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1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와 풍수
  • 02.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
  • 자연환경 요소, 지리와 산수
  • 2. 산수
이용석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며, 만약 아름다운 산수가 없으면 거칠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은 반드시 산수가 좋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중환은 산수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그곳의 생활조건을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야읍(野邑)으로서 계산(溪山)과 강산(江山)이 넓으면서 명랑하고, 깨끗하면서 아늑하며, 산이 높지 않아도 수려하며, 물이 크지 않으면서 맑으며, 비록 기암과 괴석이 있더라도 음산하고 험악한 형상이 전혀 없는 곳이라야 영기가 모여 살 만한 곳이라고 기술하였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인간의 마음은 그 본연(理之發)이 선(善)이지만 기(氣)의 소치(氣之發)로 말미암아 욕망에 흐르기 쉽다. 그러나 자연은 본연의 순수 선(善)이기 때문에 자연을 규범으로 삼고 본성을 기르는 존양의 매개가 되기에 족하다. 그러므로 자연 완상은 성정의 올바름[性情之正]을 회복하는 실천방도인 것이다.”라 하여8)민주식, 「퇴계의 미적 인간학」, 『美學』 26, 한국미학회, 1999., 자연경관은, 곧 큰 도(道)가 투영된 영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큰 도를 깨우치려면 실제의 산수를 대하고 수양하는 것이 첩경이라 고 생각했던 것이다.9)김재숙, 「예술을 통한 이상적 인격미의 추구」, 『조선시대, 삶과 생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0, pp.214∼215.

이처럼 산과 물이 잘 어울려 자연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선비가 번잡한 세속에서 물러나서 즐겨 찾을 수 있는 학문과 수양의 터[藏修之所]가 되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어울린 이상향이 되기도 한다. 마을의 하천이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경치 좋은 곳을 택해 정자·서당·정사 등을 배치하는 것도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장소가 확보되지 않은 경우엔 정자·서당·정사 등을 마을 전면의 조용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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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을 단위로 살펴볼 때, 산수에 해당되는 영역은 대체로 정(亭) 또는 정사(精舍)로 불리는 사대부의 수기공간이 자리하여 자연 계곡이나 숲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건물의 조경은 자연을 벗삼아 학문에 열중하며, 자기 수양을 중요시하는 사대부의 자연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곧 맑고 깨끗한 자연에 의지하여 자연과 동화되고자 했던 선인들의 심성이 경관표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정 또는 정사는 유교적 교양인, 독서인으로서 사대부들의 생활양식과 주거지 선호를 잘 나타내는 생활공간이며, 명망 높은 선비의 수기공간은 나중에 마을에 널리 알려져 공공장소의 성격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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