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2. 음악과 이념
  • 예와 악의 나라, 조선
송지원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예치(禮治), 곧 예와 악을 균형적으로 추구하는 정치를 펼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건국 초기부터 고려의 유습인 연등회와 팔관회를 폐지하였고 문묘 석전제를 지냈으며, 각종 의례 시행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여 새롭게 제정해야 할 의례를 보완, 오례를 정비하여 국가 예제(禮制)를 갖추고자 하였다.

조선의 개국공신이면서 태조의 즉위 교서를 작성한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조선 법전의 효시를 이룬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인(仁)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자리를 인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이 인을 최고 이념으로 삼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건국하였음을 강조한 것으로, 조선을 건국한 때가 곧 “예악을 흥기시키는 적기”라고 하였다. 이러한 조선의 통치 이념은 건국 초기부터 조선 국가 전례(國家典禮)의 틀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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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방곡』
『정동방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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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전례에서 연주될 악을 갖추기 위해 여러 음악 기관을 마련한 것도 그러한 움직임의 하나였다. 아악서(雅樂署)를 두어 종묘에 제사지낼 때 연주할 음악을 담당하도록 하였고, 전악서(典樂署)를 두어 조회와 연향(宴享)에 쓰일 당악과 향악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또 왕의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을 칭송하기 위한 여러 악장(樂章)을 지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하였다. 태조의 무공을 서술한 「납씨가(納氏歌)」, 태조가 왜구를 물리친 공을 노래한 「궁수분곡(窮獸奔曲)」, 태조의 위화도 회군의 공적을 노래한 「정동방곡(靖東方曲)」 등이 모두 개국공신 정도전이 조선 건국을 칭송하는 의미로 지은 악장들이다. 이로써 “공이 이루어지면 악이 지어진다.”는 의미를 드러냈다.

정도전은 이러한 악장을 지으면서 동시에 “정치하는 요체가 곧 예악에 있다.”고 강조하는 전문(箋文)을 지어 태조에게 올렸다. “예악을 정하여 법칙을 정함으로써 질서 정연하게 차례가 있고, 화락하게 되었으며, 예악을 정함으로써 공이 이루어지고 정치가 안정되는 것”이라는 내용이 그 핵심이다. 이에 대해 태조는 정도전에게 채색 비단을 내려 주었고, 악공(樂工)에게는 정도전이 지은 악장을 연습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예와 악의 정치를 강조하였고 오례의 틀을 바탕으로 의례를 행하게 되었다. 오례는 예와 악의 질서를 외부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예와 악이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이루는 형태로 제정된 각각의 궁중의례에서 이를 시각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유학적 이념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여러 의례와 음악은 각각의 의례에서 용도에 맞게 쓰였고, 이러한 오례는 각종 오례서에 그 외형적 틀이 정리되기에 이르렀다.

주지하듯이 유가 악론에서 예는 질서를 위한 것으로 ‘구분짓기 위한’ 기능을 가지며, 악이란 화합을 위한 것으로 ‘같게 하기 위한’ 기능을 가져 서로 상보적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설명한다. 예는 행 실을 절도 있게 하고, 악은 마음을 온화하게 하며, 절도는 행동을 절제하고, 온화함은 덕을 기르는 것이며, 악이 지나치면 방종에 흐르고, 예가 지나치면 인심이 떠난다는 『예기』 악기의 논리는 조선 예악정치의 기반을 이루었다. 예악정치는 예와 악 두 가지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 실행될 때 진정한 가치를 발하게 된다. 조선조에 시행된 각종 국가 전례에 음악이 수반되는 것에는 곧 이러한 이념적 기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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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세종조 회례연)
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세종조 회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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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의 각종 의례는 오례, 즉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賓禮)·군례(軍禮)·흉례(凶禮)의 하나로 행해졌다. 제사, 혼례, 조회, 책봉례, 존호(尊號)의례, 외국 사신 접대 관련 의례, 활쏘기, 사냥, 죽음과 관련한 의례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러한 의례는 각 시기마다 일정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행해졌다. 매해 정해진 날에 행하는 의례가 있는가 하면, 특정한 날을 지정해서 행하는 의례가 있으며 국 상(國喪)처럼 갑작스럽게 행하게 되는 의례도 있다.

이러한 궁중의 의례는 예악사상에 기반을 두고 제정된 각종 의례의 의주(儀註)에 그 시행절차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례 중의 길례는 천·지·인에 대한 각종 제사의례가 중심이 되며, 가례는 혼례·조회·조하(朝賀)·책봉례·양로연 등의 의례, 빈례는 중국과 이웃 나라의 사신맞이와 관련한 의례, 군례는 활쏘기, 강무 등의 군사 관련 의례, 흉례는 왕실의 상장례와 관련된 의례를 포함한다. 이들 의례를 포괄적인 의미에서 국가 전례라 한다.

국가 전례란 국가의 공식적인 의례로서 한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적 지형과 도덕적 가치가 일정한 의례의 틀로 가시화되고 구체화된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행한 국가 전례를 통해 예악정치를 표방한 조선이 유교적 예치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과정에서 추구한 국가 예제의 전형적 틀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의례의 대부분에는 악이 수반되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악’이란 유가 악론에서 말하는 총체적 의미의 악으로서 악·가·무, 즉 기악·노래·춤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이다.

조선조에 시행된 여러 국가 전례는 각종 오례서와 악서(樂書) 그리고 법전에 그 틀과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를 필두로 세조대의 『세조실록악보(世祖實錄樂譜)』, 성종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악학궤범(樂學軌範)』,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조선 전기의 의례와 음악, 예법을 기록하였다. 오례서의 편찬을 통해 국가 전례를 정비하고, 악서 편찬을 통해 음악을 정비하며, 법전 편찬을 통해 예법 질서를 구축하는 것은 예악정치를 성실히 구현하기 위해 역대 제왕이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조선 후기에도 이어져 영조대의 『국조속오례의』, 『국조악장』, 『동국문헌비고』의 악고, 『속대전』 등이, 정조대의 『국조오례통편』, 『춘관통고』, 『시악화성』, 『국조시악』, 『대전통편』과 같은 예서와 악서, 법전의 기록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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