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3. 백성의 춤
  • 정치적인 기쁨을 표현한 춤
조경아

조선시대에는 춤을 포함한 음악이 당대의 민심을 반영한다고 믿었다. 이는 임금이 치세를 잘하거나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백성들이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다. 태조가 즉위하기 전에, 당시 권세를 부리던 이인임(李仁任) 일당을 제거하자 그 사실을 기뻐하며 길가던 사람들이 모두 춤을 추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 때 춤을 추었던 길가던 사람들은 백성들일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인 현안이 해결되었을 때 백성들은 그 기쁨을 춤으로도 표현하였다.

명종 대에는 윤원형(尹元衡, ?∼1565)의 축출을 기뻐하며 어떤 백성이 춤을 추었다는 기사가 전한다. 『명종실록』 명종 20년(1565) 8월 27일에는 윤형원의 벼슬을 삭탈하고 제 고향으로 내쫓는 형벌(放歸田里)을 주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사관의 논평에 아래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윤원형이 쫓겨난 뒤에 지방의 한 백성이 한쪽 팔만 들고서 노래하고 춤추는 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답하기를, “윤원형은 국가에 해를 끼친 놈인데 지금 쫓아내어 백성의 해를 제거하였으니 그래서 기뻐서 춤추는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쪽 팔만 들고 추는 이유를 물으니 답하기를 “지금 윤원형은 쫓겨났으나 또 한 윤원형이 남아 있으니, 만약 모두 제거된다면 양팔을 들고 춤을 출 것이다.” 하였으니, 바로 심통원을 가리킨 말이다.156) 『명종실록』 권31, 명종 20년 8월 27일.

그러면 윤원형은 대체 어떤 인물이었기에 삭탈관직 소식을 들은 백성이 춤까지 추었을까? 윤원형은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 后)의 동생으로서 문정왕후의 승하 전까지 각종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던 인물이며 을사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자가 있으면 역당(逆黨)으로 지목하였으므로, 도로에서도 윤원형을 바로 보지 못하였을 정도로 세도를 크게 떨쳤다고 한다. 그러한 세도를 믿고 탐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서울에 10여 채나 되는 대저택을 소유하였고 뇌물과 약탈을 일삼았으며, 생살권(生殺權)을 20년 간이나 쥐고 있어도 사림들이 분함을 삼킨 채 말을 못하였다고 한다.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인물을 내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듯하다. 오히려 신분과 직위가 오래 유지되었던 조선시대에 윤원형과 같은 인물을 쫓아내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권력을 지탱해 주던 문정왕후가 승하한 뒤에야 그를 제거하려는 해묵은 숙제가 해결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어떤 백성이 한 팔만 들고 춤을 추었다는 것은 춤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춤은 기쁨의 감정이 흘러나올 때 추는 것인데, 아직 올바른 정사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반쪽의 자유, 반쪽의 즐거움만 느낀 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몸짓이다. 이 내용은 물론 사관의 눈을 통해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왜곡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그렇게 춤추는 백성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사관의 서술이 왜곡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즐거울 때 춤을 춘다는 당대인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고, 단순히 기뻐서 뛰듯이 춤을 추는 단계를 넘어서 춤의 팔동작에 당시 실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인식에까지 이르렀다.

어떤 백성이 한 팔로만 기쁨의 춤을 추었다면, 두 팔로 기쁨의 춤을 추는 날은 선조 때에야 도래하였다. 선조 4년 7월 1일에는 남아 있는 또 한 명의 윤원형으로 지목되었던 심통원(沈通源)을 논핵하여 재상에서 면직시켰다. 그의 면직을 기뻐하며 백성이 길가에서 노래하고 춤추었으며 이로부터 어지러운 정사가 일신되었다고 한다.157) 『선조수정실록』 권5, 선조 4년 7월 1일 신유.

윤형원과 심통원이 제거될 때마다 백성들이 춤을 추었다는 내용은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진 것이다. 백성들이 기뻐한다는 것을 전해 듣는 과정에서 춤추었다는 내용이 첨가될 수도 있고, 사관이 춤추는 내용을 첨가하였을 수도 있으며, 기쁨을 관용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백성들의 춤의 진위를 가려내지는 못하더라도, 백성들이 기쁨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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