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2 음악과 일상 생활
  • 01. 아이들의 노래
  • 아이들의 노래
  • 아이들의 노래-동요
이용식

이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살펴보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놀면서 매우 많은 노래를 부른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이나 만화책을 보면서 논다. 그러나 몇 십년 전만하여도 아이들은 밖에서 땅따먹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하였고, 여자 아이들은 줄넘기도 하였는데, 요즘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걸 보기가 쉽지 않다. 축구나 야구도 축구교실이나 야구교실에서 배우는 시대이니 요즘 아이들은 밖에서는 놀지 않고 방에서만 노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놀면서 배우고 부르는 노래가 없어졌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푸른 하늘 은하수> 같은 동요도 일제강점기 이후에 새롭게 작곡된 창작 동요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동요는 ‘전래동요’라는 명칭으로 최근에야 뜻있는 이들에 의해 재조명되는 실정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밖에서 함께 어울려 놀면서 부르는 노래가 많았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는 노래를 부르는 건 누구에게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모래 집을 지으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하면서 부르던 노래도 매우 흔한 노래이다. 예전에는 두꺼비뿐만 아니라 황새나 까치나 제비를 불러 집을 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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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야 물 여라 / 두껍아 집 지라

황새야 집 지라 / 굼벵아 물 너라

까치집을 지까 / 소리개집을 지까

독사집을 지까 / 꼭꼭 눌리라.52) 최상일,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2, p.197.

이렇게 사람들 가까이에 살면서 집을 잘 짓는 새인 황새, 까치, 제비를 부르기도 하고, 땅속으로 파고 들어 가는 능력이 뛰어난 두꺼비나 굼벵이를 불러서 집을 짓는다. “이런 것도 ‘노래’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적 행위(verbal behavior)’ 중에서 일정한 리듬에 얹어 부르고 일정한 가락을 갖는 것이 노래라는 학술적 정의를 생각하면 ‘이런 것’도 훌륭한 노래이다.

어린이들이 지금도 부르는 <구구단>을 생각해보라.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이오 십…” <구구단>은 일정한 리듬과 가락을 갖는 훌륭한 노래이다. 우리 선조들은 예전에 <천자 문>을 ‘읽지’ 않고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 황”하면서 노래에 얹어 ‘낭송’하였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고 낭송하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송서(頌書, 책을 낭송함)’, ‘독서성(讀書聲, 책을 소리내어 읽음)’, 또는 ‘시창(詩唱, 시를 노래함)’이라고 하였고, 이런 식의 글을 읽는 방법은 최근에는 ‘노래’의 한 갈래로 분류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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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당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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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노래에 얹어 부르면 학습효과가 배가된다는 점은 교육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글을 ‘노래하는’ 학습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선조들도 잘 알고 있었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3)은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수습한 다음 소리를 내어 읽고 외우되, 읽는 회수를 많이 쌓으면 난숙해진 나머지 의리가 저절로 남김 없이 해석되는 지경 에 이르게 된다. 때때로 성독을 그치고 정신을 집중하여 뜻을 깊이 완색하여야 되니, 이것이 사색하는 일이다.53) 『퇴계전서』; 박균열, 「지리산 지역 출신 한학자의 한문 독서성」, 『옛글 속에 담겨있는 우리 음악』 3,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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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성,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54) 『옛글 속에 담겨있는 우리 음악』 3, 국립민속국악원, 2008.
독서성,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54) 『옛글 속에 담겨있는 우리 음악』 3, 국립민속국악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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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던 노래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하였던 미국인 역사학자이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가 1896년에 채보한 동요가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하는 노랫말을 가진 것이다. 물론 가락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와 약간 다르지만, 120년 전의 어린이들이 부르던 노랫말이 지금의 노랫말과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요가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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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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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
호머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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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전 통적인 동요는 일제강점기 이후 점차 사라지고 일본음악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동요가 만들어지면서 동요는 우리 전통음악 어법을 잃은 채, 일본식 동요가 마치 우리의 동요인 양 받아들여졌다. 일제는 20세기 초에 우리에게 일본을 통해 여과된 서양음악을 학교 현장에서 교육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런 음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창가(唱歌)와 동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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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채보 동요55)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멸망사)』, 1906.
1896년 채보 동요55)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멸망사)』,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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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는 일본에서 서양음악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노래인데, 우리나라에는 1908년 최남선의 <경부철도가>가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창가는 7·5조의 노랫말을 갖고 도-레-미-솔-라의 5음 음계로 된 일본의 요나누키 음계로 되어 있는 특징을 갖는다. 창가는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음악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래음악이다.56) 함경도 민요로 널리 알려진 <돈돌날이>도 창가풍의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 민요화한 사례이다(이용식, 「창가에서 민요로: 함경도 북청 민요 「돈돌날이」의 형성에 관한 연구」, 『한국민요학』 7, 1999, pp.199∼224).

창가가 일본에서 들어오면서 창가풍의 동요가 1920년대부터 많은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동요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윤극영의 <반달>이나 박태준의 <오빠생각>과 같은 동요인데, 이들은 7·5조 혹은 그 변형인 8·5조의 노랫말을 갖고 창가의 운율과 리듬으로 만들어진 노래이다.57) 홍양자, 『빼앗긴 정서 빼앗긴 문화』, 도서출판 다림, 1997, p.18. 이런 창작 동요 외에 우리가 어려서부터 놀면서 부르는 노래들 상당수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예를 들어 ‘셋셋세’로 시작하는 손뼉치기 노래인 <아침바람>, 술래잡기 노래인 <여우야 여우야>, 줄넘기 노래인 <꼬마야 꼬마야>, 꽃찾기 놀이인 <우리 집에 왜 왔니> 등이 모두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런 노래와 놀이를 우리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본 어린이들의 놀이와 노래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58) 홍양자, 앞의 책, p.19. 재일교포 음악학자인 홍양자는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어린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는 이것이 일본인지 우리나라인지 당혹스러워하였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1995년 9월 학교에서 운동회 준비가 한창일 때 제주 시내의 초등학교를 방문하면서 나는 놀이를 수반하는 전래동요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중략) 전래동요로 꾸민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사용된 전래동요는 <우리 집에 왜 왔니>, <여우야 여우야>에 이어서 줄넘기 노래인 <똑똑똑 누구십니까>와 <꼬마야 꼬마야>, 손뼉치기놀이의 <아침바람> 그리고 대문놀이의 <문지기 문지기> 등이었다. 이러한 노래들은 교육용 레코드로 각 학교에 보급되어 있었다. 그 중 <문지기 문지기>는 <강강술래>의 삽입곡으로 대문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이며, 이 노래를 제외한 다섯 곡은 이상하게도 일본의 전래동요와 상통하는 점이 많았다. 우리말로 된 노래만 없었다면 일본에서 운동회 연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어느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고 있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때 흘러나온 운동회용 레코드 음악은 비록 가사가 없었지만 곡만 들어도 지금 무슨 경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하는 운동회와 같은 것이었다.59) 홍양자, 앞의 책, pp.18∼20.

이렇듯이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일본의 ‘전래동요’이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에 유입되어 스며든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동요는 <강강술래> 정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최근에야 우리의 ‘전래동요’를 다시 찾으려는 시도가 있고, 이를 음악교과서에 실으면서 우리의 전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일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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