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2 출산하는 몸
  • 01. 어머니의 조건
  • 신체적 조건
이순구

조선에서는 어떤 신체 조건을 가진 여성이 건강한 출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됐을까? 흔히 다산형이라고 하는 여자는 어떤 여자를 말하는 것일까? 가족을 사회의 근간으로 하는 조선에서는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음기(陰氣)가 완전히 성숙되지 못한 미성년 여자로서 성 생활에 대한 생각이 지나치면 딸을 많이 낳는다. 그리고 성질과 품행이 좋은 여자는 월경이 고르고 임신도 잘한다. 성질과 품행이 나쁜 여자는 월경이 고르지 못하다. 또한,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여자는 좋지 못한 일이 많고 얼굴이 곱게 생긴 여자는 복이 적다. 또한, 지나치게 몸이 나면 자궁에 지방이 많아지고 너무 여위면 혈(血)이 적어진다. 이런 여자들은 다 임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249) 『동의보감』 잡병편 권11, 부인 相女法.

『동의보감』 잡병편 부인조에 나와 있는 ‘여자를 보는 법’이다. 일차적으로 미성년자로서 성 생활에 적극적인 여자는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성숙한 여자는 임신을 위해 어느 정도 성욕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고, 미성년은 그렇지 않아서 이 경우 딸을 많이 낳는다고 단정한다. 조선은 아들을 바라는 사회였던 만큼 자연히 미성년이고 성욕이 강한 여성은 금기 대상이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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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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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흥미롭게도 신체 조건을 얘기하면서 성질과 품행을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 성질과 품행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그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나 대 략 유교적 덕목을 갖추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듯하다. ‘성질과 품행이 나쁜 여자는 월경이 고르지 않다는 것’은 품행이 나쁘다고 규정된 여성들은 뭔가 사회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따라서 그것이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질과 품행이 나쁘다는 것은 그 사회의 통념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 사회와 갈등 요소가 많다는 뜻이며 곧 스트레스 자체일 수 있다.

그리고 얼굴이 험상궂게 생기거나 또는 너무 곱게 생긴 것도 모두 건강한 출산을 위해서는 결격 사유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험상궂으면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을 것이고 그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너무 곱다는 것도 많은 남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또 복잡한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게 평가될 수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들어가 보면 유교적인 덕목을 갖추었느냐 못 갖추었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건강한 출산을 위해서는 신체적인 조건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조건, 즉 성질과 품행이 좋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위의 『동의보감』에서 보면 정말 신체적인 조건은 ‘지나치게 몸이 나거나 여윈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비만이면 자궁에 지방이 많아져서 좋지 않고, 여위면 혈이 적어져서 결국 임신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의 경험과 임상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원경제지』에 소개돼 있는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좋은 부인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인의 좋은 상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머릿결이 검고 가늘며 매끄럽고, 눈은 길고 흑백이 분명하며 정신 상태가 나쁘지 않고 인중이 바르며 균형이 잡혀 있고 입술이 붉고 치아가 희며 광대뼈가 품위있고 뺨이 통통한 사람이다. 또 몸이 유연하고 뼈가 부드럽고 크지 않으며 피부가 희고 매끄러 우며 말하는 목소리가 조화롭고 성품과 행동이 유순하면 남자에게 이익이 된다.250) 『임원경제지』 「葆養志」 保精의 相婦人法.

『동의보감』에 비하면 임신을 전제로 한 신체 조건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이미지가 좋은 부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출산, 즉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분석해 볼만하다. 왜냐하면 좋은 부인이 ‘남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였는데, 남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 중에 부인이 자식 잘 낳아서 길러주는 것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에 균형이 잡혀있고 머리가 검고 가늘며 피부가 매끄럽고 눈이 길고 흑백이 분명하다면, 이는 흔히 조선시대가 말하는 미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입술이 붉고 치아가 희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동의보감』에서 곱게 생긴 것을 결격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우수한 자질로 보고 있다. 사실 오랜 세월 남자들은 미인을 원하였다. 곱게 생긴 것이 복이 적다는 것도 원하는 남자가 많아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는 뜻일 수 있다.

남자들이 미인을 원하는 것은 미인이 우수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생학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남자들이 미인에 집착하기는 어렵다. 물론 미인이 다산형이기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시 얼마나 더 우수한 자질을 가진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조선에서 기본적으로 다산을 중시하였지만, 다산 못지않게 훌륭한 아이를 낳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좋은 부인의 조건에는 목소리가 조화롭고 성품이 유순하다는 것도 포함이 되는데, 이는 훌륭한 아이의 조건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목소리가 조화로운 것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이다. 그리고 성품이 유순하다는 것은 여성으로서 좋은 자질을 가졌 다는 것을 뜻한다. 남자 아이를 낳든 여자 아이를 낳든 유순한 성격을 소유한 어머니가 이상적인 어머니로 간주된 듯하다.

유순한 성품이 아이를 잘 키우는데 좋은 조건이 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성리학에서는 훌륭한 인간의 전형을 ‘성인(聖人)’이라고 하였는데, 그 조건에는 자연의 원리에 따르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우주 자연에는 변하지 않는 원리가 있고 그것이 인간에게도 동시에 존재하는데, 인간이 그것을 잘 보존하고 실천하면 곧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순한 성품이란 도덕성을 잘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자질이기도 한 것이다. 어머니의 유순함은 자식의 유순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규정한 좋은 여자란 결국 성질과 품행이 좋은 여자였다. 신체 조건으로 몇 가지를 언급하고 있지만, 비만 정도에 관한 것만 제외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성질과 품행을 보는 것이었다. 『증보산림경제』도 마찬가지다. 좋은 부인상으로 얼굴 모습 등 신체 조건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자의 좋은 성품에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조선에서 어머니로서 갖추어야 할 신체 조건은 일반적인 건강함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것이 없고 실제로는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성품을 갖추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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