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2. 가신의 종류
  • 가신의 종류
  • 5. 업
정연학

우리나라의 업(業)은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긴다. 중국의 경우는 여러 유형의 재물신이 등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재물신’이라고 직접 통용되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업은 업왕신(業王神), 업위(業位), 업위신(業位神), 지킴이 등으로 불리며, 이능화는 업의 종류를 인업, 뱀업, 족제비업 등을 들었다.109)이능화, 『계명』 19, 계명구락부, 1927. 또한, 업을 봉안하는 방법에 대해 『신단실기(神壇實記)』를 인용하여 “가내 정결한 곳을 택하여 단을 만든 다음 토기로 화곡을 담아 단상에 두고 볏짚으로 주저리를 만들어 씌운다. 이를 부루단지(扶婁壇地) 또는 업왕가리(業王嘉利)라 한다. 그러니까 재산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단군의 아들 부루가 다복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재신으로 신봉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업의 형태는 주저리는 물론, 나뭇단, 간장, 사람 등 다양하며 신체가 봉안된 것도 광이나 곳간110)김명자, 「업신고」, 『斗山 金宅圭박사 화갑기념 문화인류학논총』, 논총간행위원회, 1989, p.403.은 물론 나뭇간, 뒤뜰, 장독대 등 다양하다. 그것은 업의 종류에 따라 봉안하는 방법이라든지 장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용단지를 업의 신체로 보기도 한다.111)김명자, 앞의 책, p.404.

‘뱀업’은 ‘긴업’이라고 부르며, 뒤뜰에 주저리를 틀은 ‘업가리’에 깃들어 산다고 여긴다. 긴업 주저리와 유사한 것이 제주도의 ‘바깥칠성’인데, 역시 뱀을 위해 지은 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경기도 일대에서는 긴업은 일반 뱀과 달리 귀가 달리고 벽을 타고 다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업을 모신 주인에게 우환이 생길 징조가 있으면 꿈에 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터주는 매년 가을 주저리를 벗기고 새것을 입히는 반면, 업가리는 기존의 주저리에 새로운 주저리를 덧씌운다. 따라서 업가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기 마련인데, 이것은 재물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무엇인가가 덜어낸다는 것은 재 물이 나간다는 유감주술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오래 된 업가리는 높이와 밑지름이 2m가 넘기도 한다. 업가리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마치 김치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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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업을 모신 모습
긴업을 모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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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가리(경기도)
업가리(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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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업고사(인천)
긴업고사(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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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가리 안에는 터주와 마찬가지로 곡식을 넣은 단지가 있으며, 가을 고사 때 햇곡식을 넣어둔다. 지역에 따라서는 단지 안에 돈을 넣는 경우도 있고, 아예 단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단지 안에 든 쌀은 밥이나 떡을 해서 가족들만 나눠 먹는다. 이것 역시 업이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기에 재물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족제비업’는 나무 장작단에서 살기 때문에 족제비업이 봉안된 장소로 여기는 나무 광이나 뒤뜰에는 장작이나 솔가지 더미를 쌓아둔다. 또한, 나무광에 족제비업을 모신 집에서는 나무를 땐 만큼 반드시 새로운 나무로 보충하는데, 만약 나무가 줄어들면 족제비가 다른 곳으로 가버려 집안이 몰락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업으로 모시는 족제비도 일반 족제비와 달리 수염이 있고, 몸이 노랗고 주둥이가 하얗다고 한다.

‘인(人)업’을 신체로 섬기는 집은 아주 드물다. 그것은 인업이 쉽게 사람들에게 들어오지 않고, 들어와도 빨리 나가기 때문이다. 다른 업과 달리 사람을 닮아 간사하다고 여겨 인업을 받은 몸주는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다.

어느 할머니는 자신이 시집을 온 후 방 안에 벌거벗은 아이를 보았다. 그런 후 며칠 동안 몸이 아팠고, 무당이 병을 보게 되었다. 무당은 그 아이를 업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창고 한 구석에 쌀을 담은 단지를 인업의 신체로 삼았고, 창고 기둥에는 흰 실을 걸어놓았다. 아이를 업으로 섬긴 후 몸이 좋아졌고, 매달 흰죽을 쑤어 단지 앞에 놓고 빈손한다. 10월 고사 때는 시루떡을 하고, 단지의 쌀은 햇곡으로 바꾸어준다. 집안의 아무런 큰 탈 없이 살고 있다. 인업은 이후로 한 번 더 보았다고 한다.

어느 할아버지가 길을 가는데 어린 동자가 길을 걷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너는 어느 집을 가느냐?” 물었더니 자신의 이름을 대는 것이었다. 괴이하게 여긴 할아버지는 다시 물어보았더니 동자는 똑같이 대답하였다. 집에 거의 다가오자 어린 동자가 갑자기 광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인업임을 알고 바로 광에 흰죽을 쑤어놓았다. 동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으나 죽이 절반은 줄어 있었다. 인업을 발견한 사람이 업이 먹고 남긴 죽을 먹으면 좋다고 하여 할아버지가 먹었다. 인업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 눈에만 보인다. 인업은 나가는 것도 눈에 보인다고 한다.

대를 이어온 진간장을 업으로 섬기는 경우도 있는데, 빛깔이 특별히 검은 까닭에 진간장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는 ‘삼간장’이라고도 부른다. 진간장은 간장이 줄어들면 재운도 줄어든다는 의미에서 집안의 경사에 쓴 후에는 퍼낸 만큼 반드시 새 간장을 부어 양이 줄어들지 않도록 한다.

경기도, 충청도에서는 광에 ‘광대감’이라고 부르는 항아리가 있다. 가을에 첫 수확한 쌀을 ‘광대감’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시루떡을 해서 제사를 지낸다. 항아리의 쌀은 햇곡으로 바꿀 때까지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흉년이 들었을 때는 “대감님 쌀 좀 꾸어서 먹겠습니다.”라고 빌리는 형식을 취해서 먹는다. 항아리의 쌀에는 살아 있는 영혼이 있다고 여겨 쌀의 빛깔이나 증감 여부를 보아 풍년이나 재물의 증가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중국 산동성에서는 12월 30일 저녁 ‘잉충(剩蟲)’을 만들어 곡식창고나 항아리에 넣어 한 해 동안 양식이 부족하지 않기를 바란다. 잉충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서 크기는 만두만 하며 보통 밀가루로 만들어 찐 것이다. 잉(剩)자는 “양식을 먹어도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설에는 집안에 재물이 가득 차고 복이 많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초재진보(招財進寶)’ 등의 길상의 문구를 써서 양식창고 등에 붙인다. 문구는 네 글자지만 전체적으로 한 글자처럼 홍색으로 통일하여 쓴다.

업을 섬기는 집안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업이 들어온 집안에서만 섬길 수 있고 또 누구나 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가신들 가운데 업이 일찍 사라졌다고 보는 것은 잘 못이다. 업은 운명이고 자신의 팔자이기 때문에 대문에 놓은 업둥이를 어쩔 수 없이 키우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면 업을 받을 주인에게 큰 재앙이 온다고 여긴다. 업을 섬기는 집안은 업을 잘 모시면 그 집안이 부유하고 평안해지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집안에 재앙을 몰아다 준다고 믿어 업은 부와 재앙을 가져다주는 이중적인 존재인 셈이다.

업은 같은 식구라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의 눈에만 띈다. 업을 신체로 섬기는 과정을 살펴보면, 동물업인 경우에는 꿈에 특정한 동물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감거나 물고, 인업인 경우에는 주로 벌거벗은 동자가 주인의 눈에만 들어오는데, 이러한 현상을 무당이나 승려의 해석을 통해 주인이 업을 섬기게 된다.

한번 들어온 업이 집안을 떠나면 그 집안이 패가망신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주인은 업을 섬기는 데 각별히 주의를 하며, 외부인이 접촉하는 것도 꺼린다. 또한, 딸이 시집을 갈 때도 그의 옷 한 벌을 집에 놓고 후에 가져가도록 하는데, 이것은 업이 외부인이나 딸자식을 따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옷을 집에 남겨두는 것은 잠시 외출을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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