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4 조선 전기의 도전과 위엄, 분청사기와 백자
  • 04. 중국백자의 영향과 관요백자의 새로운 선택
  • 수용과정의 해석과 의미
전승창

중국 자기의 영향을 수용하는 과정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몇 가지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관요에서 출토되는 중국산 백자의 질에 대한 것이다. 관요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경덕진 관요의 양질백자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히려 민요품인 질이 좋지 못한 유물이 다수이다. 특히, 중국백자 파편이 발견된 가마는 주로 왕실용인 양질백자를 제작하던 곳이어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관요 출토 중국 자기는 모두 청화장식이지만, 영향을 받아 유사한 그림이 그려진 관요백자는 발견되지도 않았고 전세유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중국산 조질 청화백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다.

두 번째는 관요에서 제작된 청화백자의 장식에 대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5세기 초에 제작된 중국 자기의 장식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사이 관요의 문양으로 채택한 것은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청화백자의 그림이 도화서 화원에 의해 그려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화원은 관요에 내려가기 전에 장식할 그림에 대한 연습이나 숙지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또한, 매번 자기에 따라 새로운 그림을 만들기보다는 장식에 필요한 ‘화본(畵本)’을 제작해 두고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하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습과 숙지, 혹은 화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중국 경덕진 청화백자를 화원은 어디에서 보았을까? 아마도 세종연간과 문종연간 사이 국내에 다량으로 유입되어 보관되어 있던 경덕진 관요의 청화백자가 모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조연간 이후에는 경덕진 관요의 청화백자가 공식적으로 유입된 기록이 없고 관요에서 15세기 말에 제작된 청화백자에 15세기 초반 선덕년간에 그려지던 소재와 구성이 나타나는 점도 상황을 뒷받침한다. 즉, 관요백자의 청화장식 중 일부는 15세기 초반에 제작된 중국산 청화백자를 모본으로 장식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부를 변화시키기도 하였던 것이다.

세 번째는 관요백자의 종류와 형태의 선택에 대한 문제이다. 관요백자는 수많은 중국 자기의 영향을 모두 받은 것도 아니고 중국산 백자와 전부 비슷한 것도 아니지만, 일부 유사한 종류와 형태를 언제 어떻게 선택하고 제작하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이러한 의문 역시 청화장식의 경우와 같은 맥락으로 세종과 문종연간 사이에 국내에 유입되어 있던 중국 청화백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관련된 예가 중국에서 유입된 『세종실록오례의』에 그려진 <백자청화주해>를 들 수 있는데, 유사한 백자가 도마리, 우산리, 번천리에서 출토되며 전세유물로 남아 있다. 특히, 이 호는 왕실용 백자 를 제작하던 가마에서 양질로 제작된 파편만이 출토되고 전세유물 역시 수준 높은 유물만 알려져 있다.

분청사기와 백자는 조선 전기 도자문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기에 전국으로 확대되던 청자의 제작전통을 잇고 있으면서도 여기에 활기찬 사회 분위기와 일상생활 속의 풋풋한 아름다움이 가미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때로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고 위엄이 넘치기도 하며, 정교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미소를 자아내는 친근한 장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처럼 분청사기의 얼굴은 실로 다양하여, 조선 전기 도자문화를 한층 풍요롭게 하였다.

한편, 관요의 설치와 왕실용 백자의 제작은 조선시대 도자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 주도의 조직적인 요업체계를 구축하여 관요 운영의 초석을 세웠으며, 왕실용으로 대표되는 양질백자의 개발과 발전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백자문화를 이룩하였다. 또한, 관요백자는 왕실이나 관청뿐만 아니라 양반의 감성을 자극하여 수요의 확대를 가져 왔고 조형과 그림 장식 등에서 중국과는 다른 백자의 제작 전통을 확립하며 공예문화를 주도하였다. 분청사기와 백자는 조선 전기 왕실과 양반, 일반 백성의 다양한 미감이 투영된 삶의 흔적이며 우리 문화의 자부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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