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3. 백성의 춤
  • 백성의 음주가무
  • 가뭄과 상사(喪事) 때의 음주가무
조경아

춤은 대개 즐거울 때 춘다. 그런데 즐겁지 않은 시기에 백성들이 춤을 추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선조 14년(1581)의 일이다. 전년도의 흉년이 매우 심해 유민(流民)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이를 데리고서 떠돌다가 구렁에 쓰러져 죽어가는 지경이었다.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구황정책(救荒政策)이 절박하였던 시기에 공경 사대부에서 시골 백성에 이르기까지 술과 음식을 허비하면서 태연하게 잔치를 즐기고 있다는 논의가 조정에서 나왔다. 선조는 전교를 통해, “굶주려 죽은 시체가 들녘에 널려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마치 풍년이 든 해와 같이 가무(歌舞)하는 인파가 길거리를 메우고 있으니 매우 온당하지 않다. 사헌부로 하여금 일체 금단하도록 하라.”고 명을 내렸다.174) 『선조실록』 권15, 선조 14년 3월 22일 을유.

흉년이 매우 심할 때 가무를 한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간의 풍년에 백성이 가무를 한 것도 역시 문제로 삼았다. 1595년에 류성룡은 “금년 농사가 약간 풍년이 들자 민심이 안일에 젖어 곳곳마다 산에 올라 노래하고 춤을 추니, 일이 매우 괴이합니다.”라고 하였다.175) 『선조실록』 권66, 선조 28년 8월 23일 계해. 산에 올라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고 한 것으로 보 아, 산신제를 마치고 춤을 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종 즉위 초반에는 철종의 3년상이 끝나지 않았는데, 백성들이 상복을 입지 않고 붉고 푸른 복장으로 춤추고 노래한 사실이 상소로 올라오기도 하였다. 고종은 “요즘에도 길거리에서 예전처럼 유희를 벌이고 있단 말인가?”라고 자못 놀라며, 이러한 일들을 아래에서 금지시키지 못하고, 상소까지 올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176) 『고종실록』 권2, 고종 2년 5월 27일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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