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1 여성의 몸, 숭배와 통제 사이
  • 02. 생육(生育)의 몸
  • 생식의 주체
김선주

고대 여성을 지모신으로 숭배하고 제사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여성을 생육(生育)의 몸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었다. 임신과 출산, 양육 담당자로서 여성을 생산과 번식의 신비한 능력을 가진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원효가 만났던 여성으로 현신하였던 관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모습과, 월경대를 빨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는 농경과 여성의 생육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였던 지모신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고대 관음보살은 직접 해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라 백월산의 선천촌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산의 양쪽 기슭에 수도하면서 각각 미륵과 미타로 성불하기를 원하였다. 수도가 무르익어 갈 무렵에 관음이 여자로 변신하여 이들을 시험하였다. 어스름한 저녁에 먼저 박박이 수도하는 곳에 들러 하룻밤을 묵고 가기를 청하였다. 부득은 비록 수도하는 곳이지만 이미 해가 저물었고, 또한 여인이 산고를 가졌는 듯 하므로 묵고 가기를 허락하였다. 그날 밤에 여인은 “제가 불행히도 마침 해산기가 있으니 화상께서는 짚자리를 좀 깔아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부득이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은은히 밝히니 낭자는 벌써 해산하고 또 다시 목욕할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그 목욕물에 노힐이 목욕하니 미륵이 되었고, 박박은 아미타가 되었다(『삼국유사』 권3, 탑상4,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위에서 관음보살은 아이를 가진 임산부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산고를 겪으며 해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득은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었으며, 해산 후 목욕도 시켜주었다. 또한, 여자가 권한대로 목욕물에 몸을 씻자 미륵불이 되었으며, 뒤에 달달박박 역시 목욕물에 목욕을 하고는 아미타불로 변하였다. 관음보살이 임신과 출산이라고 하는 여성의 생식 기능과 함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을 성불하도록 도와주는 양육자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이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고 하는 여성의 생식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것은 다음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겨울날 눈이 깊이 쌓이고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삼랑에서 돌아오면서 천엄사 대문 밖을 지나니 한 거지 여인이 아이를 낳고는 추위에 얼어서 누워 거의 죽게 되었다.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안고 있으니 한참 후에 깨어났다. 이에 옷을 벗어 그들을 덮어주고 맨몸으로 본사로 달려와서 거적풀로 몸을 덮고 밤을 지냈더니, 한밤중에 하늘로부터 대궐 뜰에 소리쳐 말하기를, “황룡사 중 정수를 마땅히 왕사로 봉하라.”고 하였다(『삼국유사』 권5, 감통7, 정수사구빙녀).

황룡사의 정수라는 승려가 왕사로 책봉된 배경 설화인데, 해산하는 여성은 정수를 시험하기 위해 나타난 불교계의 부처님이었던 것이다. 해산하는 여성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었던 정수는 하늘로부터 보답을 받아 왕사가 되었다. 여성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지모신과 같이 여성의 생육 기능과 결부되어 숭배된 관음은 아이를 낳게 해주는 기자(祈子)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자장의 아버지 무림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천수관음에게 빌어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35) 『三國遺事』 卷4, 義解第五, 慈藏定律條. 신라 말에 최은함 역시 오랫동안 자식이 없자 중생 사 관음에 빌어서 아들을 얻었다고 하였다.36) 『三國遺事』 卷3, 塔像第四, 三所觀音衆生寺條.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도 안 되어 전란이 일어나자 최은함은 관음에게 아이를 보호해 줄 것을 기원한 뒤 관음상 자리 밑에 감추고 떠났다. 적병이 물러간 뒤에 왔더니 아이가 무사하였을 뿐 아니라, 살결이 갓 목욕한 것 같고 젖냄새가 남아 있었다고 하였다. 관음의 보살핌으로 아이가 무사하였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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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관음상
천수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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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은 아이를 낳게 해줄 뿐 아니라 아이를 보호하고 길러주는 생육의 존재로 신앙되었던 것이다. 우금리에 사는 보개라는 가난한 여인은 아들 장춘이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민장사 관음에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렸는데 갑자기 아들이 돌아왔다고 하였다.37) 『三國遺事』 卷3, 塔像第四, 敏藏寺條. 한기리에 사는 희명이라는 여성은, 분황사 천수관음에게 빌어서 눈먼 자식의 눈을 뜨게 하였다고 한다.38) 『三國遺事』 卷3, 塔像第四, 芬皇寺千手大悲盲兒得眼條.

이는 고대 여성에 대한 존숭이 무엇보다 여성의 생육 기능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은 생육의 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선사 시대에 만들어진 여성상은 대부분 볼륨 있는 몸매에 가슴과 엉덩이, 배 등을 과장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삼국 시대 고고 자료에서도 보이고 있다. 4∼5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신라 토우 가운데 여성의 모습이 적지 않은데, 가슴을 드러낸 여성상, 성교하는 여성상, 출산하는 여성상 등 여성의 생식과 관련된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국보 195호인 목긴 항아리에 붙어 있는 토우를 살펴보면 성행위하는 남녀와 금(琴)을 타고 있는 임신한 여성, 개·오리·물고기·거북이 등 동물 토우들이 나타난다. 개·오리·물고기·거북이들은 앞의 임신한 모습의 여성이 낳은 자식으로 해석하여, 이 토우는 성교, 임신, 출산 등 여성의 생식 과정의 일련들이 표현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39) 孫明淳, 「新羅土偶의 象徵性에 관한 硏究-國寶 第195號 長頸壺 土偶의 象徵解釋을 中心으로-」 上·下, 『慶北史學』 23·24, 2000·2001. 또한, 남녀 성교의 모습에서 남성보다도 여성이 더 크게 묘사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 토우에서는 성교, 임신, 출산 등 일련의 과정이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신라 토우 중에는 성 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를 표현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 토우의 모습을 보면 성교하는 장면이라도 난잡하거나 부끄러운 느낌이 없다. 신라인들은 성을 생육과 관련된 자연스러운 행위로 인식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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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해산하는 모습이 표현된 신라 토우
여성의 해산하는 모습이 표현된 신라 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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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가 붙어 있는 목간항아리
토우가 붙어 있는 목간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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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이 생식 행위를 자연스럽게 인식하였다는 것은 다음 문헌자료의 생식기 관련 서술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지증왕)은 생식기의 길이가 1척 5촌이나 되어 좋은 배필을 얻을 수가 없어 사람을 세 방면으로 보내어 배필을 구하였다. 사명을 맡은 자가 모량부 동로수 나무 아래까지 와서 보니 개 두 마리가 북만한 큰 똥덩이 한 개를 물었는데 두 끝을 서로 다투어가면서 깨물고 있었다. 동리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웬 계집아이 하나가 나와서 말하기를, “이 마을 재상댁 따님이 여기에 와서 빨래를 하다가 숲속에 들어가 숨어서 눈 똥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집을 찾아가 알아보니 여자의 키가 7척 5촌이나 되었다. 이 사실을 자세히 왕에게 아뢰었더니 왕이 수레를 보내어 궁중으로 맞아들여 왕후로 봉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치하하였다(『삼국유사』 권1, 기이2, 지철로왕).

지증왕은 이름을 지철로, 지도로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다랗다. 길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즉, 생식기가 긴 왕의 특징을 이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통일기 경덕왕 역시 ‘생식기가 8촌이 되었다’고 하여 역시 왕의 생식기를 언급하고 있다. 신라에서는 생식기가 감추어야할 은밀하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왕의 능력과 관련된 당당한 이야기로 언급하고 있다. 토우 중에서는 성기를 드러낸 남성의 모습이 적지 않은데, 이러한 인식과 관련되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거대한 성기는 그 자체가 신앙이 대상이었다. 지증왕과 그 왕비의 신체적 특징을 강조한 것 역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생식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성의 입에서도 나오고 있다.

개구리는 성낸 꼴을 하고 있어 군사의 모습이요, 옥문은 여자의 생식기이다. 여자는 음이요 그 빛은 희니 흰빛은 곧 서쪽 방위이다. 그러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생식기가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결국은 죽는 것이니 그래서 적병을 쉽게 잡을 줄 안 것이다(『삼국유사』 권1, 기이2, 선덕여왕지기삼사).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미리 예언하였다는 세가지 사건 중 하나인 여근곡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선덕여왕이 적병이 쳐들어온 것을 알고 가서 무찌르게 하였다는 것인데, 신하들이 어떻게 개구리 울음소리로 적병이 온 것을 알고 물리칠 수 있었냐고 묻자 선덕여왕은 ‘남자의 생식기가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결국은 죽는다’고 답변하고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남성 중심의 정치 질서 속에서 첫 여왕으로서 고달팠던 선덕여왕의 내심도 있겠지만, 여성이 생식(生殖)의 주체라 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 이는 성교하는 모습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크게 묘사된 신라 토우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이러한 사례는 고대 사회에서 생식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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