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2 생활공간
  • 02. 신분과 지위에 따른 위계적 공간
  • 행랑채, 살림채를 주인으로 모시다
김미영

서민들의 가옥과 달리 상류계층의 가옥은 살림채를 포함하여 여러 채의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가축을 사육하거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등 주생활의 보조적 기능을 하기 위한 공간들인데, 대체로 가옥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 가옥에서 살림채란 안채와 사랑채, 별채(별당) 등을 일컬으며, 나머지 건물들은 부속채로 분류된다. 즉, 가축과 물건을 수용하기 위한 건물이기 때문에 살림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살림채가 주인의 격을 갖는 것이라면, 여타 부속채는 주인을 모시는 종의 격을 갖는다.41)강영환, 앞의 책, pp.219∼220.

그런데 부속채에는 하인들이 기거하는 행랑채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부속채는 기능적 측면만이 아니라 주거 구성원의 측면에서도 살림채에 대해 종속적 성격을 갖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행랑채를 ‘아래채’라고도 하는데, 이는 살림채의 아랫부분에 위치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아랫사람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라는 뜻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아울러 항간에서는 머슴이라는 신분을 나타낼 때 ‘남의 집 행랑살이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부속채에 포함된 ‘행랑’은 머슴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는데, 기혼 남자는 ‘행랑아범’으로 불리고 기혼 여자는 ‘행랑어멈’으로 칭하였다. 그런가 하면 ‘부속채의 높이는 살림채보다 한 치라도 높아서는 안 되며, 한 치라도 위에 있어서도 안 된다’, ‘살림채의 재목을 부속채에 사용하는 것은 부재의 격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금한다’42)앞의 책, p.221. 등의 원칙들 역시 살림채에 대해 종속적 위치에 처한 부속채의 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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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충효당 입구 측면)
행랑채(충효당 입구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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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는 대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이유는 양반의 경우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을 주로 하인들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즉, 낯선 방문객들이 대문을 통해 집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행랑방의 하인들이 인기척을 듣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랑방 옆으로 외양간이나 농기구 보관창고 등이 자리하기도 한다. 이들 모두 행랑채에 머무는 하인들의 역할에 근거한 배치구조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 전기의 상류계층의 가옥을 살펴보면 행랑채와 살림채가 독립적으로 세워지는 조선 후기와 달리 서로 연결되어 있는 통합적 배치구조를 하고 있으며, 또 살림채와의 거리에서도 조선 전기에는 비교적 근접해 있는 반면 조선 후기에 이르면 원거리에 배치되는 경향을 보인다.43)정재식 외, 「조선전기 상류주택에서 행랑채의 시대적 성격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3-2, 대한건축학회, 2003, p.735. 이는 곧 유교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유교의 신분관념이 일상의 모든 측면에까지 영향을 끼쳤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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