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2. 선비의 춤
  • 어버이를 위한 춤
조경아

초나라에는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나이 70세에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려 부모님을 기쁘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이런 고사가 조선에도 널리 알려져 노래자는 흔히 효자 를 지칭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노래자가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다고 하니 이때에도 춤과 노래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춤과 노래로 어버이를 기쁘게 한 사례를 찾아보기로 한다.

성종 대에 청주에 사는 진사 곽승의(郭承義)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출세를 구하지 않고 어버이의 봉양에만 최선을 다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곽음(郭廕)으로, 살고 있던 집의 현판을 인지(仁智)라고 하였다. 곽승의가 <인지당곡(仁智堂曲)>이라는 노래를 스스로 지어 어버이를 봉양할 때마다 노래하고 춤추어서 어버이를 기쁘게 하였다. 곽승의는 처음으로 나온 물건을 얻게 되면 반드시 먼저 어버이에게 바쳤고, 어버이가 죽은 뒤에도 그와 같이 하였다. 어버이의 3년상을 마치자 또 흰 옷을 입고 다시 3년 동안 무덤 근처에서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을 하였다. 해마다 누렇고 흰 버섯이 산소 앞에 저절로 나자 이를 따다가 제사에 받들었으므로,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그의 효성을 충청도 관찰사가 예조에 알리자, 성종은 그 효행이 가상하다고 하여 『경국대전』의 조목에 따라 벼슬자리에 등용하는 표창을 내렸다.143) 『성종실록』 권102, 성종 10년 3월 19일 을해.

곽승의가 어버이를 봉양할 때마다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대목이 주목된다. 아버지의 당호를 따라서 이름 붙인 <인지당곡>은 아마도 어버이를 찬미하는 노래였으리라 추정된다.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으니, 지켜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얼마나 흡족하였을까. 그의 춤은 어린아이의 몸짓처럼 순진무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는 춤이었을까? 아니면 어버이를 찬미하는 <인지당곡>에 어울리도록 느리게 움직이며 동작을 최소화해서 가사에 집중하도록 하는 춤이었을까? 어떤 춤동작을 보였든 곽승의의 춤은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효의 일상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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