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Ⅰ. 신성에서 세속으로-2 친족 일부로서의 몸
  • 02. 유대의 매개물, 여성의 몸
  • 여성으로 일군 가문의 영광
  • 2. 인주 이씨 영화의 주역 인예태후
권순형

고려의 대표적인 귀족 가문은 인주 이씨이다. 이 가문은 문종 이후 인종 때까지 11명의 왕비를 배출하였으며, 당대의 유명 귀족 가문들과 혼인을 하였다. 10여 대에 걸쳐 5명의 수상과 20명에 가까운 재상을 배출하였다. 인주 이씨 가문의 성쇠는 딸들에 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인주 이씨가 딸을 왕비로 들인 것은 문종 때이다. 이자연(李子淵, 1003∼1061)의 세 딸이 왕비가 되었다.

이자연은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정종 초년에 급사중으로 등용되었으며, 여러 번 승직되어 문종 때에는 재상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재상이었다 해도 그 전에 한 번도 왕비를 들인 적이 없던 집안에서 어떻게 갑자기 무려 딸 셋을 왕비로 들일 수 있었을까? 그 열쇠는 이자연의 고모부였던 김은부(金殷傅, ?∼1017)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김은부는 현종이 거란족을 피해 남하하였을 때 그를 도우며 그 인연으로 딸 셋을 왕비로 들였다.95) 『고려사』 권94, 열전7, 김은부.

다음의 표를 보면, 현종에게는 10명의 후비가 있었는데, 이 중 아들을 낳은 것은 김은부의 딸들뿐이며, 게다가 그 중 3명이 덕종·정종·문종으로 연이어 즉위하였다. 그리고 김은부의 딸들 외에도 두 명의 왕비, 즉 원순 숙비(元順淑妃)와 원질 귀비(元質貴妃)가 각각 이자연의 처제(혹은 처형)와 사돈의 딸로 친족 관계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덕종과 정종의 왕비들 역시 다음 표에서 보듯 인주 이씨와 관련이 있었다. 즉, 이자연의 세 딸이 문종의 왕비가 되는 데는 이처럼 인주 이씨 자체가 이미 당대의 유명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있는 상당한 가문이었다는 점과 함께 안산 김씨의 번영이 바탕이 되었다 하겠다.

<표> 헌종·인종대의 후비들
후비 후비의 부모 자녀 이자연과의 관계
현종 원정왕후 김씨 성종 문화왕후 김씨 없음 없음
원화왕후 최씨 성종
연창궁부인 최씨
효정공주, 천추전주 없음
원성태후 김씨 김은부 덕종, 정종, 인평왕후, 경숙공주 고모 딸
원혜태후 김씨 김은부 문종, 평양공 기, 효사왕후 고모 땀
원용왕후 류씨 경장태자 없음  
원목왕후 서씨 서눌 없음  
원평왕후 김씨 김은부 효경공주 고모 딸
원순숙비 김씨 김인위 경성왕후 처제(처형)딸
원질귀비 왕씨 왕가도 없음 사돈의 딸
덕종
(고모딸의
아들)
경성왕후 김씨 (이복남매혼) 현종
원순숙비 김씨
없음 처제(처형)
딸의 딸
경목현비 왕씨 왕가도 상회공주 사돈의 딸
효사왕후 김씨
(이복남매혼)
현종
원혜태후 김씨
없음 고모 딸의 딸
정종
(고모딸의
아들)
용신왕후 한씨 한조 아들  
용의왕후 한씨 한조 애상군 방, 낙랑후 경, 개성후 개  
용목왕후 이씨 이품언 도애공주  
용절덕비 김씨 김원충 없음 처남 딸
연창궁주 노씨      
문종
(고모딸의
아들)
인평왕후 김씨 (이복남매혼) 현종
원성태후 김씨
없음 고모 딸의 딸
인예순덕태후 이씨 이자연 순종,선종, 숙종,
대각국사 후, 상안공 수, 보웅 숭통 규 금관후 비,
변한후 음, 낙랑후 침,
총혜수좌 경, 적경궁주,
보령궁주
인경현비 이씨 이자연 조선공 도,부여공 수, 진한공 유
인절현비 이씨 이자연 없음
인목덕비 김씨 김원충 없음 처남 딸
순종
(외손자)
정의왕후 왕씨 평양공 기 없음 고모 딸의 아들의 딸
선희왕후 김씨 김양겁 없음  
장경궁주 이씨 이호 없음 손녀
선종
(외손자)
정신현비 이씨 이예 경화왕후 동생아들의 딸
사숙태후 이씨 이석 헌종, 수안택주 손녀
원신궁주 이씨 이정 한산후 윤 손녀
헌종
(외증손)
없음 선종
사숙태후 이씨
없음  
숙종
(외손자)
명의태후 류씨 류홍 예종  
예종
(외증손)
경화왕후 이씨 선종 정신현비 없음 동생 손녀의 딸
문경태후 이씨 이자겸 인종 증손녀
문정왕후 왕씨 진한후 유 인경현비 없음 외증손녀
숙비 최씨 최용 없음 조카의 처제(처형)딸
인종
(외고손)
폐비 이씨 이자겸 없음 외증손녀
폐비 이씨 이자겸 없음 외중손녀
공예태후 임씨 임원후 의종, 대녕후 경, 명종, 원경국사 충희, 신종, 숭경·덕녕·창락·영화궁주 고손녀의 딸
선평왕후 김씨 김선 없음  

본격적인 인주 이씨의 시대는 문종 때부터였다. 문종은 5명의 후비가 있었는데, 제1비인 인평왕후(仁平王后)는 김은부의 맏딸인 원성태후(元城太后)의 딸이다. 문종은 김은부의 둘째딸의 몸에서 낳으니, 문종과 인평왕후는 이복 남매간에 혼인한 것이다. 제2, 3, 4비인 인예순덕 태후(仁睿順德太后), 인경 현비(仁敬賢妃), 인절 현비(仁節賢妃)는 모두 이자연의 딸들이다. 제5비인 인목 덕비(仁穆德妃)는 이자연의 처남인 김원충의 딸이었다. 이 중 자식을 낳은 것은 인예태후와 인경현비인데, 인예태후는 순종·선종·숙종·대각국사 등 아들 10명과 딸 2명을 낳았다. 인경현비도 아들 셋을 낳았다. 인예태후는 처음에 연덕궁주(延德宮主)였다가 1052년(문종 6) 왕비가 되었다. 왕비 책봉문에 의하면 그녀는 아름답고 유순하였으며, 현숙한 행실이 고대의 유명한 현부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또한, 부부 간에 화목을 이루었고, 후손이 번성하였으며, 부녀의 말은 일에 능숙하여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였다 한다.96) 『고려사』 권88, 열전1, 후비1 인예순덕태후.

이자연은 과거에 장원급제한 데서도 보듯 스스로의 능력도 있었겠지만, 딸 셋을 왕비로 들인 뒤 문하시랑평장사 수태부가 되고, 부 인 김씨도 계림국대부인(鷄林國大夫人)이 되었다. 아들들도 모두 재상이 되었다. 이자연은 1061년(문종 15) 세상을 떠났지만, 문종 사후 인예태후의 아들들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하고, 또 그 왕비들 중 상당수가 이자연의 아들 및 손자의 딸들이었다. 예컨대 순종의 장경궁주(長慶宮主)는 아들 이호의 딸이었으며, 선종의 정신현비(貞信賢妃)는 이자연의 동생인 이자상의 손녀였다. 선종비 사숙태후(思肅太后)와 원신궁주(元信宮主)는 아들 이석과 이정의 딸이었는데, 사숙태후는 선종이 죽은 뒤 어린 아들 헌종을 데리고 섭정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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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과 경원이씨의 혼인 관계도
왕실과 경원이씨의 혼인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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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주 이씨의 독주 시대가 지속되면서 인주 이씨 내에서 경쟁 관계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정의 아들이었던 이자의(李資義, ?∼1095)는 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누이 원신 궁주의 아들 한산후(漢山侯)를 옹립하려다 숙종에 의해 제거되었다.97) 『고려사』 권88, 열전1, 후비1 인예순덕태후. 숙종은 이자의 난 진압 후 인주 이씨와 무관한 류홍의 딸 명의태후(明毅太后)를 왕후로 들였지만 숙종 자신이 인예태후 소생으로 이자연의 외손자이다. 그리고 숙종 사후 다시 인주 이씨와의 통혼이 계속된다. 즉, 숙종의 아들 예종의 경화왕후(敬和王后)는 이자연 동생 이자상의 손녀딸이었고, 문경태후(文敬太后)는 손자 이자겸(李資謙, ?∼1126)의 딸이었다. 문정왕후는 이자연 외손자의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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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원녀 이씨 묘지명
이자원녀 이씨 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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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이 죽자 태자가 어렸다. 예종의 장인이었던 이자겸은 태자를 도와 인종으로 즉위시켰다. 그 공으로 이자겸은 최고직인 협모안사공신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協謀安社功臣守太師中書令邵城侯)를 책봉 받았으며, 종친인 대방공 보와 한안인·문공인 등 왕권에 위협이 될 반대파를 제거하여 다시 양절익명공신 중서령 영문하상서도성사 판이병부 서경유수사 조선국공 식읍팔천호 식실봉이천호(亮節翼命功臣中書令領門下尙書都省事判吏兵部西京留守事朝鮮國公食邑八千戶食實封二千戶)에 제수되고 관부(官府)를 열어 요속(僚屬)을 두기에 이르렀다. 부인도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에 봉해지고 여러 아들들의 관직도 높아졌다. 이자겸은 다시 인종에게 딸 둘을 시집보내 다른 성씨의 권력 접근을 차단하였다.

왕을 능가하는 위세를 가졌던 이자겸은 이제 왕위까지 넘보기 시작하였다. 1126년 김찬, 안보린 등이 왕과 함께 자신을 제거하려던 시도를 무위로 돌리면서 궁정에 불을 지르고 왕을 연금해 국사를 마음대로 처리하였다. 나아가서는 ‘십팔자위왕설’(十八字爲王說)을 믿고 여러 번 왕을 독살하려고 하였다.98) 『고려사』 권127, 열전40, 이자겸. 결국 이자겸은 같은 파였던 척준경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그의 영화는 고려시대 최고의 것이었고, 그 바탕은 인주 이씨 집안의 딸들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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