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1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와 풍수
  • 02.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
  • 자연환경 요소, 지리와 산수
  • 1. 지리
이용석

「복거총론」에서 제시된 가거지(可居之)의 기본 요소인 지리(地理)는 풍수적인 색채가 짙지만 대체로 지형 조건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 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는 풍수가 사회 전반에 걸쳐 깊게 뿌리 내려 학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풍수는 당시 사회를 풍미했던 자연관으로 조선시대 사대부 계층의 지역관과 가거관(可居觀)과 깊은 관련이 있다. 「복거총론」 지리조에 제시된 수구(水口)·야세(野勢)·산형(山形)·토색(土色)·수리(水利)·조산(祖山)·조수(朝水) 등은 풍수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긴 해도, 현대의 취락 입지 조건을 따질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 굳은 지반, 좋은 수질, 양지바르고 탁 트인 지세 등의 개념에 부합하는 것들이다.6)최영준, 「풍수와 『擇里志』」, 『한국사시민강좌』 14, 일조각, 1994, pp.110∼111.

풍수에서는 취락 입지를 양기풍수(陽基風水) 혹은 양택풍수(陽宅風水)와 관련해 설명한다. 양기풍수란 인간이 살 장소를 찾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는 옛부터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둔 이른바 배산임수 지형을 가장 이상적인 터로 여겨왔다. 산을 등지면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늑하고, 물을 앞에 두면 음료수와 농업용수 등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터잡기의 기본 원리는 우리나라 전통 촌락의 독특한 문화경관을 이루는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명당의 형국은 뒤쪽의 주산을 중심으로 좌우에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계류가 명당 좌우로 흘러나와 명당 앞쪽 평지에 흐르는 소하천과 합류한다. 그 너머에는 다시 산이 가로막고 있는데, 이러한 전후좌우의 산을 사신사(四神砂), 그리고 계류와 하천을 내명당수·외명당수라 부른다. 이러한 형국은 대하천변의 평야지대나 해안지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주로 계류나 소하천변의 골짜기나 작은 분지에 분포한다. 때문에 이런 지역에 촌락들이 주로 자리 잡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은 삶의 터전을 정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풍수설이 주장하는 명당과 가장 잘 부합된다.

한편, 이중환은 이러한 촌락 입지를 ‘계거(溪居)’라 규정하고, 강 거·해거와 비교할 때 평온한 아름다움과 깨끗한 경치 그리고 경작하는 이익이 있어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 하였는데,7)『擇里志』, 卜居總論 山水條, “오직 계거는 평온한 아름다움과 맑은 경치가 있고, 또한 관개와 경작의 이익이 있어 해거는 강거만 못하고 강거는 계거만 못하다고 한다(惟溪居 有平穩之美 簫酒之致 又有灌漑耕耘之利 故曰海居不如江居 江居不如溪居).” 이 같은 주장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가거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시 사대부들은 깊은 계곡의 경승지에 마을을 조성하여, 붕당과 사화 등으로 혼란한 세상과 거리를 두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면서 학문에 힘쓰고, 계류를 이용한 농업경영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는 등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꾸미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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