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2 음악과 일상 생활
  • 05. 풍자와 음악: 탈놀이 음악
  • 풍자와 음악: 탈놀이 음악
  • 탈놀이 음악의 지역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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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해서지방의 탈놀이는 탈춤이라고 한다. 해서 탈춤은 학자에 따라 두 가지 유형 혹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경우에는 봉산(사리원), 재령, 신천, 은율, 송화, 장연, 서흥 등지의 북쪽에서 전해지는 봉산탈춤형과 해주, 강령, 옹진, 배천, 연앙 등지의 남쪽에서 전해지는 해주 탈춤형으로 구분한다.81)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경우에는 서쪽 평야지대인 봉산, 황주 등지에서 전해지는 탈춤, 동남쪽 평야지대인 안악, 재령, 신천, 장연, 송화, 은율 등지에서 전해지는 탈춤, 그리고 해안지대인 해주, 강령, 옹진, 송림, 추화, 금산, 연백 등지에서 전해지는 탈춤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82) 박전열, 『봉산탈춤』, 화산문화, 2001. 이 중 서쪽 평야지대의 봉산탈춤, 동남쪽 평야지대의 은율탈춤, 그리고 해안지대인 강령탈춤이 각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해서지방 탈춤의 음악은 황해도에서 전승되던 것으로서 탈춤의 반주음악을 ‘황해도 피리가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황해도 피리가락은 피리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아니라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던 가락을 일컫는 것이고, 이를 ‘해주 삼현육각’이라고도 한다. 황해도 피리가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예능보유자였던 박동신(朴東信, 1909∼1991)에 의해 주로 전승되었으며, 현재는 해서 탈 춤과 해주 검무 및 평양 검무의 반주음악으로도 연주된다. 해주 삼현육각은 긴짜(상령산), 중령산, 긴염불, 자진염불, 도드리, 자진도드리, 타령시나위, 늦타령, 자진타령, 굿거리, 길군악 등으로 되어 있다. 이들 중에서 박동신의 가락으로 봉산탈춤과 강령탈춤의 반주음악으로 도드리, 늦타령, 자진타령, 굿거리 등이 전한다.

해서 탈춤은 쌍피리(피리 두 대), 젓대, 해금, 장구, 북의 삼현육각으로 반주하는데, 황해도에서는 이를 ‘새면(삼현의 와음)’이라고 부르며 악사는 ‘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서는 악사가 부족하면 쌍피리, 장구, 북 등의 4잽이로도 편성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과장에서 법고와 꽹과리를 치면서 춤을 추기도 한다.

경기도의 탈놀이는 산대놀이라고 한다. 산대(山臺)는 궁중 등에서 대규모 의식이나 놀이를 위해 만든 산(山) 모양의 임시 무대를 일컫는다. 산대놀이는 고려시대 이후 행해졌다는 각종 기록이 있기 때문에 산대놀이는 현재 전승되는 탈놀이 가운데 그 기원이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여겨진다. 산대놀이는 본래 서울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것이다. 주로 사직골, 구파발, 애오개(아현동) 등에서 행해지다가 이것이 경기도 일대에 퍼지면서 서울의 산대놀이는 본산대놀이라 하고, 본산대를 모방하여 별도로 만든 것은 별산대라고 하게 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양주별산대놀이의 탈꾼은 다른 탈놀이의 경우와 같이 대부분 반농반예(半農半藝)의 비직업적인 탈꾼들로 구성되어 왔으며, 이속(吏屬)과 무부(巫夫)가 많았다. 일반인들은 탈을 쓰면 조상의 넋이 겁을 내어 제사를 못 지낸다고 하여 꺼려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예전에는 악사를 위한 삼현청이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피리, 젓대, 해금, 장구, 북의 삼현육각으로 반주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금 대신에 아쟁이 편성되기도 한다. 1964년에 양주별산대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석거억(石巨億, 1911∼198?)이 피리 악사 기능보유자 로 지정받았다. 이 외에 탈놀이패가 길놀이를 하면서 꽹과리, 징, 태평소가 추가되어 풍물을 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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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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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놀이에서 대부분의 춤은 보통 빠르기의 타령장단(3소박 4박자)과 조금 느린 염불장단(2소박 6박자)에 맞춰 추는데, 양주별산대놀이에서 가장 많이 추는 깨끼춤은83) 깨끼춤은 ‘깎는다’, ‘깎아 내린다’ 혹은 ‘깍아 없앤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 춤은 거드럼춤에 이어지는데, 매듭이 절도가 있고, 손짓 동작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타령장단에, 거드럼춤은84) 거드럼춤은 ‘거들먹거린다’ 혹은 ‘거드름피운다’는 뜻이다. 주로 팔을 벌리고 느린 염불장단에 맞춰서 느린 동작으로 발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방을 향해 추는 것이다. 거드럼춤은 사방치기, 용트림, 합장 재배, 부채놀이 등으로 다시 세분된다. 염불장단에 맞춰 춘다. 이 외에 허튼춤은 굿거리장단(3소박 4박자)에 맞춰 춘다. 또한, 제5과장 팔목중춤에서 제2경 침놀이에서 제3경 애사당 북놀이로 바뀔 때는 빠른 당악장단(3소박 4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제7과장 샌님춤에서 제2경 포도부장놀이에서 샌님이 까치걸음춤을 출 때는 세마치장단(3소박 3박자)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이들 장단명은 각 곡의 악곡명이 되기도 하는데, 삼현육각에 연주되는 기악선율은 놀이의 중간에 분우기를 고조시키는 기능을 한다.

경상남도 동남부지방의 탈놀이는 야류(野流) 또는 들놀음이라고 한다. 이는 주로 동래와 수영과 같이 예전에 큰 상업권을 이루었던 지역에서 전승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수영야류는 부산시 수영구 일대에서 전승되는 탈놀이이다. 수영(水營)이라는 지명은 원래 좌수영의 준말로서 조선 선조 때 현재의 수영동에 경상좌 도 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즉, 수영은 예로부터 부산 지역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야류를 비롯한 좌수영 어방놀이 등의 공연예술이 발달하였다.

수영야류는 주로 정월 대보름날 연행한다. 정월 대보름날 오전에 수(首)양반이 주축이 된 탈놀음패가 산정머리 송씨할매당과 최영장군당, 그리고 북문 밖 조씨할배당 등 수영 마을의 동제당을 돌고 고사를 울린다. 해질녁에는 길놀이패가 매구를 치며 시장 근처의 공터에 마련된 놀이마당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탈놀음이 시작된다.

수영야류의 춤을 반주하는 풍물패는 타악기와 호적으로 구성된다. 보통 꽹과리 1∼2명, 징 1명, 북 1∼2명, 장구 4∼5명, 소고 10여명 등 20여명으로 구성된다. 풍물패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하늘색 쾌자를 입고, 머리에는 붉은 색 또는 노란 색의 조화가 달린 고깔을 쓰며, 설쇠·설장구·설북은 3송이 꽃을 고깔 위에 달아 쓴다. 풍물패는 길놀이를 인도하는 역할부터 놀이마당에서 군무를 반주하고 여러 과장에서 놀이의 반주음악을 담당하여 흥을 돋우고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풍물패의 우두머리는 설쇠라고 한다.

수영야류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보통 빠르기의 굿거리장단(3소박 4박자)이 많이 쓰인다. 또한, 상황이 급박하거나 고조된 분위기를 묘사할 때는 조금 빠른 자진모리장단(3소박 4박자)을 치며, 그 밖에 양반과장의 <갈까부다타령>에서는 세마치장단(3소박 3박자), 할미·영감 과장의 봉사 독경소리와 사자무 과장의 사자가 잡아먹는 대목에서는 빠른 휘모리장단(3소박 4박자)을 친다.

경상남도 서남부 지역에는 오광대라는 탈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오광대는 다섯 광대, 즉 다섯 명의 탈을 쓴 연희자의 놀이라는 뜻에서 나왔다는 설과 다섯 과장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오광대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경상남도 남부, 특히 낙동강 서부 지역인 고성, 통영, 가산, 진주 등지에서 연행되는 탈놀이의 일반 명칭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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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오광대 가면(탈)
통영오광대 가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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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통영오광대는 통영 지방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로서 1964년에 지정되었다. 통영은 예로부터 해로교통이 발달하여 부산에서 여수를 잇는 항로의 중심지였고, 1604년에 삼도수군통제영이 들어서면서 남해안 해양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통영에서는 무신(武神)인 뚝신(纛神)을 모시는 뚝사(纛司)에서 뚝제(纛祭)를85) 뚝제에는 악가무가 따랐는데, 초헌에는 납씨가를 연주하고 干戚舞를, 아헌에는 납씨가를 연주하고 弓矢舞를, 종헌에는 납씨가를 연주하고 槍劍舞를, 철변두에는 정동방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지내기도 하였고, 오광대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통영오광대의 반주음악은 꽹과리·장구·북·징의 사물에 호적이 더해진다. 문둥탈춤에서는 소고를 무구로 쓴다. 통영오광대에서는 악사를 ‘새면(삼현의 와음)’이라고 하는데, 이는 삼현육각에서 온 말이다. 현재 통영오광대에서 삼현육각을 연주하지는 않지만 악사를 새면이라고 부르는 것은 통영이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가 있었던 경상남도 남부 지역 문화의 중심지로서 삼현육각이 성행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도 통영오광대는 삼현육각으로 반주하였다. 통영오광대의 춤은 대개 굿거리장단(3소박 4박자)에 춘다.

함경남도 북청을 비롯한 함경도에서는 예전부터 사자놀이가 성행하였는데, 이는 북청 전 지역에서 마을마다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지던 민속놀이이다. 북청사자놀이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현재 북청 출신 월남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비록 사자가 없었지만, 삼국시대에 이미 사자놀이가 연행되었었다는 것은 신라에서 우륵이 만든 12곡 중의 사자놀이인 <사자기(師子伎)>나 최치원(崔致遠, 857∼?)이 쓴 <향악잡영오수(鄕樂 雜詠五首)>의 사자놀이인 <산예(狻猊)>에서 확인된다. 그만큼 사자놀이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이고, 사자탈은 우리나라 거의 모든 탈놀이에 등장할 만큼 중요하다. 이런 사자놀이를 놀이의 한 과장으로 추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 함경도의 사자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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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사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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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에서는 대개 정월 대보름에 사자놀이를 하는데, 마을 청년들이 횃불싸움을 한 후 도청 앞마당에서 사자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본래 북청에서는 사자가 한 마리만 등장하였었지만, 현재 연행되는 북청사자놀이는 두 마리의 사자가 등장한다. 즉, 민속놀이가 현장에서 유리되면서 변화한 것이다. 사자놀이를 마치면 마을 사람들은 사자를 앞세우고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지신밟기와 유사한 의식을 거행한다. 사자의 머리에는 큰 방울을 다는데, 이는 방울소리를 통해 잡귀를 쫓으려는 축귀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북청사자놀이의 음악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북청사자놀이에서는 장구, 북, 징의 타악기 외에 퉁소가 반주악기로 쓰인다. 퉁소는 보통 두 명 이상이 연주하는데, 북청사자놀이는 현재 전통음악 장르 중에서는 유일하게 퉁소가 연주된다. 북청사자놀이에서 는 장구가 장단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북이 주된 장단을 연주하는 것도 특이하다. 예전에는 꽹과리를 치는 마을도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꽹과리를 편성하면 퉁소 소리가 죽는다고 하여 꽹과리는 편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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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사자놀이 퉁소 연주
함경남도 북청사자놀이 퉁소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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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북청사자놀이 퉁소 가락
함경남도 북청사자놀이 퉁소 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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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북청사자놀이에서 주된 연행마당을 이루는 사자춤은 초장·중장·종장의 세틀(三機)형식으로 되어 있다. 세틀(三機)형식은 전통음악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음악형식이다. 대개 느린 템포, 중간 템포, 빠른 템포로 구성되는 세틀형식은 고려가요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조선시대의 궁중음악이나 정악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세틀형식은 전통음악에서는 흔한 형식이지만 탈놀이에서는 북청사자놀이에서만 보이는 것이다. 사자춤의 세틀형식은 3소 박 4박자(12/8박자) 장단이 약간 느린 장단(초장)-중간 속도의 장단(중장)-빠른 장단(종장)이 한 틀을 이룬다. 이 외에 북청사자놀이에서 연주하는 장단은 대부분이 3소박 4박자 장단이다. 마당놀이(연풍대), 애원성춤, 사당·거사춤, 무동춤의 장단은 모두 같다. 넋두리춤과 퇴장곡(파연곡)의 장단은 사자춤 중장과 같다.

셋째, 북청사자놀이의 사자춤을 반주하는 사자곡의 퉁소 가락에서는 반음이 출현한다. 사자곡은 도-레-파-솔-라♭의 5음 음계로 되어있는데, 솔-라♭의 반음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음이 있는 유반음(hemitonic) 5음 음계는 우리 전통음악에서는 거의 유일하다.

탈놀이는 오늘날에는 단순히 ‘놀이’로 여겨지지만 본래는 ‘탈’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쁜 액운을 물리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민속신앙의 일부로 연행되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탈놀이도 주로 세시 명절에 많이 연행되었다. 탈놀이는 삼현육각 악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예술적인 놀이로 발돋움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우리 민족에게 음악은 ‘예술’이 아니라 ‘삶’이었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라고, 죽으면 상여꾼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일생을 마감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도, 고된 농사일을 할 때도, 세시풍속을 맞아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놀 때도, 잔치집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놀 때도, 늘 음악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음악이 늘 함께 하는 것은 음악을 통해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고 개인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우리 민족에게 가족공동체와 마을공동체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집단을 이루는 단위이다. 가족 안에서 개인이 존재하고, 가족이 어우러져 마을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의 모든 행위에는 노래와 음악이 함께 하는데, 이는 음악이 공동체 구성원의 화합을 도모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를 통해 놀이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하고,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통해 공동체 작업의 노동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세시풍속에서 연행하는 농악이나 탈놀이를 통해 마을공동체의 단합을 도모하고,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가족공동체와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음악은 우리 민족에게는 공동체적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고 전승하는 수단이다. 음악적 신명을 통한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 민족은 삶의 일부로 음악을 전승하였다. 이런 음악의 건강한 전승력은 개인화·산업화로 인해 피폐해지는 현대인의 삶을 정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공동체의 화합을 위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날, 우리는 다시금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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