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1 여성의 몸, 숭배와 통제 사이
  • 03. 종속(從屬)의 몸
  • 강요되는 몸
김선주

가부장들은 때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여성의 몸을 이용하였으며, 여성에게 희생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신라 22대 소지왕이 날이군에 행차하였을 때 파로라는 사람은 딸 벽화를 치장하여 수레에 넣고 비단으로 덮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음식으로 여기고 열어보았는데 어린 여자가 나타났다. 왕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겨 받지 않았으나 왕궁으로 돌아간 뒤 생각이 달라져 남몰래 여자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소지왕은 여자를 몰래 맞이하여 별실에 두고 자식까지 낳았다.67) 『三國史記』 卷3, 新羅本紀第三, 炤知麻立干22年條.

파로가 왜 자신의 딸을 소지왕에게 바치려 하였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아버지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어린 딸을 왕에게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에 의해 얼굴도 모르는 임금 앞에 바쳐져 잠자리를 강요당하였던 벽화의 당시 나이는 16세였다. 뿐 만 아니라 벽화가 왕을 따라 별실에 들어간 그 해에 소지왕은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버지뿐 아니라 남편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내의 몸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거득공이 문무왕의 명을 받고 지방을 돌아보는데 무진주에 이르자 주의 관리인 안길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집으로 불러들여 극진히 대접하였다. 밤이 되니 안길이 처첩 3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지금 우리 집에 머무는 거사를 모시면 종신토록 해로하리라.”하니 두 아내가 말하기를 “차라리 같이 살지 못하더라도 어찌 남과 같이 잘 수 있겠습니까?”하였고, 한 아내는 말하기를 “공이 만약 종신토록 함께 살기를 허락한다면 명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삼국유사』 권2, 기이2, 문호왕법민).

안길이 아무런 사심없이 거득공을 대접하기 위해 아내를 바친 것은 아니었다. 안길은 거득공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고 하였다. 안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신해로’ 운운하면서 아내를 잠자리 시중으로 내몰았다.

또한, 여성의 몸은 국가적 이익을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남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는 결혼 동맹을 맺었다. 신라에서 이벌찬 비지의 딸이 백제로 가서 동성왕의 비가 되었다.68) 『三國史記』 卷3, 新羅本紀第三, 炤知麻立干15年條 ; 『三國史記』 卷26, 百濟本紀第四, 東城王13年條. 그 뒤 고구려의 남진을 막을 수 있었던 점에서 이 혼인 동맹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여성의 희생이 있었다.

비지의 딸이 낯선 이국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편인 동성왕이 신하에 의해 피살되었으며, 그 뒤 백제왕이 된 것은 무녕왕이었다. 무녕왕은 동성왕의 이복 형제로 또는 서로 다른 혈통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무튼 동성왕의 후손은 아니었 다. 이후에도 동성왕의 후손은 더 이상 백제 왕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왕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국에서 살아야 하는 비지의 딸 처지가 그리 환영받지는 못하였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백제에서 신라로 시집간 경우도 있다. 백제 성왕은 자신의 딸을 신라 진흥왕의 소비(小妃)로 보냈다.69) 『三國史記』 卷26, 百濟本紀第四, 聖王31年條. 사도라는 정식 왕후가 있는, 그것도 폐쇄적인 신라에서 소비라는 신분으로 성왕의 딸이 생활하기는 녹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딸을 신라 진흥왕에게 시집보낸 이듬해 성왕은 나라의 총력을 들어 신라를 공격하였다. 그렇지만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면서 백제는 신라에 크게 패하였다.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오히려 패전 당한 적국에서 시집온 백제 공주의 처지가 편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대에는 정식 혼인관계가 아닌 헌녀(獻女)의 존재도 있었다. 진평왕 53년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두 사람을 바쳤으며, 성덕왕 22년에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두 사람을 바쳤다. 성덕왕대 바쳐진 여성은 이름이 남아 있는데, 한 명은 포정(抱貞)으로 아버지는 나마 천승이고, 또 한 명은 정완(貞菀)으로 그 아버지는 대나마 충훈이었다고 한다. 이들 사례는 여성의 몸이 국가를 위해서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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