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1. 예악(禮樂)의 기원
  • 음악과 제사
송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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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과 상형문자 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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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를 막론하고 고대 사회에서 음악과 제의(祭儀)는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의 기원을 논할 때 종교기원설에 특별히 힘이 실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둘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뿐더러 상호 보완해 주는 관계이기도 하다. ‘악’이라는 글자의 상형(象形)도 제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후한시대에 편찬한 중국의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악’이라는 글자에 대해 “오성(五聲)과 팔음(八音)을 총괄하는 명칭”이라 설명하면서 그 자형(字形)에 대하여는 “고비(鼓鞞), 즉 북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 하였다. 또 악 자의 아랫부분에 있는 나무 목(木) 자에 대해서는 “거(虡), 즉 악기를 위한 틀”이라 설명하였다.1) 『說文解字』 樂, “樂 五聲八音總名 象鼓鞞 木 虡也.” 이러한 설명을 보면 풍류 악 자는 틀 위에 올려놓은, 혹은 걸어놓은 악기의 상형이 된다. 고대에 북 종류의 악기를 비롯하여 종(鐘)이나 경(磬)과 같은 악기들은 모두 나무로 된 틀에 올려놓거나 걸어서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악기들은 모두 제사를 위해 사용되었다.

음악의 여러 기원설 가운데 하나가 종교기원설이다. 인간이란 우주 대자연의 무한한 변화 안에서, 그 변화를 바라보며 지극히 미약한 존재로 살아 왔다. 자연에 대항할 힘을 갖추지 못한 채 그 앞에서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은 그 대상이 자연이든, 신이든 혹은 조상이든 어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자를 상정해 놓고 그를 경배하고 숭배하는, 혹은 존경을 표하는 행위를 해 왔다.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과 음식을 내려준 것도 자연, 혹은 조상, 신, 절대자였다. 그 대상에 대한 경배, 두려움, 존경의 의미 를 표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 예(禮)와 악(樂)의 기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다. 그러한 행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정한 틀을 갖추게 되고 일정한 틀로 정형화된 것이 ‘의식’ 혹은 ‘의례’로 규범화되어 예와 악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음악의 기원에 관한 설은 언어 기원설만큼이나 분분하고 다양한 내용이 알려져 있다. 종교 기원설 외에 민족음악학자들이 주장하는 음악 기원론은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 19세기의 학자 영국의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은 진화론(進化論)적 관점에서 음악의 기원을 설명한다. 다윈은 이성(異性)을 구하고 유혹하기 위해 내는 동물의 울음소리를 모방하려는 시도에서 음악이 시작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설은 인류의 초기 노래 중에 구애(求愛)의 요소를 지닌 노래의 역할은 미미한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사한 계열의 기원론으로 감정 표현 차원에서 나오는 분노, 공포, 기쁨, 고뇌 등의 목소리가 음악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라는 관점의 논의도 있다.

또 다른 기원설로는 칼 뷔혀(Karl Bücher, 1847∼1930)의 주장에 근거한 노동기원설이다.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을 할 때 노동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특정한 리듬이나 음향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창조로 이어져 음악이 발생한 것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이 역시 초기 인류에게 리듬을 붙여 행하는 공동 노동은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타당한 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언어기원설인데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와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음악이란 곧 회화체의 언어, 즉 일상 회화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음높이에서 만들어졌으므로 ‘강조된 언어’가 곧 음악이 되었다는 설이다. 후에 독일의 작곡가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와 같은 음악가들 도 이 설에 동조하였다. 강조된 언어라고 한다면 일종의 ‘외침 소리’와 같은 것인데, 외침 소리가 음정의 간격을 두게 되고 그것이 일정 선율로 유도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말하는 것과 같은 선율은 일정한 음높이를 지니고 있는 선율과는 다르므로 이 또한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그 외에도 정보 전달을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타악기로 치는, 혹은 관악기로 부는 소리, 즉 신호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한 리듬을 부여하여 음악을 연주하였고, 그 음향들이 음악을 창조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라 보는 관점도 있다. 또 사람에게 있는 유희 본능에서 음악이 발생하였다는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러한 모든 설 가운데에서도 역시 인간이 미약한 존재이므로 절대자에 향해 기원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제사하는 행위에서 음악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일군의 학자들은 이러한 기원설 모두가 그릇된 전제에서 시작되었으므로 타당치 못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음악과 같이 복잡한 것을 단일 근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음악이란 사람들의 신체적 동작 충동, 혹은 마음의 무의식적인 이미지와 결부되며 또 여러 형태,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의 정서와 결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간단한 공식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이처럼 음악의 기원에 대한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가지만으로 단일한 기원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인 듯 보이지만 초기 음악의 특징에 대하여는 추정이 가능하다. 민족 음악학자인 쿠르트 작스(Curt Sachs, 1881∼1959)는 초기 음악은 단순한 음고와 리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추정하면서 “초기 음악은 간단한 노래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류 최초의 악기는 곧 인공적인 것이 아닌, ‘사람의 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 사람들의 생활 그 차제에서 나오는 것으로 휴식을 취할 때, 한가롭게 일할 때, 시름을 잊기 위해서, 병을 고치기 위한 마술, 혹은 특정한 목적의 주문행위로, 인간을 위협하는 짐승들을 쫓을 때, 특정한 의례를 행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일정한 선율 패턴이 되고 그것이 곧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쿠르트 작스는 초기 인류의 노래 형태를 당시 현존하는 종족이 의식 행위의 하나로 부르는 노래의 선율형태에서 찾은 바 있다. 초기 인류의 노래로서 특정 의례를 위해 행하는 선율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아주 간단한 선율형을 채보하여 그 특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2) 음악의 기원에 관한 설은 Hugh M. Miller, 세광음악출판사 편집부 역, 『History of Music』, 세광음악사, 1993과 Curt Sachs, 국민음악연구회 역, 『The Rise of Music in the Ancient World East and West』, 국민음악연구회, 1976 참조.

쿠르트 작스가 제시한 선율은 매우 간단하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발달된 형태의 시(詩) 형식을 갖추었다기보다는 간단한 구음이거나 혹은 간단한 내용의 후렴구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특정한 시에 얹어서 부르는 노래가 제사에 사용되는 전통은 제사 음악이 보다 발달한 단계에 나아갔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되면 시와 음악과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려하는 양상으로 제사를 위한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려지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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