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1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와 풍수
  • 03. 전통적인 입지 원리로서의 풍수와 취락
  • 마을과 풍수
  • 5.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내창 마을
이용석

북창리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추진한 마을 민속 조사를 수행한 곳으로, 필자가 이 마을에서 9개월 가까이 거주하면서 마을민속지를 엮었던 곳이다. 이 마을을 처음 찾아왔을 무렵이 떠오른다. 이곳 조사를 위해 5만분의 1 지형도를 사서 마을을 찾아보았다. 빽빽한 등고선 사이로 까만 점이 한데 모여 있는 ‘북창리 내창마을’은 다른 마을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깊은 산속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좁은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난 포장도로를 따라 힘겹게 올라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 사람들이 들어왔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여 먹고 사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연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안내로 잿들 꼭대기에 올라서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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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들에서 밭갈이 하는 농부
잿들에서 밭갈이 하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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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모습을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서는 마을 뒷산인 적상산 망원대 가까이 혹은 적상산 정상부의 무주양수발전소 전망대에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서 굽어살펴보면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상산의 산줄기가 내창마을을 품에 안은 듯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북창리 내창마을의 땅의 생김새는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가 좁고 경사져 있으며, 바깥쪽에서는 안쪽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마을은 적상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마을 입구 부분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으며, 넓지는 않지만 골짜기 안쪽과 산지의 경사면은 농경지를 일구어 충분히 생활을 영위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은 일찍부터 적상산성과 안국사의 보급창고 역할을 하였던 ‘북창(北倉)’의 입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보급창고는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으면서 방어에 유리하며, 일상적이고 자급적인 생활이 가능한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고의 입지 외에도 북창리 내창마을의 입지는 외부세계와 비교적 격리되어 있어 혼란한 시기에 피병, 피세를 목적으로 산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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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리 내창마을 전경
북창리 내창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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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리 내창마을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골짜기는 매우 좁은데 반해 입구 안쪽으로 들어서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비교적 넓은 경사면이 펼쳐져 있는 분지 형태이다. 풍수는 ‘장풍득수’에서 ‘풍’과 ‘수’를 따서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장풍득수는 우리가 마을 입지의 대표적인 원리로 이해하고 있는 ‘배산임수’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뒤로는 든든한 산줄기를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물을 가까이 하는 것이므로,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좋은 기가 흩어지 지 않아야 하며 물을 가까이 하여 생활환경의 기초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풍수의 입지 원리에 비추어 보면 내창마을은 대체로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비록 마을이 자리한 골짜기가 좁긴 하지만, 산의 골짜기와 경사지를 따라 논과 밭을 일굴 수 있어 자급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으며, 적상산에서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임산물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삶을 꾀할 수는 있다. 특히, 마을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적상산은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어머니와 같은 산이다. 이러한 산의 심성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넉넉하고 인심 좋고 때묻지 않은 내창마을 사람들의 심성을 만들어냈다.

내창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은 바로 마을의 수구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곳은 내창의 안골천에서 흘러나오는 개울과 적상산 천일폭포에서 흘러내려 오는 북창천이 합수(合水)하는 곳이자 마을 입구에 해당되는 곳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수구(水口)가 너무 넓거나 허하게 되면 마을의 지기(地氣)가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마을에는 좋은 기운이 머물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때문에 수구에는 숲을 조성하거나, 인공적으로 언덕을 쌓기도 하며(造山), 때로는 장승이나 솟대, 선돌, 돌탑 등 양기(陽氣)를 담은 민간 신앙물 등을 세워 풍수적인 비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북창리 내창마을 입구의 느티나무 세 그루와 돌탑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양물(陽物)인 느티나무 숲과 돌탑을 조성한 것은, 마을 수구의 허결(虛缺)을 막고 마을에 좋은 기운이 머물도록 하는 수구막이 역할을 하게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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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의 돌탑과 느티나무
마을 입구의 돌탑과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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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느티나무와 돌탑이 있는 마을 입구는 잡귀나 전염병 등이 마을 밖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며,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마을이 외부에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시각적 차단물로서의 역할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기도 한다.

내창마을에는 수구막이 비보 외에도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비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최근 시멘트를 이용한 가옥의 건축이 늘긴 하였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창리 내창마을에는 초가집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가옥은 대체로 짚이나 억새풀로 지붕을 엮은 집이 많았으며, 가옥의 부재가 대부분 목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재에 매우 취약하였다. 따라서 마을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이웃하고 있는 집뿐 아니라 임야 등에 걸쳐 연쇄적인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화재예방은 자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마을의 공생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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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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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화재예방을 위하여 북창리 내창마을에서는 ‘소금단지 묻 기’와 같은 의례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는 소금의 기운을 빌어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풍속으로 정월 대보름 무렵에 하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중 몇 명이 절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 ‘화산뽁대기’라는 곳에 소금단지를 묻고 마을에 불이 나지 않기를 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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