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2. 가신의 종류
  • 가신의 종류
  • 6. 터주
정연학

터주는 땅을 돌보는 신으로 ‘터줏대감’·‘터대감’·‘후토주임(后土主任)’·‘대주(垈主)’·‘터주가리’라고 부른다. 호남 지방에서는 ‘철륭’, 영남 지방에서는 ‘용단지’라 부르기도 한다. 지킴이로서 터주신은 집터를 관장하고 집안의 액운을 걷어주고 재복을 주는 신이다. 터주의 기능과 명칭, 신체와 관한 내용을 1930년대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12)村山智順, 앞의 책.

택지(宅地)의 주재신(主宰神), 오방지신(五方地神) 가운데 중앙신(中央神)이어서 다른 사방신(四方神)을 통괄하여 택지의 안전보호를 관장한다. 토주대감(土主大監)·기주(基主)·후토주임(后土主任)·대주(垈主)·지신(地神) 등으로도 부른다. 신체(神體)는 작은 항아리 속에 백미 또는 나락·수수 등의 곡물을 넣은 것을 짚가리로 씌운 것으로 뒤뜰 또는 장독대의 구석에 안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터주는 집 뒤 울타리 안이나 장독대 옆에 터주가리를 만들어 모신다. 작은 항아리에 쌀을 담고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고깔 모양의 주저리를 덮는다. 그리고 주저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왼새끼 줄을 터주 허리에 두른 후 앞쪽에는 한지를 잡아매어 두었다. 경기 일부 지방에서는 터주신 내외분이라고 하여 두 개의 터주가리를 세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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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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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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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주신에 대한 신앙은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 지방에서는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충청도를 경계로 남으로 내려가면 점점 희미해진다. 경기도에서는 터줏가리는 10월 상달에 벗겨내고 새로운 짚으로 주저리를 튼다. 주저리를 트는 행위를 ‘옷 입힌다.’고 달리 말하기도 한다. 헌 주저리는 산에 버리거나 마을 성황당에 걸쳐놓아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한다. 때로는 불에 태우거나 논의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단지 안의 쌀도 햇곡으로 교환해 주고 묵은쌀은 밥이나 떡을 해먹으며 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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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주(경기도)
터주(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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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예전 터줏가리(경기도)
버린 예전 터줏가리(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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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위에 올려놓은 터줏가리(경기도)
돌 위에 올려놓은 터줏가리(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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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주 제사는 일반적으로 10월에 길일을 택해서 콩떡과 돼지머리를 제물로 하여 지낸다. 또한, 파종할 때,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시루떡을 해서 터주에 받치고 빈손을 한다. 시 루떡 대신 죽을 쑤어 풀기도 하고, 돼지머리만 바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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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주 고사 모습(인천)
터주 고사 모습(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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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주단지에는 벼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나, 근래에는 쌀 대신 동전을 넣기도 하고, 쌀과 동전을 같이 넣기도 한다. 쌀을 넣는 경우 경기도에서는 단지 안에 쌀을 채우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 해에 터주신이 쌀을 채우라고 농사를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터주신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중국에서 토지신은 민간에서는 할아버지[土地公·土地爺], 할머니[土地婆·土地奶奶]라고 부르고, 문헌에는 ‘사신(社神)’·‘후토지신(后土之神)’ 등으로 적고 있다.113)丁山, 『中國古代宗敎與神話考』, 龍門聯合書局, 1961, pp.42∼43 ; 赵毅, 王彦辉, 「土地神崇拜与道教的形成」, 『学习与探索』 2000年 第1期, pp.129∼132. 토지신을 가리키는 여러 명칭 가운데 후토(后土), 후직은 여성을 상징하는 단어로 보며, 토지를 ‘지모신’이라고 부른다. 토지신은 성별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것이다.

중국의 대부분 마을마다 토지묘(土地廟)가 있어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낸다.114)河北省의 경우는 집집마다 토지신을 섬기나, 산동성에서는 마을 토지묘가 있을 뿐이지 집에서는 토지신을 섬기지 않는다. 당나라 구광정(丘光庭)의 『겸명서(兼明書)』사시(社始)에는 토지신이 혈거식 주거에서부터 보이며, 가정에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류(霤)’, 황제가 지내는 것을 ‘사(社)’라 한다고 적고 있다.115)丘光庭, 『兼明書』社始, “或問社之始. 答曰 始于上古穴居之時也 故『禮記』 家主霤而國主社者 古人掘地而居 開中取明 雨水霤入 謂之中霤 言土神所在 皆得祭之 在家爲中霤 在國爲社也 由此而論 社之所始其來久矣.”

갑골문자에서 ‘사(社)’ 자는 토지 또는 토지신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주나라에서는 천신과 동등한 위치이다.116)『禮記』郊特牲, “社祭土 社 所以神地之道也 地裁万物 天垂象 取財于地 取法于天 是以尊天而親地也 故敎民美報焉.”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이후 토지신은 세속화, 지역화되는 경향이 생기면서 실명을 가진 토지신이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등장하게 된다. 또한, 명·청 시기에는 토지신의 부인도 함께 모시게 된다.117)殷偉, 殷斐然, 『中國民間俗神』, 雲南人民出版社, 2003, pp.52∼55. 토지신의 생일은 2월 2 일이며, 민간에서는 이날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118)顧祿(淸), 『淸嘉錄』, “(二月)二日 爲土地神誕 俗稱土地公公 大小官廨 皆有其祠 官府謁祭 吏胥奉香火者 各牲樂以酬 村農亦家戶壺浆 以祝神厘.”

중국의 토지신은 집터, 사람들의 평안과 오곡 풍수를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 하북성 지역에서는 토지신 신체를 조벽(照壁)이나 대문 한쪽에 화상을 그려 모시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토지신의 성별은 남성으로 수염과 눈썹이 백색으로 그려져 있고, 때때로 토지할머니와 같이 모셔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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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토지신(하북성)
중국의 토지신(하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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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신의 화상 좌우에는 “土地堂前坐(토지당전좌) 四季保平安(사계보평안)”이라는 대련이 적혀 있다. 산서성에서는 토지신에게 집을 짓기 전, 흙을 파헤친 다음, 집을 지은 후 등 세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낸다.119)溫幸外 主篇, 『山西民俗』, 山西人民出版社, 1991, p.402. 집이 완공된 뒤의 제사에는 새 쌀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산서성에서는 뱀을 토지신으로 여겨 집 근처에서 뱀을 보면 절대로 죽이지 않고 향불을 피워 보내기도 하는데,120)위와 같음. 이러한 행위는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운남성 등지에서는 집터를 관장하는 신을 용으로 여겨, 집을 지을 때 용을 집터 안에 안장하는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대문에는 양의 뿔을 걸어둔다. 안동의 ‘용단지’를 토지신으로 보는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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