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2 생활공간
  • 04.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이적 공간
  • 사당, 담장으로 경계 짓다
김미영

상례의 가장 마지막 의례인 길제를 거행하고 나면 빈소에 머물고 있던 망자의 혼은 사당으로 옮겨진다. 이때 4대봉사 원칙에 입각하여 가장 서쪽에 안치되어 있는 5대조의 신주는 조매를 하고, 4대조 이하 나머지 조상들의 신주를 서쪽으로 한 칸씩 이동시킨 후 가장 동쪽에 망자의 신주를 모신다. 이처럼 사당은 산자들의 거주공간인 생(生)의 공간과 달리 4대조 이하의 신주를 모셔두는 사(死)의 공간인 셈이다.

『가례』에 따르면 사당은 정침의 동쪽에 세우도록 되어 있으나, 이때 정침의 실제 좌향은 크게 문제되지 않고 정침의 앞쪽을 남, 뒤는 북으로 하며 좌는 동쪽, 우는 서쪽으로 설정한다. 이는 사당의 좌향이 물리적인 절대향보다는 정침과의 상대향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 조건을 충분히 살핀 후 사당을 건립하면 사면에 담장을 두르고 문을 설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59)『가례』1, 통례, 사당.

공간을 구획 짓는 대표적 구조물이 문·담장·수목(樹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담장은 사당이 살림채와 독립된 사의 영역임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식으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엄격히 말하자면 사당 역시 가옥의 울타리 내에 위치하는 생의 영역에 속해 있는 셈인데, 이는 후손과 사당에 모셔진 조상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사당 주변에 담장을 둘러 생의 영역 내에 또 다른 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생과 사의 완벽한 공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나름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생과 사가 공존하면서, 또한 분리되어 있는 전이적 속성이야말로 사당이 지닌 본질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옥의 영역에서 살림채와 겹치지 않는 뒤쪽(동북·서북·북)은 망자의 공간이며, 살림채를 중심으로 측면(동쪽과 서쪽) 및 앞쪽[南]을 생자의 공간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현장의 사례들을 살펴볼 때 살림채와 거의 나란히 위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가옥에서 생자의 공간과 망자의 공간은 물리적 영역 위에서 명확히 구획되는 것이 아니라 담장이라는 상징적 표식물에 의해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사실은 『주자가례』 에서 사당을 정침의 동쪽에 세우도록 명시해 둔 것에서도 증명되는데, 아울러 정침 동쪽의 자리가 협소하면 앞쪽이라도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때에도 사당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문을 설치함으로써 정침과의 경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당을 동북·서북·북쪽 등과 같이 살림채의 뒤편에 배치하는 우리의 관행은 『예서』의 지침과 크게 다르다. 아마도 이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상이한 지형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산악이 발달되어 있는 까닭에 주로 배산임수형의 가옥 배치 구조를 취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에는 넓은 평원이 많기 때문에 산을 등질 수 있는 배산임수의 가옥 배치가 그리 흔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지세를 살피는 형기풍수(形氣風水)가 아니라 이기풍수(理氣風水)를 중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방향을 고려하는 향법풍수(向法風水)가 크게 발달하였다. 이처럼 중국의 경우 주로 평지에 가옥을 세우다 보니 정침과 사당의 고도(高度)가 아니라 방향[坐向]을 중시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정침의 뒤쪽 언덕이 아닌 좌우의 평지에 사당을 건립하더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마을 입지가 배산임수형에 속하며, 특히 반가의 경우 주산의 능선이 끝나는 지점을 길지로 간주하여 이곳에 가옥을 세움으로써 자연히 산을 등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대의 높이와 위상의 높이를 동일시하는 관념이 싹텄으며, 이에 보다 높은 곳에 조상을 모시기 위해 사당을 정침의 뒤쪽 언덕에 세우는 관행이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사당은 정침의 뒤쪽(동북·서북·북) 언덕에 위치한다는 보편적 인식이 형성되었고, 나아가 이러한 배치는 조상을 존중하고 조상에 대한 신성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자리 잡게 되었다.

살림채가 살아 있는 이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라면, 사당은 죽은 이들이 머무는 장소이다. 그런데 살림채 내에서도 성별·장유·신분 등에 기초하여 각각의 거처공간을 설정하듯이, 사당 내에도 개별 공간인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고대 중국의 사당은 일세일묘(一世一廟)의 제도를 따르고 있었다. 이때 중앙에 위치한 시조를 중심으로 동쪽의 소(昭)와 서쪽의 목(穆)으로 갈라진다. 그런 다음 ‘부소자목(父昭子穆)’의 원칙에 입각하여 목의 열에는 부모와 증조부모, 소의 열에는 조부모와 고조부모의 신주가 각각 놓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후한 이래 동당이실(同堂異室), 곧 같은 사당 내에서 일세(一世)가 일실을 차지하게 되면서 서쪽을 우위로 삼게 되었다. 서쪽을 우위로 삼는 것은 사후세계에 적용되는 방위관념 때문인데, 즉 해와 달이 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양계(陽界)에서는 동쪽이 우위가 되고 서쪽으로 가라앉으므로 이곳이 음계(陰界)가 되어 서쪽을 중시한다는 견해이다.60)『유림백과사전』, 명심출판사, 1998,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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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으로 구획된 사당
담장으로 구획된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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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살아 있는 사람은 양에 속하기 때문에 왼쪽[東]을 숭상하 고 귀신은 음에 해당하는 까닭에 오른쪽[西]을 숭상한다는 논리이다. 이에 기초하여 서쪽으로부터 고조부모·증조부모·조부모·부모의 감실을 차례로 마련한 후 탁자를 하나씩 놓고, 감실과 감실 사이에 판자를 막아 구분한다. 그런 다음 신주를 독(櫝)에 안치하여 탁자 위에 남쪽을 향하도록 두고 감실 밖에 발[簾]을 드리움으로써 개별공간을 완성하는 것이다.

조상에 대한 배려는 독립적 개별공간의 조성뿐만 아니라 생전의 서열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한 감실의 배치 구조에서도 잘 나타난다. 음의 세계에서는 서쪽을 우위로 간주하는 까닭에 가장 서쪽을 기점으로 고조부모·증조부모·조부모·부모의 순서대로 배열한다. 그리고 사당 내에 불천위를 함께 모시고 있을 경우에는 감실을 추가하여 불천위 조상·고조부모·증조부모와 같은 순서를 취한다. 만약 증조부를 시조로 삼는 집이라면, 네 개의 감실 가운데 가장 서쪽은 비워두고 그 다음 칸을 기점으로 증조부모·조부모·부모를 각각 모시고, 조부에서 시작된 집에서는 서쪽 감실 두 칸을 비운 채 조부모와 부모의 신주를 안치한다. 이것 역시 사당 내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엄격한 규칙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생전에는 남녀유별 관념에 입각하여 안채와 사랑채에서 각각 생활하던 부부가 사당에서는 합방을 한다는 사실이다. 즉, 망자의 혼이 깃든 신주는 개인별로 마련하지만, 이를 보관하는 독좌와 독개는 부부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드는 것이다.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먼저 숨을 거두면 일단 한 사람용의 단독(單櫝)에 머무르고 있다가 배우자가 사망하면 양독(兩櫝)으로 옮기며, 만약 재취를 맞이했을 경우에는 세 사람, 삼취의 경우에는 네 사람이 같은 주독에 안치된다. 이처럼 부부를 함께 안치하는 것을 합독(合櫝)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의 경우에는 양독, 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삼합독(三合櫝), 네 사람의 경우는 사합독(四合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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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초취, 재취가 함께 모셔져 있는 독(櫝)
남편과 초취, 재취가 함께 모셔져 있는 독(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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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서의 엄격한 원칙은 신주의 배치 방식뿐만 아니라 거처기간의 설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죽음을 맞이한 망자가 소상·대상·담제를 치른 후 마지막으로 길제를 거행함으로써 정침을 벗어나듯이, 사당에 머물고 있는 조상들 역시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다만, 정침과의 분리는 물리적 기간(약 27개월)에 따라 행해 반면, 사당의 경우에는 기간이 일정하지 않고 새로운 망자가 등장할 때까지 지속된다는 점이 다르다. 즉, 4대봉사 원칙에 근거했을 때 사당에 모셔지는 조상은 4대에 국한되기 때문에 새식구(망자)의 등장으로 5대조가 된 고조부는 자신의 아들(증조부)에게 감실을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머지 조상들이 서쪽으로 한 칸씩 자리 이동을 하면 동쪽 끝자리에 망자가 안치된다.

사당은 생의 공간이면서 사의 공간이기도 하며, 또 일상적 삶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비일상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다시 말하면 산자들이 생활하는 거주공간의 울타리 내에 자리하고 있지만 사당 주변에 둘러진 담장에 의해 생의 공간과 명확히 구분되면서 사의 공간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아울러 후손들 입장에서는 거 주공간 내에 조상들이 계시는 까닭에 평소와 다름없이 예를 차리는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이를테면 매일 이른 새벽 사당에 모신 조상들을 찾아뵙는 신알례(晨謁禮), 외출할 때 행하는 출입의례로 집 밖 가까운 곳에 갔다가 귀가했을 때 하는 첨례(瞻禮), 집 밖에서 하룻밤 묵어야 하는 경우 집을 나설 때와 귀가했을 때 하는 경숙례(經宿禮), 열흘 이상 집을 떠나 숙박할 일이 있을 경우 집을 떠날 때와 돌아왔을 때 하는 경순례(經旬禮), 한 달 이상 집을 떠나 있을 때의 경월례(經月禮) 등의 예를 갖춘다. 정초와 동지, 초하루와 보름날에 올리는 참례(參禮)를 비롯하여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발생했거나 햇곡을 거두었을 때에도 사당의 조상들을 찾아뵙는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당에 계신 조상과 일상의 삶을 함께 영위하기 위한 후손들의 배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써 사당의 조상들은 후손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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