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4. 한국 가신의 특징
정연학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외래 종교가 우리나라 종교의 주축을 이루는 현 시점에서 원시적인 종교 형태인 가신신앙이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종교의 또 다른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폐쇄적인 공간, 즉 ‘안채’를 중심으로 주부들이 가신을 섬기었기 때문이다. 안채는 남성들이 드나들 수 없는 여성들만의 공간이고, 특히 외지인이 들여다볼 수 없는 ‘금남(禁男)’의 공간이다. 집을 매매할 때도 안채는 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따라서 안채를 중심으로 한 가신신앙은 오랜 전통성을 유지하고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신앙에서도 원시적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앙과 관련하여 보이는 쌀, 천, 짚, 물, 동전 등이 바로 그러하다.

한국의 가신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처럼 집의 일정한 영역에서 각각의 기능을 수행한다. 성주는 집의 중심이 되는 마루에서 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조왕은 부엌에서 가족의 건강을, 터주는 집 뒤꼍에서 집터를 보호하고, 문신은 대문에서 잡귀나 액운을 막는다. 그리고 성주를 비롯한 건물 내의 가신들을 건물 밖 에 좌정한 신들보다 그 지위를 높게 인정하여 고사 순서나 시루의 크기를 달리 하였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처럼 가신과 관련된 유래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가신 가운데 성주의 경우는 그 유래담이 풍부한 편이며, 한국과 중국의 뒷간신 유래담은 그 형식과 내용이 매우 흡사하다. 이 외에도 조왕에게 행해지는 엿 바르는 행위, 술 뿌리는 풍속 등은 한국과 중국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사찰의 조왕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가신의 신상(神像)은 보이지 않는다. 신은 본래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데, 인간이 후에 신상을 만들어 공경의 대상으로 만든 사실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가신의 형태는 종교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신상이 없는 가신을 섬기다 보니 불상이나 예수 등의 신상을 지닌 외래 종교에 쉽게 동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