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1 여성의 몸, 숭배와 통제 사이
  • 02. 생육(生育)의 몸
  • 대지의 어머니
김선주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신적인 존재로, 관음의 현신으로 숭배되었다. 신성한 존재로 존숭되었던 여성들의 모습은 지모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유화는 물의 신 하백(河伯)의 딸로 표현되고 있다. 버들 꽃을 뜻하는 이름 역시 물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일 뿐 아니라, 농경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유화는 비둘기에 실려서 오곡의 종자를 주몽에게 보내었는데, 이는 유화가 곡령신이자 지모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33) 김철준, 「동명왕편에 보이는 神母의 성격」, 『한국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

신라의 시조비로 전승되고 있는 알영 역시 우물가 계룡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물과 관련성을 보여준다. 태어났을 때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는데 북천에서 씻자 입술의 부리가 빠졌다고 하였다. 왕비가 되어서는 혁거세와 함께 순행하면서 농업과 길쌈을 독려하고 토지 생산을 장려하였다고 하였다. 알영이 농업과 길쌈을 관 장하는 지모신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알영과 혁거세를 낳았다는 선도 성모 역시 지모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모는 본래 중국 황실의 딸로 이름은 사소(娑蘇)였다. 일찍이 신선술을 얻어 우리나라에 와서 머물러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더니, 아버지 되는 황제가 서신을 발에 매어 보내면서 이르기를, “솔개가 머무는 곳을 따라 집을 삼아라.”고 하였다. 사소는 서신을 보고 솔개를 놓았더니 날아서 이 산에 이르러 멈췄으므로 따라와서 이곳을 집으로 삼고 지선(地仙)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고 한다. 신모가 오랫동안 이 산에 웅거하여 나라를 진호하였는데, 신령스런 이적이 아주 많았다. 나라가 건립된 이래로 언제나 삼사(三祀)의 하나로 삼았고, 그 차례도 여러 망제(望祭)의 위에 있었다(『삼국유사』 권5, 감통7, 선도성모수희불사).

위의 사료를 보면 선도 성모를 직접적으로 지선(地仙)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선도 성모가 선도산에 와서 살게 된 배경으로 사자의 역할을 하는 새가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나 이집트 등에서 다산과 풍요를 관장하는 농업신은 여신이며, 비둘기를 비롯한 새가 신의를 대변하는 사자로 등장한다고 한다.34) 김두진, 앞의 논문, 1994. 선도 성모가 제천의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해서 붉은 색으로 물들이게 하는 모습 역시 알영과 같이 농경과 길쌈을 관장하는 지모신과 관련을 보이고 있다. 운제 산신이 되었다는 운제 성모 역시 ‘가물 때 기도하면 감응이 있다.’고 하여 농경신, 지모신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불교 수용 후 여성으로 현신하는 관음 역시 지모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원효는 관음의 진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친견하기 위해 낙산사로 가던 도중 2명의 여성을 만났다. 한 명은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것으로, 다른 한 명은 월경대를 빨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관음이 곡식의 풍요를 관장하는 농경신, 지모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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