하면, 그릇의 두께를 일정하게 하는 것 외에도 점토에 남아 있는 공기가 제거되고, 기벽을 단단하게 하여 소성과정 중에 파손율을 낮출 수 있는 효과 등이 있으며, 몸통의 모양을 둥글게 늘리거나 부피를 크게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때문에 토기 제작기술이 전문화되면 토기의 형태를 조정하는 데 타날기법이 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삼국시대 이후에 제작된 토기에는 거의 모두 타날기법이 사용되었다.

2차 성형을 통해 토기 표면이 다듬어지면 고운 점토를 묽게 풀어 표면에 바르거나 채색을 하기도 하며, 무늬를 새기거나 장식을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 토기를 장식하는 방법이나 무늬의 종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특색을 띠는데, 이를 통해 토기의 제작시기와 제작지 등을 밝혀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석기시대의 토기에서는 기하학적무늬가 주로 새겨지며, 청동기시대에는 무늬가 없는 토기가 주를 이룬다. 원삼국시대 이후에는 토기 표면을 두드려 조정할 때 생긴 노끈무늬나 문살무늬 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예 가 많은데, 이는 장식효과 뿐만 아니라 조리에 이용할 때 불이 닿는 표면적을 늘려 열효율을 높이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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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식 가마 토기 소성 실험
구덩식 가마 토기 소성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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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반건조된 상태의 토기 표면을 단단한 도구로 문지르거나 특정 성분의 물질을 바르고 문지르기도 한다. 이처럼 표면을 문지르면 소성 후에 표면이 반짝이며 광택이 나는데, 이를 통해 토기 표면의 미세한 구멍을 차단하여 흡수율을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는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문질러 광택을 낸 것이고, 초기철기시대의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는 흑연을 바르고 문질러 광택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그밖에 옹기의 일종인 오지그릇과 같이 유약을 바르지 않고 소성 마무리 단계에서 젖은 솔잎 등을 태워 그 연기가 토기 표면에 달라붙도록 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연기가 토기 표면에 잘 달라붙도록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착탄법(着炭法) 역시 토기 표면의 구멍을 막아 흡수율을 낮추기 위해 고안된 방법 중의 하나이다.

형태를 마무리하고 장식이 완성된 토기는 상당량의 수분을 함유 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구우면 갑작스런 수분의 증발로 뒤틀리거나 파손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토기를 소성하기 전에 충분히 건조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토기를 건조할 때는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장소를 이용하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토기를 돌려놓아 전체적으로 고르게 건조되도록 해야 한다. 건조 과정을 통해 바탕흙에 포함된 수분은 대부분 증발하지만 점토 입자의 결정구조에 단단히 흡착된 결합수(結合水)는 남아 있으며, 이는 소성 과정에서 증발한다.

건조가 완료되면 토기 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소성(燒成) 작업을 한다. 소성은 토기에 열을 가하여 바탕흙의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켜 단단하게 하는 과정으로 다양한 시설과 방법이 사용된다.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방법은 야외에서 별다른 시설 없이 연료와 토기를 쌓아놓고 굽는 방법으로 이를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데, 이러한 방법으로는 높은 온도를 내기 어렵다. 야외에서 토기를 구울 때는 땅바닥을 약간 파서 웅덩이를 만들기도 하는데 온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온도를 높이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는 연료와 토기를 쌓은 후 주변을 볏짚 등으로 둘러싸고 진흙을 바른 후 불을 피우는 방법이 있는데, 앞의 두 방법에 비해 훨씬 높은 온도를 낼 수 있다. 온도를 높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밀폐된 가마를 만드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원삼국시대에 들어와서야 발달된 구조의 가마가 등장한다.

토기를 소성할 때 온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탕흙에 포함된 점토광물이 온도에 따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고온에서 구울 경우 바탕흙에 포함된 실리카 등이 녹아 유리질화 되어 토기가 훨씬 단단해진다. 일반적으로 섭씨 500도 정도의 온도에서 점토광물의 결정구조에 변화가 시작되며, 900도가 넘으면 점토광물의 본래 구조를 잃고 새로운 규산질 광물로 변화된다. 동시에 규산질이 다른 산화물과 함께 녹아내리는 유리질화 현상이 일어나 토기 표면에 투명한 피막이 형성되고 광택을 내게 된다. 그 밖에 바탕흙에 포함된 불순물이나 비가소성 입자들도 온도에 반응하여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때문에 선사시대의 토기 조각을 분석하여 특정 광물질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면 토기를 구운 온도를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섭씨 750도 이상이면 점토 입자에 흡착된 결합수가 완전히 증발되며, 석영 입자는 573도, 867도, 1250도 등 세 단계에 걸쳐 결정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일라이트(illite)라는 광물질은 700도가 넘으면 변화를 일으킨다.3) 칼라 시노폴리 저, 이성주 역, 앞의 책, p.64.

이러한 점토광물은 모든 점토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므로 만약 어떤 토기 조각을 분석하여 일라이트라는 광물질이 확인된다면 이 토기는 700도 이하에서 소성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 차례의 분석과 실험 결과를 통해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토기는 대략 900도 미만에서 소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성 과정에서 토기의 강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소성 온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소성 지속 시간과 소성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소성 지속 시간은 연료에 불을 붙인 후 가열이 끝나는 시점까지 걸리는 시간 또는 소성이 시작된 후부터 최고 온도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소성이 빠르게 진행될 경우 바탕흙에 남아 있던 수분이나 각종 휘발성 물질이 급격히 빠져나가 그릇이 찌그러지거나 파손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며, 냉각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사시대 노천요의 경우 소성 지속 시간은 수십 분에 불과하지만 자기 가마의 경우 일주일 가량 걸리기도 한다.

소성 분위기는 소성 과정에서 공기의 소통여부와 관련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성이 이루어지는 동안 산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느냐 아니냐를 의미한다. 토기를 소성할 때 산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면 바탕흙에 포함된 철분 등이 산화되어 토기는 붉은 색조를 띠게 되고, 산소의 공급이 차단되면 반대로 환원반응이 일어나 회색이나 흑색 등 어두운 빛을 띠게 된다. 물론 토기의 색깔은 원료점토의 성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소성 분위기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선사시대의 토기는 대체로 개방된 야외의 노천요에서 구워진 것으로 산화분위기에서 제작되어 붉은색을 띠고, 밀폐된 가마가 등장한 이후의 토기들은 대체로 회색이나 회청색을 띠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성분위기는 토기의 색깔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릇의 경도나 흡수율 및 수축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소성이 끝나고 냉각된 토기는 표면에 붙은 재나 숯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등 간단한 처리를 거친 후 사용되지만 목탄이나 타르 등을 바르기도 한다. 소성 후에 토기 표면에 특정한 처리를 하는 것은 대체로 흡수율을 낮추기 위해서다. 물론 자기의 경우에는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를 하지만 선사시대의 토기는 1차 소성으로 제작이 완료된다. 완성된 토기는 제작지 주변이나 제작자가 직접 사용하기도 하지만 물물교환이나 시장을 통해 분배되기도 하고, 주문자에게 납품되기도 하는데, 대체로 선사시대의 토기는 제작지 주변에서 사용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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