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2 생활공간
  • 01. 소통을 위한 매개적 공간
  • 마루, 방과 방을 이어주다
김미영

마루의 어원은 ‘말’ 혹은 ‘마리’로서 높다는 뜻이 있다. 산의 정상을 산마루라고 하기도 한다. 아울러 우리 몸에서 가장 높은 곳은 머리이며, 무리에서 통솔자 역할을 하는 이를 우두머리하고 하는데 이때의 마루와 머리 등의 어원은 동일하다. 제주도 방언으로 마루를 ‘마리’라고 하는데, ‘’에 근원을 두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 북동부 지역에서 거주했던 어룬춘족의 주거공간 내에는 ‘말루(malu)’ 혹은 ‘마로(maro)’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으며, 주택 내에서 위계가 매우 높아 여성들은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26)서윤영, 앞의 책, p.154. 이들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마루는 집 안에서 가장 으뜸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신성공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루란 “땅의 온도와 습기, 유해 동식물을 피하거나 채광과 통풍 등을 위해 지면에서 공간을 띄워 널로 짜서 바닥을 형성한 것”27)이대원, 「한국전통건축에 있어서 마루구조의 특성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p.6.으로 정의된다. 이처럼 마루는 지면과 일정 간격을 둠으로써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주는 등 통풍이 잘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여름철에 유용한 생활공간으로 자주 활용되어 왔다. 그런가 하면 더운 여름철 외에는 차가운 바닥의 마루를 사용 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고구려에서는 마루 위에 침상을 설치하여 기거했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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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대청
사랑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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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상류계층의 주거 내부를 보여주는 그림들이 다수 남아 있는데, 그림 속의 인물들이 앉아 있는 침상이 바로 마루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울러 『삼국사기』의 옥사조(屋舍條)에도 침상의 재료로 침향(枕香), 자단(紫檀), 황양목(黃楊木) 등의 고급 목재를 금지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마루로 된 침상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도경』에서도 “상류계층의 침상 앞에는 낮은 평상을 놓았는데 세 면에 난간이 있으며 각각 비단 보료를 깔았다.”라고 하여 온돌이 설치되기 이전까지 상류계층에서는 나무로 만든 침상에서 기거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28)강영환, 앞의 책, p.213. 아울러 서긍의 『고려도경』, 최자의 『보한집』, 이인로의 『동문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따르면 왕족과 상류계급은 침대 를 놓는 입식생활을 하면서 온로(溫盧)와 같은 난방기구를 사용하고 있었음에 반해 일반서민들 사이에는 온돌이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겨울에는 욱실(燠室), 여름에는 양청(凉廳)이라고 하여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상류계층의 가옥에서는 온돌방을 보통 한두 칸 짓고 이곳에는 노인이나 병자들이 거처하며, 나머지 공간에는 마루를 깔아 취침을 하고 주위에 병풍과 장막을 둘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온돌문화가 완전히 정착하기 이전에는 마루 위에서 입식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후 온돌이 보급됨에 따라 지금과 같은 대청의 형태로 남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마루는 설치장소와 형태 등에 따라 대청마루·누마루·쪽마루·툇마루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대청이란 집 안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마루를 일컬으며 안채에는 안대청, 사랑채에는 사랑대청이 각각 있다.

대청은 손님접대를 비롯하여 각종 행사나 가사노동을 하기에 적합하여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안대청에서는 다듬이질이나 바느질 같은 부녀자들의 가사노동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철에는 식사를 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는가 하면 취침공간이 되기도 한다. 남성공간인 사랑대청은 외부 방문객이 가장 빈번하게 드나드는 접빈 장소로 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조상 제례가 거행되는 의례공간이 되기도 한다.

누마루는 높게 쌓은 기단 위에 세워진 사랑채의 전면에 설치되는 것으로서, 사랑채의 웅장함과 권위를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화려한 조각과 장식으로 꾸며진 누마루의 난간은 대문을 들어서는 방문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쪽마루는 툇기둥을 설치하지 않은 채 방이나 대청 앞에 좁고 길게 달아낸 공간으로 외부에서 방으로 들어갈 때 계단 역할을 하기도 한다. 툇마루는 방이나 대청, 누마루 앞에 좁고 길게 달아낸 것으로 툇기둥에 의해 인접해 있는 공간과 일체화를 이루는 마루이다. 특히, 쪽마루와 툇마루는 외부 방문객이 방으로 들어가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잠시 걸터앉아 용무를 마치는 장소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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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대청에서 지내는 조상제례
사랑대청에서 지내는 조상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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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중에서 대청은 상량문이 적혀 있는 대들보가 지나는 장소로서 가옥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런 까닭에 일상에서 마루라고 지칭하는 것은 대체로 대청을 일컫는다. 대청은 일상적 공간이면서 비일상성을 지니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성주신(成主神)을 모시는 것을 들 수 있다. 성주는 가장(家長)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모든 가택신을 거느리는 최고의 신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집 안의 중심적 공간인 대청에 최고의 신으로 군림하는 성주신을 모셔두었던 것이다.

‘마루’는 높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마루’라는 뜻을 가진 ‘종(宗)’ 역시 조상 혹은 신령을 지칭한다. 그런데 ‘높다’라는 말에는 물리적으로 높다는 뜻 외에도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관념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듯이 마루 또한 물리적으로 높은 공간과 지배계층의 공간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29)서윤영, 앞의 책, p.155.

이와 관련하여 옛날에는 관청을 마루라고 했는데, 이는 주로 신성공간에서 제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또 신라의 임금을 마립간이라고 불렀던 것 역시 신성공간인 마루에서 제정을 주관했던 것에 기인한다. 아울러 대청(大廳)이란 명칭은 군청(郡廳)이나 시청(市廳)의 ‘청(廳)’으로 미루어 볼 때 대청 역시 통치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명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30)이호열·김일진, 「한국건축의 마루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추계학술대회논문집』 3-2, 대한건축학회, 1983, p.24. 실제로 조선시대 상류계급의 주택에서 대청은 권위의 대표적 상징공간이기도 했는데, 바깥주인과 안주인이 하인들을 향해 지시와 명령을 내리거나 호된 꾸지람을 하는 공간도 대청이었던 것이다.

마루의 대표적 특징은 방과 방을 이어주는 매개적 기능에 있다. 아울러 방의 경우에는 주인이 별도로 정해져 있음에 반해 마루는 가족 모두의 공간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문이나 벽이 없는 까닭에 여타 공간에 비해 개방성이 높은 편이다. 간혹 양반집의 대청에 분합문(分閤門)이 설치되어 있기도 한데, 이것 역시 위로 열어젖히도록 고안되어 있어 개방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완벽한 외부공간과 달리 마루에는 바닥과 지붕이 있어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거주성이 좋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마루는 방과 방 사이에 놓인다는 위치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구조적 측면에서도 매개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마루의 매개적 속성은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사용자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은 마루는 가족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기도 하고, 외부 방문객 역시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장소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루는 가족 간의 소통뿐만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매개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무더운 여름철, 가족들에게 시원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식사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등 일상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관혼상제 등을 거행하는 의례공간, 성주신을 모셔두는 신앙공간 등과 같이 비일상적 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매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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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윤증고택 사랑채 분합문
논산 윤증고택 사랑채 분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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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지니는 신성공간으로서의 속성은 관혼상제를 거행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명확히 방증된다. 예를 들어 남성의 관례는 사랑대청에서, 여성의 계례는 안대청에서 거행하며, 혼례는 마당에서 치르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혼례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초례청(醮禮廳)’이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대청과 깊은 관련성이 인정된다. 조상제례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아무리 추운 겨울철에 기일(忌日)이 들었다 할지라도 방이 아닌 대청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불문의 원칙이다. 아울러 평소에는 대청이라고 칭하지만, 제사를 거행할 때는 제청(祭廳)으로 탈바꿈한다. 그야말로 일상적이거나 일상적이지 않거나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청이 신성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옥의 중심적 장소라는 사실은 빈소의 설치에서 잘 드러난다. 대개 망자가 남성이라면 사랑대청에 빈소를 마련하고, 여성은 안대청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다. 빈소는 망자가 머무는 삶의 마지막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생의 공간을 벗어나는 망자에 대한 예우를 하기 위해 가옥의 중심적 공간에 모실 필요가 있는데, 이때 대청이 가장 적합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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