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4 조선 전기의 도전과 위엄, 분청사기와 백자
  • 02. 왕실 백자의 제작지, 경기도 광주
  • 백자의 제작량과 요도구
전승창

자기를 굽기 위해 가마 안에 그릇을 쌓는 재임방법은 백자의 성격과 질에 따라 달랐다. 재임은 크게 두 가지로 그릇에 갑발을 씌워 불길이나 재티로부터 보호하는 갑번(匣燔)과 그릇의 종류나 크기가 다른 몇 개를 포개어 쌓아 가마에 그릇을 그대로 노출시켜 굽는 상 번(常燔)으로 나누어진다. 재임방법은 백자의 질이나 가마의 성격을 대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갑번은 왕실용 백자의 제작에 사용되었으며 도마리 1호, 우산리 9호, 번천리 9호 등에서 확인되고, 상번은 관청용 백자제작에 주로 채택되었고 번천리 5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각각의 재임방법은 백자의 제작량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갑번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산리 9-3호 가마의 발굴결과 갑발을 세워 가마바닥에 한 단으로 배열한 후 그 속에 한 점의 백자를 넣고 위에 삿갓모양의 뚜껑을 씌워 구웠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가마에 그릇을 놓았던 공간의 크기만 알면 관요에서 한 번에 어느 정도의 백자가 제작되었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우산리 가마는 그릇을 놓아 굽는 번조실의 총길이가 16m, 너비는 평균 1.7m이며, 이곳에서 출토된 갑발의 지름이 20∼30㎝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계산하면 번조실 길이 16m×너비 1.7m 공간에 대략 지름 20㎝ 갑발인 경우 80×8줄인 640개, 30㎝ 갑발인 경우 53×5줄인 265개를 구운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갑발 위에 씌워지는 뚜껑의 지름이 갑발보다 약간 크고 갑발을 놓는 사이마다 약간의 간격이 있으며 불기둥이 차지하는 공간 등을 고려하면, 계산보다 적은 수량이 구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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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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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번
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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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발을 사용하지 않고 그릇만을 포개어 쌓아 굽는 상번은 관청용 백자를 제작하던 다수의 가마에서 사용되었다. 그릇을 포개어 쌓은 경우에도 1회 제작량을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가마의 크기와 그릇을 포개어 쌓은 수에 따라 제작량이 크게 달라진다. 그릇을 포개어 쌓았던 최대의 개수가 가마터에서 모두 확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광주 건업리 2호 가마의 경우, 발, 접시, 잔이 평균적으로 3∼4점 포개어 구워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건업리 가마는 일부가 파괴되어 전체 규모를 확인할 수 없지만, 1m 단위로 제작량을 단순하게 산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곳에서 출토된 백자발의 평균 입지름이 15.5㎝이고 가마의 너비가 1.2m이므로, 이 둘을 나누어 보면 가로 한 줄에 최대 7.7개, 세로 한 줄에 6.5개의 그릇을 재임할 수 있었다. 따라서 1m의 공간에 최대 50개 정도의 백자를 놓을 수 있었으며, 여기에 3단으로 포개구이할 경우 150개, 4단일 경우 200개를 동시에 구울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갑번에 비하여 보다 많은 수량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인데, 굽는 과정에서 실패할 확률도 그 만큼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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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업리 백자 각종
건업리 백자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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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번이나 상번으로 백자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각종 받침을 비롯해 몇 종류의 도구가 필요한데, 이들을 요도구라 부른다. 관요에서는 가마 바닥과 퇴적에서 백자 파편과 함께 요도구가 다수 발견된다. 요도구는 갑발과 받침류로 나눌 수 있는데, 갑발은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였던 가마터에서 다량 출토된 바 있다. 형태는 높이보다 입지름이 큰 원통형으로 높이 10∼20㎝, 너비 20∼30㎝, 두께 1∼2㎝가 대부분이다. 받침류는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원주형(圓柱形)과 원반형(圓盤形)이다.

원주형 받침은 관요 설치 이전에 운영된 가마에서 주로 발견되는 데, 높이 9.7∼15.1㎝, 윗면지름 8.8∼15㎝, 바닥지름 8.6∼10㎝ 정도이다. 대체로 높이가 높고 윗면이 약간 넓은 것이 특징으로 시간이 경과하며 전체 크기가 약간 작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원반형 받침은 높이 1.6∼4.7㎝, 입지름 8∼15㎝가 대부분으로 매우 납작하며, 관요에서도 출토되지만 크기나 형태에서 원주형과 원반형의 차이가 모호한 것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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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형 받침
원주형 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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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에 왕실용 백자를 제작한 도마리 1호에서는 원주형 받침의 경우, 높이 3.8∼12.2㎝, 입지름 4.6∼11.4㎝ 크기가 발견되었고, 원반형은 높이 1.2㎝ 내외, 입지름 8.7∼14.2㎝로 낮고 넓은 크기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중반 왕실용 백자를 만들던 번천리 9호에서는 변화된 양상이 나타난다. 이전에 사용되던 원주형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원반형은 높이 0.6∼6.6㎝, 입지름 4.4∼17.8㎝로 높이가 낮고 입지름이 작은 것에서부터 전체의 크기가 매우 큰 종류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관요 설치 이전에 사용되던 원주형은 관요 설치 이후 높이가 낮아지는 변화를 보이다가 16세기 중반 경에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원반형 받침도 관요 설치 이후에는 높이가 더욱 낮아져 매우 납작 한 형태로 변화되었는데, 필요한 경우 납작한 몇 개를 포개어 쌓아올려 원주 모양으로 높게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크기가 작은 종류도 다수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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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반형 받침
원반형 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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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구는 관요에서 제작된 백자의 종류와 형태, 크기에 따라 변화되었으며, 백자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외에 원주형과 유사하지만 몸체를 속이 빈 원통형으로 만들고 주둥이를 나팔 모양으로 벌인 후 가장자리를 톱니 모양으로 깎아 항아리 뚜껑 등을 제작할 때 받침으로 사용한 예도 있다. 톱니 모양으로 다듬은 받침은 왕실용 백자를 제작하던 곳에서 다수 발견된다. 또한, 발이나 접시 등 제작 과정에서 잘못되어 폐기물로 처리되어야 할 파편을 재활용하여 받침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관요백자의 받침 재료는 크게 두 종류로 태토비짐과 입자의 크기가 작은 깨끗한 모래가 그것이다. 태토비짐은 주로 조질백자를 포개어 구울 때 사용하였으며 관요 설치 이전부터 쓰기 시작하여 관요 설치 이후에도 꾸준히 받침재료로 채택되었다. 모래는 크기가 작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며 왕실용 백자의 제작에 쓰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번천리 5호에서처럼 포개구이를 하지만 일부 질이 좋은 백자를 만들 경우에 쓰이기도 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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