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2 출산하는 몸
  • 02. 임신과 태교
  • 태교는 왜 하는가?
이순구

사람의 기품은 천만 가지로 같지 않은 것인데 아름답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게 된 까닭도 그 연유해 온 바가 또한 여러 가지입니다. 부조(父祖)의 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생모(生母)의 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그 기품의 청탁이 다릅니다. 산수와 풍토의 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높고 낮으며 강하고 약한 바가 모두 다릅니다. 이 세 가지는 매우 긴요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253) 『선조실록』권8, 7년 10월 25일 병인 1번째 기사.

1574년(선조 7) 10월 25일 유희춘이 경연에서 사람의 기품에 대해 한 말이다. 사람의 기품은 부모나 산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유희춘은 이어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모가 아무리 선(善)하여도 혹 기쁨과 슬픔, 걱정 때문에 심기가 바르지 못할 때가 있을 수 있고 부모가 아무리 불선(不善)하여도 혹 선의 발단이 싹틀 때가 있을 수 있는 것인데, 대개는 수태한 첫머리에 근본이 생기는 것이고, 임신한 지 3개월이 될 무렵에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임부할 경우 감촉하는 것과 먹고 마시는 것이 모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인데, 이런 것의 소종래(所從來)가 이미 하나만이 아니고 선과 악도 또한 따라서 천만 가지로 같지 않은 것입니다. 이래서 옛사람들이 사는 곳을 가리고 적선(積善)을 하고 태교를 하여 현명한 자손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선조는 빙그레 웃으며 “내가 그전부터 이런 말을 알고 싶어 여러 차례 신하들에게 물어 보아도 자세한 말을 들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 경이 나를 위해 자상하게 말해 주니 참으로 기쁘고 기쁘다.”라고 말하였다.

우선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희춘이나 선조나 모두 사람의 기품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왕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과적으로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을 얻기 위해 조선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덕적 인간을 이상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사람의 성품에 관심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유희춘의 생각에 의하면 사람의 기품은 아버지 쪽, 어머니 쪽 그리고 산수와 자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영향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그것이 이른바 태교라고 하고 있다. 부모의 선과 불선이 그대로 자식에게 전달되기보다는 선 한 부모라도 선하지 않은 때에 자식이 생겼을 경우가 있고, 또 불선한 부모도 선해지는 순간에 자식을 가질 수도 있어서 자식의 성품이 이루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임신 초기에 성품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임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임부가 감촉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모두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좋은 거처와 적선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현명한 자손을 얻는데 목적이 있다.

유희춘의 태교론은 조선 중기의 것인데, 그렇다면 초기에는 어떤 이론이 있었을까?

부인이 아기를 잉태하면 모로 눕지도 모서리나 자리 끝에 앉지도 않았으며 외다리로 서지 않았고, 거친 음식도 먹지 않았다.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현란한 것을 보지 않았고, 음란한 음악은 듣지 않았다. 밤에는 눈먼 악관에게 시를 읊게 하였고 올바른 이야기만 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자식을 낳으면 반듯하고 재덕이 남보다 뛰어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가졌을 때 반드시 감정을 신중히 해야 한다. 선하게 느끼면 아이도 선하게 되고 나쁘게 느끼면 아이도 악하게 된다. 사람이 태어나 부모를 닮는 것은 모두 그 어머니가 밖에서 느끼는 것이 태아에게 전해진 까닭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모습과 마음이 부모를 닮게 되는 것이다. 문왕의 어머니는 자식이 부모를 닮게 되는 이치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열녀전』 또는 『소학』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이른바 태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수대비의 『내훈』, 율곡의 『성학집요』,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또 각종 여자 교훈서 그리고 『태교신기』나 『규합총서』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절이다. 계속 습관적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의 요체를 본다면 그것은 건강과 안전, 그리고 반듯함과 선함으로 요약될 수 있다.

확대보기
『태교신기』
『태교신기』
팝업창 닫기

‘모로 눕지 않고, 자리 끝에 앉지 않으며 외다리로 서지 않는 것’ 등이 건강과 안전을 유지하라는 권유이며, 바르지 않으면 먹지 말고 선하게 느낄 것을 권하는 것은 반듯함과 선함을 강조한 것이다. 즉, 조선에서 태교의 기본은 안전과 좋은 성품 만들기에 집중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태교의 원형 외에 조선 후기에 이르면 실질적인 태교를 가르쳐주는 연구서가 나오게 된다. 사주당 이씨(1739∼1821)의 『태교신기』가 그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여성 자신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쓴 책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사주당은 “여러 책을 상고해 보아도 그 법이 상세하지 않아서”, 또 “내가 임신한 중에 시험해 본 것”이 있어서 책을 엮었다고 하였다. 4명의 자녀를 키워낸 실질적인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다. 즉, 자료 조사를 충분히 하고 부족한 점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보완하여 『태교신기』라는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물론 『태교신기』의 목표는 앞에서 언급한 태교의 목적과 다르지 않다. 훌륭한 인간을 낳는 것이다. 다만, 이전의 태교서에 비해 드러나는 특징은 성리학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에 근본하고 기질은 부모에게서 받으니 기질이 치우치면 본성을 덮어버리게 된다.”는 말에서 성리학적 이기론이 읽힌다.254) 『역주 태교신기』, 성보사, 1991. 이 구절은 『胎敎新記』 제1장 1절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의 본성’ 문제가 그만큼 중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이 무르익은 조선 후기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인 배경보다는 『태교신기』의 보다 큰 장점은 역시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태교신 기』의 주의 사항들은 다른 태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쁜 것을 보지 말고 또 안전에 유의하라는 것 등이다. 그러나 『태교신기』는 해산 방법 등에서 매우 구체성을 띠고 있다. 아이를 낳을 때 “아파도 몸을 비틀지 말고 엎드려 누우면[偃臥] 해산하기 쉽다.”고 하였다. ‘언와’의 해석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주당이 해산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산의 경험이 풍부한 사주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태교를 가족의 일로 본 점도 특이한 점이다. 태교는 임산부 혼자서 할 것이 아니라 온 집안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하였다. 임신과 출산에는 가족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가족의 주의를 환기시켜 두면 임산부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에게 적절하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태교신기』는 조선 후기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임산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태교를 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것이었고, 그 다음은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배출해 내기 위해서였다. 선한 인간 또는 성리학적인 인간을 이상으로 하였던 조선에서는 늘 도덕성을 갖춘 아이의 출생을 기대하였고 그것을 위해 임산부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이 요구됐다. 물론 아이가 바라는 대로 태어나느냐는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 자체에 매우 신중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마도 그것은 조선이 사회의 건전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태교에는 태아의 안전을 기본으로 중시하지만, 그 위에 도덕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조선 사회의 성격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