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2 토기 제작전통의 형성과 발전
  • 03. 자기발생의 전야, 통일신라시대
  • 생활문화와 토기
이성주

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은 무언가를 담는 용기이고 그 무언가는 음식물인 경우가 100%는 아니어도 그에 가까울 것이다. 음식물을 저장하고 운반하고 조리하고 식사할 때 사용하는 그릇이 토기요 자기인 셈이며 음식과 관련된 생활방식이 그릇의 종류나 질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물론 목기나 금속기도 많이 사용되며 그 사회의 생활방식에 따라 어떤 재질의 그릇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통일신라시대는 생활방식의 커다란 변화가 이루어진 시대이다. 통일신라의 귀족생활의 발전으로 인해 음식의 저장, 조리, 식사 생활에서의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그릇의 사용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시대였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매병모양과 원통모양이 결합된 형태의 토기병은 그릇의 높이가 87㎝에 달하는 것이 있고 좀 작지만 그릇 높이가 59㎝의 매병모양토기에는 ‘사두오도(四斗五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83) 國立中央博物館, 『統一新羅』, 國立中央博物館, p.154. 대형이란 점에서 저장 혹은 운반용 그릇일 것이고 ‘사두오도’라는 명문은 용량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긴 목을 가졌다는 점에서 술과 같은 액체를 저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전문 액체 저장의 그릇은 새로운 생활문화의 반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같은 안압지에서 나온 높이 147㎝의 대형 저장용 독에도 ‘십구팔옹(十口八甕)’이란 명문이 새겨있는데 열 식구가 겨울을 나려면 8개의 독이 필요하다는 뜻의 “十口之家 八甕過冬”의 줄임말로 생각되는데 곡식저장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84) 洪潽植, 앞의 글,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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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매병 모양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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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병 모양 토기의 명문
매병 모양 토기의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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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 달린 솥
세발 달린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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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기구에 있어서도 역시 통일신라에서는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종류의 조리용기가 사용되는 것 같다. 경주 동천동 왕경에서 발굴된 세발달린 솥과 같은 경우, 사실 고신라 시기에는 이러한 이동식 조리형 토기가 사용된 바 없지만 음식조리문화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채용된 그릇으로 보인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풍로와 같은 경우, 삼국시대에도 이동식 부뚜막이 있지만 실내에서 숯불과 같은 연료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데우거나 끓이는데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된다.

특히,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차를 마시는 생활 습관의 보급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보인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회백색 완은 ‘言’, ‘貞’, ‘茶’라는 글자가 묵서되어 있는데 찻대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풍로는 실내에서 찻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용도로 쓰인다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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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제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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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서명 토기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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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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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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