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1 예와 수신으로 정의된 몸
  • 04. 조선의 예교적 여성
  • 성인 지향
김언순

조선 여성들은 대체로 사회가 요구한 유교적 여성상을 수용하였다. 즉, 유교적 부덕을 수신의 내용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사대부 남성들이 여성의 성인 가능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은 사실과 대조적으로 일부의 여성들은 성인 지향을 직접 드러냈다. 이들은 대부분 지적 활동을 하였던 여성들로서 수신의 종착지가 성인이며, 수신의 모델이 성인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성인의 성격과 수신의 내용 인식에서는 여중군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실제로 이 여성들은 여중군자로 칭송받았다.

조선의 여성중 최초로 여훈서를 지은 소혜왕후(1437∼1504)는 『내훈』(1475) 서문에서 “가르침을 마음과 뼈에 새겨 날마다 성인되기를 기약하라.”고240) 『內訓』 序, “汝等 銘神刻骨 日期於聖.” 촉구하였다. 비록 선언적인 성격을 띠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여성 수신의 목표가 성인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安東張氏, 1598∼1680)는 어려서 지적 재능이 뛰어났으나, 15세가 되자 “‘시를 짓고 글자를 쓰는 것은 모두 여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 여기고 마침내 딱 끊어버리고 하지 않았다.”241) 앞의 책, 「부록」 행실기, pp.23∼25. 내외의 역할분담 자체를 성인의 질서로 수용하였으나, “성인의 행동도 또한 모두가 인륜의 날마다 늘 하는 일이라면, 사람들이 성인을 배우지 않는 것을 근심할 뿐이지, 진실로 성인을 배우게 된다면 또한 무엇이 어려운 일이겠는가”고 하였다.242) 국역 정부인안동장씨실기 간행소, 『貞夫人安東張氏實紀』, 삼학출판사, 1999, pp.27∼28.

한편,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는 여성에게 성인 지향이 제한되고, 수신의 내용이 남성과 차별적임을 인식하였으나, 그 제한을 넘어서지는 못하였다. “음양은 성질이 다르고 남녀는 행실이 다른 것이니, 여자는 감히 망령되이 성현의 유풍을 좇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과 교화의 밝음에 있어서 어찌 남 녀가 다르고 마땅함을 혐의하여 사모하고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243) 『호연재자경편』 「正心章 第一」. 하여 성인의 보편성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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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당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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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도 남성과 같이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남녀 간의 분수는 다르지만 타고난 본성은 동일하므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아! 내가 비록 부녀자이긴 하지만,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 간에 다름이 없다. 비록 안연이 배운 것을 능히 따라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성인을 사모하는 뜻은 매우 간절하다.”고 하였다.244) 『允摯堂遺稿』 「克己復禮說」, “噫 我雖婦人 而所受之性 則初無男女之殊 縱不能學顔淵之所學 而其慕聖之志則切.” 이하 『윤지당유고』는 이영춘, 『임윤지당』, 혜안, 1998의 번역을 기초로 약간 수정을 가하였다.

나아가 “부인으로 태어나 태임 태사와 같은 성인이 되기를 스스로 기약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자포자기한 사람들”이라며245) 『윤지당유고』 「부록」 遺事, “婦人而不以任姒自期者 皆自棄也.” 성인에 대한 강한 지향을 드러냈다. 윤지당의 사상은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에게 이어졌다. 정일당은 남편과 더불어 학문 탐구를 충실히 하였으며, 윤지당의 글을 인용하면서 부인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남편의 의견을 묻는 쪽지를 보내기도 하였다.246) 『정일당유고』 「附尺牘」, “允摯堂曰 我雖婦人 而所受之性 初無男女之殊然 又曰 婦人而不以任姒自期者 皆自棄也 然則雖婦人而能有.”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조선 여성들은 성인을 직접 언급하였으며, 반드시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로 인식하였다. 남성 성인과 구별되는 여중군자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성인을 지향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 여성들은 성인을 지향하였을까?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이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비례의 폐쇄적 담론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유교를 넘어서 다른 세계를 꿈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조선 여성들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한 성인 지향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들에게 성인은 수신의 동기와 목표가 되었으며, 스스로 욕망을 극복하는 주체로 인식하였다.

사대부들은 여성의 성인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선 여성 들은 맹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즉, 성인론의 보편성에 주목한 것이다. 안동 장씨는 유교적 여성 성인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적극 수용하였지만, 소혜왕후, 호연재, 윤지당과 정일당은 성인론이 갖는 차별성보다는 보편적 의미를 살리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윤지당은 여성 규범의 실천에 만족하지 않고, 남성의 전유물인 학문 활동을 통해 성인을 추구하였으며, 여성도 성인이 될 수 있음을 유교의 인식 틀 내에서 논리적으로 입증하고자 하였다. 윤지당은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던 수신론의 불완전성을 논리적으로 극복하고, 스스로 유교 최고의 경지인 성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윤지당의 이러한 자세는 역으로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얼마나 관념적으로 통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여성의 몸에 대한 유교의 불완전하고 부정적인 시각은 주체적 자각에 의해 극복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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