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2. 선비의 춤
  • 춤을 즐기던 선비
  • 1. 징계의 대상이 된 선비의 춤
조경아

선비가 임금의 명으로 춤을 추거나, 어버이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충(忠)이나 효(孝)의 실천이므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선비가 사적인 술자리에서 춤추는 것은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숙종대 오시복(吳始復, 1637∼1716)이 호남의 수령이 되었을 때, 감사 김징수(金澄壽)의 연회에서 여러 수령 가운데 먼저 일어나 뜰에 내려가 춤을 추었다. 당시의 여론이 이를 비웃게 되어 이조 전랑의 비망(備望)이 막히게 되었다.153) 『숙종실록』 권3, 숙종 1년 5월 11일 기사.

또한,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젊었을 때, 현종비(顯宗妃,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김우명(金佑明)의 집안 잔치에 참석하여 일어나 춤을 추기까지 하였으므로, 선비들 사이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이조 전랑 추천이 저지되었으며, 뒤에 비록 임명되었으나 공론이 끝내 불쾌하게 여겼다고 한다.154) 『숙종실록』 권38, 숙종 29년 4월 28일 계묘. 박세당은 백성의 생활 가치를 신장시키는 것이라면, 이단시되던 노장학까지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사람이었다. 아마 그는 자신의 자유로운 기질에 따라 춤추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대에도 춤을 추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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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당
박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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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복과 박세당의 두 예에서 주목되는 점은 한 인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잣대가 춤이었다는 사실이다. 내부적으로 당파적인 입장이 투영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사를 관장하는 요직이었던 이조 전랑으로 추천되지 못한 이유로 춤을 춘 사실을 표면적으로 내세웠으니, 춤에 대해 어느 정도 부정적 인식을 가졌는지 알 만하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오시복이나 박세당이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이 여는 연회에 가서 춤을 추었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몸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춤을 추기까지 한다’는 표현으로 봐서, 아부할 수 있는 공간에 그들의 몸이 있다는 것보다 춤추는 몸 자체를 더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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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락연도, 권옥연, 1724
담락연도, 권옥연,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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