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3. 의례와 상징
  • 사대문에서 행하는 기청제(祈晴祭)
송지원

기청제란 큰 비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도성의 사대문인 숭례문, 흥인문, 돈의문, 숙정문에서 각 방위의 산천신(山川神)에게 재해를 중지하도록 기원하는 의례이다. 고대부터 영제(禜祭)로 불려왔는데, 재앙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닌 제사이기 때문이다. 재앙이란 수재만이 아닌 한재, 역질 등도 포함하므로 후에는 한재를 막는 것을 우제(雩祭), 수재를 막는 것을 영제(禜祭)로 구분하여 썼다.

영제는 도성의 사대문에 당하 3품관을 보내 3일 동안 행하였다. 그런데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다시 세 차례에 걸쳐 거듭 시행하도록 하였고 나아가 지방의 산천과 악해독(嶽海瀆)에서 기원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도성 내 4개 국문에서 거행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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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큰 비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기청제 혹은 영제를 행하기도 하였지만,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예컨대 왕이 친히 사직제를 행할 때, 왕의 시신을 모신 대여(大轝)가 나가는 발인의(發引儀) 를 행할 때, 신주를 종묘에 모시기 위한 부묘의(祔廟儀)를 거행하기 위해, 혹은 군례(軍禮)의 하나로 행해진 강무의(講武儀)와 같은 의례를 앞두고 청명한 날씨를 빌기 위한 기청제도 행해졌다.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다가오는데 큰 비가 내려 의례가 중단되는 일을 가볍게 보아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긴 비가 내려 일 년 동안 정성들여 심고 가꾼 곡식을 모두 잃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오랜 비가 내려 수마가 휩쓸고 지나간 국토의 황폐함을 그대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 비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도 중요하였지만 날이 개기를 비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였다. 이때 사대문의 문루에서는 영제를 거행하여 각 해당 방위의 산천신에게 비를 그치도록 기원하였다. 희생은 돼지 한 마리를 쓰는 소사(小祀)의 규모로 행하였다. “장맛비가 그치지 않으면 곡식이 상할 것이니 바라건대 도와주시어 때에 맞추어 날이 개기를 빕니다.”라는 내용으로 제사를 올렸다.

비를 그치도록 기원하는 제사이고 산천신에게 비는 제사인데 북교(北郊)가 아닌 사대문에서 거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례정의』에서는 ‘재해’란 사람의 일을 통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고, ‘문’이란 사람이 출입, 왕래하여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해석하였다. 그렇다. ‘문’이 지니는 가장 소중한 화두 가운데 하나는 ‘소통’이다. 이쪽과 저쪽을 서로 통하게 하는 기능이다. 큰 비를 내려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이 막히게 하였으니, ‘소통’을 상징하는 ‘문’에서 재해를 중단하도록 비는 것은 미약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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