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2. 선비의 춤
  • 왕 앞에서 춤추는 신하
  • 2. 우스꽝스러운 춤, 어효첨
조경아

왕의 권유로 춤을 춘 신하의 모습은 세조 대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세조가 신하들에게 춤추라고 명할 때 특이한 춤을 추는 신하도 있었다. 세조가 양녕대군에게 술자리를 베풀었을 때이다. 그 자리가 흥겨웠는지 세조는 여러 재신들에게 춤을 추라고 명하였다. 한성부윤 어효첨(魚孝瞻, 1405∼1475)은 얼굴에 취기를 띄고 춤을 추었는데, 한쪽 어깨를 높이 들고 춤추는 ‘희무(戲舞)’였다. 그러자 세조는 웃으면서 어부라고 부르고, 사슴가죽 1장을 내려 주었다. 세조가 어효첨을 어부라고 부른 까닭은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시에, “배에 기댄 어부의 한쪽 어깨가 높다(倚船漁父一肩高)”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었다.137) 『세조실록』 권15, 세조 5년 3월 14일 병신.

어효첨은 우스꽝스러운 춤으로 분위기를 띄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춘 춤을 보고 세조가 웃었다고 하니, 세조 이외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함께 즐거워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춘 ‘희무’는 특정 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럽게 추는 춤을 일반적으로 칭한 것으로 보인다. 어효첨은 흥이 나서 몸을 적당히 흔드는 수준이 아니었고, 보는 사람을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몸을 일그러뜨려 웃음을 자아냈다. 의도되고 과장된 몸짓의 춤은 좀더 진보된 형태의 춤이며, 취기가 발동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춤을 추기가 쉬웠을 것이다.

어효첨은 내연(內宴)에서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기녀를 마주하여 춤을 추기도 하였다. 어효첨은 기생을 희롱하고 춤을 추어서 스스로 체모를 잃고 예의에 벗어났다고 세조에게 글을 올려 죄가 크고 부끄러우니 집에서 대죄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조는 오히려 “나는 오히려 즐거워 웃었는데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모름지기 다시 나오도록 하라.”라는 내용의 어찰을138) 『세조실록』 권29, 세조 8년 12월 13일 계유. 내리는 포용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춤판에 대해 관대하였던 세조의 면모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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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연로도 『풍산 김씨 세전서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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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효첨은 성리학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세종 말년에는 『예기』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중요 학설을 발췌해 주석을 단 『예기일초(禮記日抄)』를 지어 세자를 가르치기도 하였다.13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효첨’ 항목 참조. 성리학자이면서 예학의 대가였던 그가 임금이 계신 술자리에서 기녀와 함께 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보면,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가 춤을 대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유연하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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