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1. 예악(禮樂)의 기원
  • 예와 제사
송지원

동양의 삼대 예서(禮書)의 하나인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서는 예의 시초가 음식(飮食), 즉 마시고 먹는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마시고 먹는 일은 인간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 행위이다. 절대 존재자, 혹은 조상을 향해 무언가를 기원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에 음식을 올리는 것도 그것이 곧 인간의 생명 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음식은 곧 신을 제사하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제사할 때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장만하여 음악과 함께 신에게 바치는 행위가 ‘예’로 드러나는 수순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예(禮)의 형성은 악(樂)의 경우와 유사하게 제사 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기』 예운편의 기록을 보자.

대저 예의 시초는 음식에서 비롯되었다. 기장을 돌 위에 얹어 굽고, 돼지의 고기를 찢어서 구워 먹고, 땅에 구덩이를 파서 물을 담아 손으로 움켜 마시고, 흙으로 만든 몽둥이로 북채를 만들고 흙을 뭉쳐 북을 만들어 두드렸지만 오히려 이로써 그 공경하는 마음을 귀신에게 바칠 수 있었다.3) 『禮記』 禮運, “夫禮之初 始諸飮食 其燔黍捭豚 汙尊而抔飮 蕢桴而土鼓 猶若可以致其敬於鬼神.”

『예기』 예운편의 기록은 인류의 발달사에서 인간이 농경행위를 시작하여 곡식을 먹는 단계에 진입한 시기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거친 음식이나마 신에게 올리고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는 행위가 곧 ‘예’로써 발현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인 것이다. 공, 예의 행위 또한 절대자, 혹은 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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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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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 ‘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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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예’라는 글자의 뜻에 대해 “예는 리(履)이다. 귀신을 섬겨 그것으로 복을 얻으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4) 『說文解字』 禮, “禮履也 所以事神致福.” ‘예’의 자형을 보면 보일 ‘시(示)’ 변에 ‘풍(豐)’자가 결합되어 있다. 보일 ‘시’자는 하늘에서 ‘상(象)’을 내려준다는 의미로 길흉을 보여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제시하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보일 ‘시’자의 자형을 보면, 세 줄이 아래로 내려져 있는데, 이는 해 와 달, 그리고 별을 의미한다. 해와 달, 별은 천문을 관찰하고 시간의 변화를 살펴서 신이 하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다.5) 『說文解字』 示. 또 ‘시’자와 함께 결합한 ‘풍(豐)’자의 자형은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인 ‘두(豆)’ 위에 음식을 담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두(豆) 중에서도 음식을 풍성하게 담은 것을 풍(豐)이라 한다. ‘예’라는 글자에 담겨진 의미는 곧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여 제사행위를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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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 ‘(豐)’
상형문자 ‘(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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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고시대에 행해지던 의례 중 신을 섬기고 복을 얻고자 하는 의미로 행하는 제사는 여타 의례보다 가장 앞서 시행되었던 정황이 보인다. 예와 악의 기원을 종교적 의례에서 찾는 기원론자들이 가장 많은 점도 곧 그러한 사실을 인지시켜 준다. 또한, 의례를 행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의 깊은 의미는 단지 박자에 맞추어 노래하고 연주하는 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공경하는 마음을 바쳐 그 뜻이 신에게 이르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6) 陳暘, 『樂書』 권4, 「禮記訓義」 禮運. 이때 제사의례에 수반되는 음악은 제사를 올리는 전일한 마음을 가장 온전하게 드리기 위해 동원되는 최상의 표현 형태의 하나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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