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2. 선비의 춤
  • 98세 아비의 춤
조경아

자식이 어버이를 위해 춤을 추는 것이 순리에 맞다. 그런데 자식을 위해 춤을 춘 어버이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기사에서 최고령 춤꾼은 세종대에 98세의 나이로 춤을 춘 전생(全生)이다. 전생은 징옥(澄玉)의 아버지로 전 중추(中樞)였다. 두 아들이 임금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로 나간다는 말을 듣고, 술자리를 베풀어 두 아들을 앞에 놓고 마시면서 말하였다. “내 나이 백 세에 가까운데 직위가 중추부에 들었고, 고위 벼슬을 하는 두 아들의 영화스런 봉양을 누렸다. 국가에서 너희들을 쓸모 있다 하여 동시에 부르니, 원하는 것은 임금이 맡긴 일에 노력할 것이요, 내 늙은 것은 염려하지 말라. 내 인사(人事)가 이미 다하였으니 죽은들 다시 무슨 한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술잔을 잡고 일어나서 춤추며 노래하니, 듣는 이들이 그 뜻을 장하게 여기고, 이씨(李氏)에게 아들이 있음을 아름답게 여겼다고 한다.144) 『세종실록』 권125, 세종 31년 8월 2일 기유.

군자와 소인을 가늠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공(公)을 앞세우는가, 사(私)를 앞세우는가이다. 이런 잣대로 보자면 군자가 따로 없다. 전생은 전쟁터로 나가는 아들에게 몸조심하라는 말보다, 나라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였다. 또한, 늙은 자신을 누가 돌봐줄지 걱정하지 않고, 늙은 아비의 마음이 이처럼 편안하고 기쁘다는 것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98세의 노구였으므로 춤이라고 해도, 느릿한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춤을 본 두 아들의 심회는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나 굳센 아버지의 태도로 인해 더욱 최선을 다해 싸우고 돌아오리라고 다짐하였을 듯하다. 실제로 징석과 징옥 두 형제는 여진과의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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