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1 여성의 몸, 숭배와 통제 사이
  • 03. 종속(從屬)의 몸
  • 삼종지도와 부덕(婦德)
김선주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면 여성에게 삼종지도와 부덕을 강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유신의 아들 원술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군에 기습당하여 크게 패하였다. 그는 부하 담릉의 만류 때문에 적진에 뛰어들지 못하고 살 아 돌아왔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어머니를 뵙고자 하였으나 그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은 “부인에게는 삼종의 의리가 있다. 내가 지금 과부가 되었으니 아들을 따라야 하겠지만 원술이 이미 선군에게 아들 노릇을 못하였으니 내가 어찌 그 어미가 될 수 있겠느냐?” 하고 만나보지 않았다. 원술이 통곡하면서 차마 떠나지 못하였으나 부인은 끝내 보지 아니하였다(『삼국사기』 권43, 열전3, 김유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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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공주 묘
정효공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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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여자가 따라야 할 대상인 3가지인 삼종(三從)은 아버지, 남편, 아들이었다. 이는 여성을 개인적인 주체로 보기보다는, 태어나서는 아버지, 결혼 후에는 남편,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에 종속된 존재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종지도로 대표되는 이러한 여성관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 속에서 사회적인 덕목으로 여겨졌다.

고구려의 옛 땅에 건국된 발해에서도 여성의 부덕과 함께 삼종이 강조되었다. 길림성 돈화시 육정산 고분군 안에는 3대 문왕의 둘째 딸 정혜 공주의 무덤이 있는데, 여기에서 묘지가 새겨진 비석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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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삼종을 언급하고 있는 발해 정효공주묘에서 출토된 묘비 탁본
여성의 삼종을 언급하고 있는 발해 정효공주묘에서 출토된 묘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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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의 동생인 정효공주의 묘비도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두 묘비는 생애에 대한 서술만 다를 뿐 문장이 거의 같은데, 묘비에는 부덕과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강조되고 있다.

공주는 일찍이 여사(女師)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능히 그와 같아지려고 하였고 매번 한의 반소를 사모하여 시서를 좋아하고 예악을 즐겼다. 총명한 지혜는 비할 바 없고 우아한 품성은 타고난 것이었다. 공주는 훌륭한 배필로서 군자에게 시집갔다. 그리하여 한 수레에 탄 부부로서 친밀한 모습을 보였고 한 집안의 사람으로서 영원한 지조를 지켰다. … 그러나 남편이 먼저 돌아갈 것을 누가 알았으랴. 지모를 다하여 정사를 보필하지 못하게 되었구나. 어린 딸도 일찍 죽어 미처 실패를 가지고 노는 나이에 이르지 못하였다. 공주는 베틀 방을 나와 눈물을 뿌렸고 빈 방을 바라보며 수심을 머금었다. 육행을 크게 갖추고 삼종을 지켰다. 위 공백의 처 공강의 맹세를 배웠고 제나라 기량의 처와 같은 애처로움을 품었다. 부왕에게서 은혜를 받아 스스로 부덕을 품고 살았다(「정효 공주 묘지명」).

공주의 묘비문을 통해 발해의 지배층 여성들이 지켜야할 부덕을 알 수 있다. 이 묘비 문에서도 여자는 어려서 부모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三從)을 언급하고 있다. 정효 공주의 부덕으로 칭송되었던 것은 혼인 후 한 집안으로서 지조를 지키고, 삼종을 지켰다는 점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개인으로서의 ‘몸’보다는 사회적 재생산을 담당하는 생육의 몸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신적 존재로 숭배되기도 하였으며, 신을 대리하는 사제이기도 하였다. 불교가 유입된 이후에는 관음의 현신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가계의 시조로 숭 앙 받은 여성도 있었다. 때로는 가계 혈통을 계승할 수 있는 몸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가부장적 가족 질서가 확립되면서 여성에게는 가계 계승자를 낳아야 하는, 특히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강제되기 시작하였다. 간음이나 투기 등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행위는 통제하였다. 여성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 남편, 아들 등에 종속된 존재로 여겨졌을. 고대에서는 혼전 순결, 재혼에 대한 금기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출산’이라고 하는 사회적 재생산에 더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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