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2 친족 일부로서의 몸
  • 01. 불교의 시대, 여성 계보의 중요성
  • 이데올로기로 보는 몸관
  • 1. 불교가 보는 여성의 몸
권순형

고려의 기본 신앙이었던 불교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소승불교 경전인 『옥야경』에는 여인의 몸 중에 10가지 나쁜 일이 있다고 한다. 즉, 태어날 때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다. 양육하는 재미가 없다. 여자가 마음으로 항상 사람을 두려워한다. 부모가 항상 시집보낼 것을 걱정한다. 부모와 살아서 이별한다. 항상 남편을 두려워해 그 안색을 살펴서 기뻐하면 좋아하고 성내면 두려워한다. 임신하여 생산하기가 어렵다. 여자는 어렸을 때 부모의 단속을 받는다. 중년에 남편의 제재를 받는다. 늙어서 자손에게 질책을 받는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자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왜 이렇게 비주체적인 존재였는가? 불교를 낳은 인도의 사상에서는 여성을 근본 물질인 프라크리티(prakrti), 남성을 순수 의식인 푸루샤(purusa)로 본다. 프라크리티는 모든 세계가 전개되어 나오는 근본 물질이며, 변화와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이 없기 때문에 남성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 때문에 남자의 통제 밖에 있는 여성은 위험하며, 여자는 결코 독립에 적합하지 않고, 선악을 분별할 능력도 없으므로 언제나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2천 년 전 인도의 종교 문헌에서 삼종지도가 보이며, 위에서 보듯 불교의 경전에서도 또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는 이처럼 비주체적이고 부정적인 여성의 몸도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는가? 여성의 성불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불교의 본질은 아니겠으나, 인도 사회의 남존여비 관념이 반영되어 오장설(五障說), 변성남자설(變成男子說) 등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오장설은 여성이 다섯 가지 문제가 있어서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여성은 잡스럽고 악독하며 교태가 많기 때문에 제석이 될 수 없다. 음란하고 방자하며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범천이 될 수 없다. 경박하고 불순하며 정법을 훼손하므로 마왕이 될 수 없다. 청정한 행이 없기 때문에 전륜성왕이 될 수 없다. 색욕에 탐착하고 정이 흐리며, 태도가 솔직하지 못해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변성남자설은 여자의 몸이 그렇게 문제가 많으니 남자의 몸으로 변해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신불성불설은 대승불교 이후 공(空)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변화를 보이게 된다. 인간을 포함한 일체의 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공 관념은 남성의 몸, 여성의 몸이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의 몸이 그 자체로 남성의 몸에 비해 열등하다거나, 남자의 몸으로 변해야 성불할 수 있다는 등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원칙에 불과하였다. 현실 사회 에서 여성이 승려가 되어 성불을 추구하는 것을 불교 교단에서도, 사회에서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았다. 승단의 입장에서는 독신 남성 집단에 여성이 들어올 때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만의 집단에 가해지는 위협과 위해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여성이 승려가 되면 정법이 5백년 감소한다며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하였고, 부득이 여성을 받아들이게 되자 팔경법(八敬法)을 통하여 비구에 의한 비구니 지배 구조를 이루었다. 이는 한편 성폭행 등 여러 가지 위협으로부터 비구니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그 자체가 여성 차별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출가한지 1백년이 된 비구니라도 갓 승려가 된 비구에게 예를 갖춰야한다는 등의 내용은 교단 내 비구니의 지위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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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고려 벽화
밀양 고려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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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남성 승려의 계율이 250계임에 반해 여성은 98조가 더 많은 348계였다는 점도, 교단이 비구니를 부정적으로 보아 더 철저한 규제를 하였음을 말해준다. 반면 재가 신자인 여성은 지켜야할 것이 5계(살생, 절도, 간음, 망령된 말, 금주)에 불과하였다. 뿐만 아니라 출가 여성이 경전의 이야기 주인공이 된 경우는 거의 없는데, 재가 여성은 그 주인공이 되고 있다. 재가 여성의 이름이 경 제목이 된 경우도 『승만경』, 『옥야경』 등 여럿이다. 즉, 불교에서는 여성이 출가해 수행하는 것보다 가정 내에서 신앙 생활을 하길 원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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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삼층석탑과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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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도 여성이 승려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여성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성적으로 방종해질 가능성이 있고, 또 국가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혼 여성이 승려가 되는 것을 법으로 금하였다. 여성들이 너도나도 승려가 되어 혼인을 하지 않으면 노동력이 재산이었던 시절, 국가적으로 큰 손해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의 입장에서도 딸이 승려가 되는 것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아들이 승려가 되는 것은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딸은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승과는 오직 남성만 응시할 수 있었고, 승직에 나아가는 것도 남성이었다. 여성은 승려가 되어도 비구 집단의 지배를 받는 낮은 지위였기 때문에, 승려가 된 딸에게서는 어떠한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귀족들은 딸이 좋은 집안에 시집가 그 집안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많은 자식을 낳아 그들이 출세해 가문을 빛내 줄 것을 더 원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도, 가족도, 승단도 여성 이 승려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저 재가 신자로서 자신과 가족의 극락왕생을 빌고, 가족을 위해 복을 비는 정도에 한정되었다. 왜 여성은 가정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가? 그리고 가정에서 그녀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여겼는가? 원시 불교의 경전인 『앙굿타라니가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아난다가 스승에게 여자는 왜 공석에 나가지 못하는지 왜 직업에 종사하지 못하는지 묻자 “아난다여 여자는 자제력이 없다. 여자는 질투가 많다. 여자는 탐욕스럽다. 여자는 지혜가 적다. 이러한 이유로 여자는 공석에 나가지 못하고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행위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코오살라국의 푸라세나짓왕의 왕비가 공주를 낳았을 때 왕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자 붓다가 왕에게 “왕이여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실로 남자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가 있고 계율을 지키고 시모를 존경하고 남편에게 충실한 부인들이 그들입니다. 그가 낳은 아들은 영웅이 되고 지상의 주인이 됩니다. 이와 같은 양처(良妻)의 아들이 국가를 가르치고 인도합니다.”라 하였다.

즉, 여성은 본질적인 속성상 사회 생활에 적합하지 않으며, 여성이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은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에게 내조하며 아들을 낳아 잘 기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여성의 몸을 비주체적이며, 가정 내 역할에 한정된 존재로 보고 있었다 하겠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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