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1 여성의 몸, 숭배와 통제 사이
  • 01. 신성(神聖)한 몸
  • 신(神)이 된 여성들
김선주

여성상의 출토는 청동기 시대 이후 감소되지만, 고대 문헌 자료에서도 존숭받았던 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건국 신화에서는 천신계(天神係)의 이주민 집단이 지신계(地神係)의 토착 집단과 결합하는 과정을 주요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먼저 거주한 지신계의 토착 집단을 상징하는 것은 여성이었다.4) 김남윤, 「고대사회의 여성」, 『우리 여성의 역사』, 청년사, 1999, p.56.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단군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와의 결합하여 태어난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5) 『三國遺事』 卷1, 紀異第二 古朝鮮.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환웅이 천신계의 이주 세력을 대표한다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곰은 먼저 거주해 있던 토착 세력을 상징하는 토템으로 해석되고 있다.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을 먹는 시련을 거쳐 사람이 되었던 웅녀는 고조선의 건국 시조를 낳은 시조모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 시조인 주몽은 하백(河伯)의 딸인 유화(柳花)와 천제(天帝)의 아들로 알려진 해모수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해모수는 주몽의 잉태 이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어머니인 유화(柳花)는 주몽을 낳아 기르면서 주몽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유화는 주몽에게 남쪽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일깨우고,6) 『三國史記』 卷13, 高句麗本紀第一, 東明聖王 卽位條 ; 『三國遺事』 卷1, 紀異第二, 高句麗條. 비둘기를 보내 오곡의 종자를 전해주기도 하였다.7) 『東國李相國集』 卷3, 東明王篇.

고구려에서 유화는 건국 시조를 낳아 기른 어머니 이상의 의미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자 태후의 예로 제사지내고 신묘(神廟)를 세웠다고 하였다.8) 『三國史記』 卷13, 高句麗本紀第一, 東明聖王 14年條. 태조왕(太祖王)은 부여에 가서 태후 묘에 직접 제사를 드리고 있다.9) 『三國史記』 卷15, 高句麗本紀第三, 太祖大王 69年條. 또한, 『북사(北史)』에는 고구려에 신묘가 두 곳 있는데, 하나는 부여신(扶餘神)으로 나무를 깎아 부인의 형상을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고등신(高登神)으로 고구려의 시조이며 부여신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두 신묘에는 모두 관사를 설치하고 사람을 파견하여 수호하는데 두 신은 하백의 딸과 주몽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0) 『北史』 卷82, 高句麗傳. 이는 유화가 후대 고구려에서 신적인 존재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숭배되었음을 보여준다.

삼국 가운데 기록이 영세한 편인 백제에서도 시조모에 대한 숭배를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13년에 왕의 어머니가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과 함께 온조왕이 ‘국모가 돌아가시니 형세가 스스로 편안할 수 없다.’며 도읍을 옮긴 사실을 전하고 있다.11) 『三國史記』 卷23, 百濟本紀第一, 溫祚王 13年條. 또한, 온조왕 17년에는 ‘사당을 세우고 국모(國母)를 제사지냈다.’고 하였다.12) 『三國史記』 卷23, 百濟本紀第一, 溫祚王 17年條. 이 기록은 백제에서도 사당을 세워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사를 지냈던 국모로 존숭하였던 여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백제의 지배층은 부여와 고구려의 계통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백제에서 사당을 세우고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국모 역시 고구려의 유화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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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건국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신계의 혁거세와 (계)룡((鷄)龍)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지신계인 알영과의 결합을 중심으로 하는 전승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시조 부부를 선도 성모가 낳았다고 하는 시조모 전승도 있다. 신라인들은 선도 성모가 선도산에 살면서 나라를 지켜주고 보호해 준다고 여겨, 나라가 건립된 이래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냈다.13) 『三國遺事』 卷5, 神呪第六, 仙桃聖母隨喜佛事條. 신라에서도 시조모로 여겨진 선도 성모라는 여성을 신적(神的)인 존재로 숭상되하였던 것이다.

가야에서도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 등이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천강계 신화 외에 천신계와 지신계의 결합 을 통해 시조가 태어났다는 구조의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최치원이 인용한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毘訶之)에 감응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다는 전승이 소개되어 있다.14)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9, 高靈縣條. 이는 가야에서도 천신과 결합하여 나라의 시조를 낳았다고 여긴 모주(母主)로 칭한 시조모의 존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야산신이라는 표현은 정견모주가 후대에 신적인 존재로 숭상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시조모 외에도 산신의 사례는 더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산신이 대체로 여성 신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15) 孫晋泰, 「朝鮮 古代 山神의 性에 就하여」, 『震檀學報』 1, 1934. 그 중에는 역사적 인물과 관계된 전승도 있다. 가뭄 때 기도를 드리면 감응이 있다고 알려진 영일현 서쪽에 있는 운제산 성모는 신라 2대 남해왕비인 운제 부인(雲帝夫人)과 관계가 있다고 여겼다.16) 『三國遺事』 卷1, 紀異第二, 南解王條. 눌지왕대 인질이었던 왕자를 구해내고 일본에서 죽음을 당한 박제상의 부인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치술 신모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17) 『三國遺事』 卷1, 紀異第二, 奈勿王金堤上條. 치술령은 경주에서 울산으로 넘어가는 지역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여성이 산신으로 숭상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통일의 명장으로 유명한 김유신은 고구려의 첩자의 꼬임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3명의 여인이 나타나 구해주었다. 이들은 자신을 각기 나림, 혈례, 골화 등 3곳의 호국신이라고 칭하였는데, 위기를 벗어난 뒤 김유신은 음식을 갖추어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18) 『三國遺事』 卷1, 紀異第二, 金庾信條. 3여성이 언급한 지역은 신라에서 대사의 대상이 되었던 성스러운 산이었다. 통일기 무렵 신라에서 국가를 지켜주는 것으로 여기고 숭배하였던 여성 산신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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