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3 고려, 삶과 영혼의 도자
  • 03. 고려의 생활과 도자
  • 무덤 속에 넣어준 고려청자
이종민

고려시대의 문헌자료에는 계층 간 장례나 무덤 조성, 관리하는 일들을 법제화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무덤은 문무양반의 직급에 따라 무덤을 조성하는 원칙을 정하였다. 우선 경종 원년(975)에는 1품부터 6품에 이르는 묘지의 규모를 한정한 금령(禁令)을 내려 국가에서 정식으로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규격화하였다.136) 『高麗史』 卷85, 志39, 刑法2 禁令條, “景宗元年二月 定文武兩班墓地 一品方九十步 二品八十步 墳高幷一丈六尺 三品七十步 高一丈 四品六十步 五品五十步 六品以下 幷三十步 高不過八尺.” 이는 품계 간 규모차이를 둠으로써 신분의 차이에 따른 분묘 축조를 규정한 최초의 기록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평민의 경우는 구체적인 상황을 알기 어려우나 금령에서 거론한 6품 이하에 해당하는 30보(步)에 높이 8척(尺)보다는 분명히 크지 않았을 것이다. 신분이 낮거나 경제력이 약한 사람들은 분묘를 만들지 않고 버리거나 그대로 썩게 하고 심지어는 동물 먹이가 되도록 방치하는 등 분묘가 없는 것이 허다하거나, 있다 해도 형식에 그친 것이 많았던 듯하다.

즉, 고려시대의 분묘 조성은 왕실을 비롯하여 문무양반의 경우 신분과 직급에 따라 무덤의 규모가 다르게 조성되었으며 평민의 경우도 6품 이하에 준용된 것을 절대 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평민이라 하더라도 가난한 자나 신분이 미천한 노비는 분묘조차 쓰지 못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여,137) 『高麗史』 卷85, 志39, 刑法3 禁令條, “忠肅王後八年五月 監察司牓示禁令…一 各戶奴婢役之甚苦 在所矜恤 或有病不肯醫治奔諸道路 死又不埋轉相曳奔肉餒群狗誠爲可憐 今後以重法論.” 도자를 동반하는 분묘의 주인공은 적 어도 하급관리나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있던 평민층 이상의 신분을 가진 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분묘는 왕실을 비롯한 왕실가족과 같은 최상위 계층의 경우 석실묘(石室墓)형태를138) 고려 말 禮部侍郞을 지냈던 朴翊(1332∼1398)의 경우 밀양 고법리에 장사를 지냈으며 그의 무덤은 석실묘로 구성된 것이 확인되었다(東亞大學校 博物館, 『密陽古法里壁畵墓』, 2002). 갖고 있으며 귀족이나 상위 관료층은 석실이나 석곽묘(石槨墓), 하위 관료층이나 토호, 평민들은 토광묘(土壙墓)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39) 고려시대 무덤의 구조 중, 특히 석곽묘에 대하여 이희인은 석곽묘를 축조재료에 따라 板石造石槨墓와 割席造石槨墓로 구분하였고(李羲仁, 「中部地方 高麗古墳의 類型과 階層」, 『韓國上古史學報』 45, 2004, pp.107∼135), 양미옥은 무덤의 입구를 조성하는 방식에 따라 竪穴式石槨墓와 橫口式石槨墓로 분류하였다(梁美玉, 「충청지역의 고려시대 무덤연구」,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여기에는 청자와 백자, 도기, 금속기 등이 부장되었으며 도자 유물은 가마에서 생산된 기종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청자이다. 부장용기로서 생활성이 강한 기명들이 선호되었던 이유는 고려시대의 도자가 기본적으로 부장을 전제한 그릇들이 아닌 식생활 문화를 반영하는 일상 용기 중심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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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곤릉(坤陵) 발굴 전경
강화 곤릉(坤陵) 발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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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고려의 분묘문화에 따른 도자기의 매장양상을 알 수 있는 몇 예를 살펴보자. 발굴조사로 확인된 왕릉 중 분묘의 구조와 매장품을 확인할 수 있는 예로는 임시로 강화도에 수도를 두었던 강도시기(江都時期, 1232∼1270)의 곤릉(坤陵) 출토품을 들 수 있다. 곤 릉의 피장자인 원덕태후는 22대왕인 강종(康宗)의 비이다. 원덕태후 유씨는 고종 26년(1239)에 돌아가 능을 조성함에 따라 출토품들은 1239년을 하한으로 하는 시대적 특징을 보여준다.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한 석실 내부는 도굴을 당하여 도자기가 거의 출토되지 않았으나 석실문 비석 앞 묘도부에서는 제례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8점의 청자가 수습되어 최상급 소비층 분묘의 자기 소비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발견된 청자는 모두 당대 최고의 품질을 보이는 청자들로 삼족향로, 역상감문뚜껑, 압출양각화형접시류, 압출양각상감문발 등이 있으며 형태가 긴 도기매병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최상위 계층의 분묘에는 매장을 위한 각종 도자류와 금속제품 등이 다양하게 들어갔으나 차상위 계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석곽묘나 토광묘의 경우는 경우가 다르다. 한 예로 안산 대부도 육곡 고분군은 고려시대의 중기에서 후기에 조성된 석곽묘와 토광묘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 중 7호 토광묘에서는 고려의 청자접시와 발 각 1점, 그리고 정요계로 추정되는 백자편 4점과 청동인장 1점, 11세기 후반∼12세기 초반의 각종 중국 동전이 동반 출토되었다.140) 安山市·漢陽大學校博物館, 『安山 大阜島 六谷 高麗 古墳群 發掘調査報告書』, 2002, pp.110∼118.

삼척 삼화동 고분은 정식 발굴품은 아니지만 발견 당시 주변에 석재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석실묘로 조성된 분묘이다. 여기에서 발견된 유물은 총 41점으로 양이 대단히 많은 편에 속한다. 수집 유물로는 청자압출양각완, 청자주자, 청자향로, 청자잔탁 3점, 청자타호, 청자발 3점 등과 함께 도기정병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요계와 경덕진요계의 중국백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41) 鄭良謨, 「三陟郡 北坪邑 三和里出土 高麗時代 遺物一括」, 『考古美術』 129·130, 1976, pp.190∼199 ; 國立春川博物館, 『國立春川博物館』, 2002, pp.84∼87. 단양 현곡리 고분군은 34기의 고려시대 석곽묘와 토광묘가 조사된 곳이다. 이 중 석곽묘인 30호 고분에서는 고려의 청자상감과형주자와 압출양각의 청자완, 퇴화문접시, 잔 등이 보고되었으며, 도기반구병 등과 더불어 정요계로 추정되는 경질의 백자완 1점이 수습되었다.142) 朴喜顯, 「丹陽 玄谷里 高麗古墳群 發掘調査 槪報」, 『박물관휘보』 9,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1998 ; 국립청주박물관, 『남한강문물』, 2001. pp.66∼67. 토광묘와 석곽묘가 뒤섞여 있는 충주 단월동 묘역에서도 정 요계로 추정되는 소형의 백자접시 1점이 확인되었는데 품질이나 유색은 단양 현곡리 30호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143) 충주시, 『충주박물관 소장품도록』, 2004, p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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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곤릉 출토 청자 파편 일괄
강화 곤릉 출토 청자 파편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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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석곽묘와 토광묘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매우 수량이 적으며 발견되는 양상도 분묘의 축조 시기에 따라 조합상에 변화가 보인다. 즉, 10∼11세기에 해당하는 고려 초기에는 발(대접포함), 접시, 병이 중심이 되는 청자류에 완이 끼게 되고, 여기에 도기류의 발이나 반구병이 포함되어 한 벌을 이룬다. 12∼13세기 경의 고려 중기에는 주요 기종 이외에 완, 잔, 잔탁, 호가 때에 따라 추가되며, 도기에서는 완이 빠지고 병, 매병, 호가 동반된다. 14세기 고려 후기에는 청자의 경우 발·접시·잔이 부장되나 도기의 경우는 병, 혹은 매병이 일부 동반되는 양상을 보인다.144) 李鍾玟, 「高麗 墳墓出土 陶磁 硏究」, 『湖西史學』 46, 2007, pp.1∼34.

고려 중기에는 도자기를 함께 매장하는 고분 수도 증가할 뿐 아니라 출토되는 유물의 양이나 기종 또한 많아지고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출토 비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청자와 도기는 상호 보완 관계로, 청자는 반상기로서의 소형 기명이 중심을 이루고 도기는 발을 제외한 나머지 기종들이 이동이나 임시저장 을 위한 중형급 그릇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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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분표 출토 청자반구병
지방 분표 출토 청자반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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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분묘에서 출토되는 양상을 보면 유물들은 부장시에 청자와 도기가 서로 겹치지 않는 선에서 일괄품을 만들어 넣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일상 생활에서 실제로 그릇을 사용할 때 활용하였던 그릇의 조합과 일치하였으리라 판단된다. 또한, 부장된 유물의 과다는 피장자나 혹은 무덤을 조영한 후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가감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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