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1 토기의 등장과 확산
  • 03. 한반도 최초의 토기
최종택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8,000여 년 전에 사용되기 시작한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토기가 한반도 남부 지역과 인접한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많은 고고학자들은 한반도에서 처음 토기가 만들어진 것이 언제인가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1980년대에 들어와 강원도 동해안의 오산리유적에서 바닥이 납작한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가 출토되었는데, 연대를 측정해 본 결과 빗살무늬토기보다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밖에 남해안 일대의 조개무지유적의 발굴을 통해 이보다 더 오래된 무늬가 없는 토기의 존재가 밝혀지기도 하였지만 절대연대를 밝혀줄 자료가 없었다. 그런데 1994년 제주도의 고산리유적에서 새로운 토기가 출토되면서 한반도 최초의 토기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제시되었다.4) 강창화·오연숙, 『제주고산리유적』, 제주대학교 박물관, 2003. 제주도에서 출토된 새로운 양식의 토기는 유적의 이름을 따서 ‘고산리식토기’로 명명되었는데, 그 특징이 일본 규슈 지역에서 출토되는 세계 최초의 토기와 유사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다.

확대보기
고산리식토기
고산리식토기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고산리 유적 화살촉
고산리 유적 화살촉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고산리유적 발굴조사 광경
고산리유적 발굴조사 광경
팝업창 닫기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진 규슈 지역의 후쿠이[福井] 동굴이나 카미쿠로이와[上黑岩] 동굴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바탕흙에 식물 줄기 등을 섞어서 만들었던 흔적이 몸통에 남아 있고, 아가리와 몸통 위쪽에 덧무늬를 붙여 장식하며, 후기 구석기시대 이후 유행하는 세석기(細石器)와 함께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산리식토기도 이와 같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데, 모래가 섞인 거친 점토에 가는 식물 줄기를 보강제로 섞어 성형한 뒤 저온에서 구운 토기로 좀돌날몸돌[細石刃石核]과 좀돌날[細石刃] 등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통 세석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토기가 출토되는 층은 약 6,000년 전에 분출한 아카호야 화산재층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산리식토기가 만들어진 것은 이보 다 훨씬 더 이전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산리식토기를 발열광연대측정법(T-L dating)으로 측정하면 지금으로부터 10,500년 전이라는 연대가 얻어지고 있다.5) 姜昌和, 「濟州地方 初期 新石器文化의 形成과 發展」, 『제26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요지』, 한국고고학회, 2002, p.24. 이러한 연구결과 고산리식토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제작된 한반도 최고의 토기로 밝혀지고 있으며, 이러한 연대는 세계 최초의 토기로 알려진 일본 규슈 지방의 죠몬시대[繩文時代] 초창기 토기들과 유사한 것이다.

한편, 러시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의 여러 유적에서도 고산리식토기와 유사한 토기와 세석기들이 함께 출토되고 있으며, 연대도 비슷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자료를 통해 연해주와 한반도 동남해안, 일본 규슈 지역을 잇는 지역에서 동일한 특징의 토기들이 세석기와 함께 출토되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지질환경의 변화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인류의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약 500만년 동안은 빙하기로 현재보다 바다 면적이 훨씬 좁았다. 빙하기가 끝난 후 기후가 점차 따뜻해지자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늘어나면서 반대로 육지의 면적이 점차 줄어들었다. 토기의 제작이 시작되는 15,000년 전쯤에는 황해는 큰 강이 흐르는 육지였으며, 동해는 커다란 호수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6) 尹明哲, 「韓國 黃海沿岸의 第四紀後期 및 홀로세(現世)의 海水面과 氣候」, 『黃海沿岸의 환경과 문화』, 학연문화사, 1987. 때문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및 일본 규슈 지역 일대는 비슷한 환경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같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토기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고산리식토기와 같은 제작 전통의 토기는 제주도의 김녕리유적과 경상북도 청도군 오진리유적 등지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며, 이와 같이 점토에 식물의 줄기 등 유기물을 섞어서 만든 무늬가 없는 토기를 원시무문토기로 부르기도 한다. 고산리식토기에 이어 덧무늬토기와 지자문토기(之字文土器) 등이 출토되는데, 모두 신석기시대의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보다 먼저 유행한 토기들이다.

확대보기
덧무늬토기
덧무늬토기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덧무늬토기
덧무늬토기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아가리무늬토기
아가리무늬토기
팝업창 닫기

덧무늬토기는 아가리와 몸통 위쪽에 가는 점토 띠를 덧붙이거나 토기 표면을 손끝으로 집어 눌러서 장식한 납작바닥의 바리 모양의 토기이다. 무늬는 아가리를 따라 몇 줄의 점토 띠를 평행하게 덧붙인 평행선문과 아가리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덧붙인 삼각형무늬, 또는 이 둘을 결합한 것 등 단순하다. 그 밖에 덧붙인 점토 띠를 손으로 눌러 눈을 새기기도 한다. 덧무늬토기는 부산과 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에서 많이 출토되며, 강원도 동해안의 오산리유적이나 고산리유적을 포함한 제주도에서도 출토된다.

덧무늬토기는 고산리식토기와 같은 시기에 등장하였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보다는 약간 늦은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따르면 덧무늬토기는 대략 기원전 6,000∼5,000년 사이에 유행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7) 한반도 융기문 토기와 관련된 방사성탄소연대 값은 동해안의 오산리유적 7,050±120B.P., 남해안의 상노대도패총 6,430±180B.P., 동삼동패총 최하층 5,280±140B.P., 5,500±100B.P., 5,160±120B.P., 5,190±130B.P., 송도패총 Ⅲ-C층 5,440±170B.P., 송도패총 Ⅳ층 5,430±170B.P. 등이 대표적이다(吳蓮淑, 「濟州道 新石器時代 土器의 形式과 時期區分」, 『湖南考古學報』 12, 2000, p.61). 한편, 유사한 형태의 덧무늬토기가 일본에도 있어서 관심을 모았는데, 종래에는 한반도의 덧무늬토기가 일본 죠몬시대[繩文時代] 초창기 도도로끼식토기[轟式土器]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해석하였 다. 하지만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가 축적됨에 따라 한반도 덧무늬토기의 상한연대가 도도로끼식토기보다 500∼600년 정도 앞서고 있어서 이러한 견해는 부정되고 있다.8) 任孝宰, 「新石器時代 韓·日文化交流」, 『韓國史論』 16, 國史編纂委員會, 1986. 현재 한반도 덧무늬토기는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의 덧무늬토기 문화가 한반도 동북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지자문토기는 납작바닥의 바리 모양 또는 항아리 모양의 토기로서 동체부에 ‘之’자와 같은 지그재그 무늬가 연속적으로 시문되는 토기이다. 주로 남해안과 동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며 일부는 중부내륙 지방에서도 출토되는데, 연대는 덧무늬토기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무늬의 토기가 중국 동북 지방 랴오허[遼河] 유역에서도 많이 출토되고 있어서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에 양 지역 사이에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빗살무늬토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의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에는 한반도 동북해안에서 남해안에 걸쳐 끝이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아가리에 짧은 무늬를 눌러 새긴 납작바닥의 아가리무늬토기가 유행하였다.

이상을 요약하면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토기가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 최초의 토기는 식물 줄기가 포함된 거친 바탕흙의 원시무문토기 또는 고산리식토기이며, 후기 구석기시대 전통의 세석기와 함께 출토된다. 한편, 이와 유사한 형태의 토기가 러시아 연해주 지역과 일본 규슈 지역에서도 유행하였으며 이는 유사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생각된다. 최초의 토기가 등장한 이후 덧무늬토기와 지자문토기, 아가리무늬토기 등이 유행하는데, 이러한 유물의 조합상은 러시아 연해주 아무르강 유역에서 중국의 동북 지방, 한반도, 일본의 규슈 지역에 걸친 동북아시아 초기 신석기문화 단계의 공통된 특징이며,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도 이와 같은 전통의 산물로 생각되고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