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2 출산하는 몸
  • 03. 출산과 산후병
  • 위험한 일, 출산
이순구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놓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저 신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는 우리 할머니 세대들의 출산 이야기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전근대 시기 가임기 여성 사망률 1위는 아마도 출산 또는 산후병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 만큼 조선에서 출산은 위험스럽고 그래서 신중해야 할 일이었다.

① 같은 집에서 같은 달에 두 사람이 해산하면 불길하다.

② 산월에는 집수리를 하지 않는다. 수리하면 언청이나 벙어리를 낳는다.

③ 산월에 문구멍을 바르면 난산한다.

④ 산월에 절을 하면 부정을 탄다.

⑤ 화재를 보지 않는다. 보면 흉사가 생긴다.

⑥ 남에게 욕을 하면 욕한 대로 아이를 낳는다.

⑦ 미물이라도 살생하면 불정을 입는다.

⑧ 산월에는 온 집안 식구가 상가에 가지 않는다.

⑨ 시체를 보면 악령이 붙는다.

얼마 전까지도 출산과 관련하여 민간 신앙에서 강조되던 금기 사항들이다.255) 『한국 민속의 세계』 9,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p.619. 여러 민간 신앙 중 의료 그 중에서도 임신과 출산에 관한 서술에서 이러한 금기 사항을 예시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이제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돼 버린 것이 많지만, 그러나 이렇게 출산과 관련된 금지 사항이 많았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길하다’, ‘난산한다’, ‘부정탄다’ 등은 모두 출산으로 산모 또는 아이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워낙 출산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생기다 보니까 이렇게 금기사항을 두어 가능한 위험 요소를 줄여 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조선 왕실에서 약방 제조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해야 하는 경우는 왕이 아플 때와 산실청이 설치돼 있을 때뿐이다. 국가의 지존인 왕이 아플 때야 약방 제조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산실청이 설치돼 있을 때도 약방 제조들이 숙직을 한다는 것은 좀 의외이다. 왕실에서는 대략 출산 전 3개월이 되면 산실청을 설치할 수 있고 이어서 약방 제조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하였다. 왕비라고는 해도 여자의 일인데, 이렇게까지 신중하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거기에는 물론 다음 왕이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더 기본적으로는 출산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왕실에서처럼 집중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위에서와 같은 금기사항들을 만들어 가능한 한 임산부를 보호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실제 출산이 임박하면 어떤 준비를 하게 됐을까?

출산하려고 하실 때 산실 방 안이나 방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급하게 걷는 것을 못하게 하시고 마땅히 문을 굳게 닫으시고 고요히 때를 기 다리시며 산실 방 안에 병풍과 장을 두르되, 다만 바람과 추위를 피할 뿐, 가히 중첩하지 않도록 하시고, 답답하고 더운 기운이 심하게 하지 마시며 의복의 온량을 반드시 알맞게 하여 너무 따뜻하거나 너무 서늘하게 마시며….256)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조선 왕실의 출산문화』, 이회, 2005. 이 책 중 황문환 교수가 현대역한 「출산에 앞서 미리 알아두어야 할 여러 방법: 임산예지법」에 나와 있는 구절이다.

『임산예지법(臨産豫知法)』이라는 왕실의 출산 지침서에 나와 있는 준비 과정이다. 왕실의 출산 준비라 일반민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출산이라는 위험한 일을 수행해야 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산실은 조용해야 하며 바람과 추위는 피하되, 너무 덥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요체이다. 장소 외에 문제들도 재질의 좋고 나쁨을 있을지 모르지만, 대개 이런 형식으로 준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출산하려고 하실 때 나이가 많고 유식하고 순근한 부녀 서너 명을 가려 좌우에 붙들어 모시게 하고, 나이가 어리고 성정이 가볍고 조급한 사람과 그리고 행동거지를 가볍게 하는 사람은 일절 출입을 말게 하시며…

계속되는 『임산예지법』의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출산을 돕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예상대로 경험 있고 침착한 사람이 돕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반면 어리고 조급한 사람은 피해야 할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것이야 말로 왕실이나 민간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생각하였을 부분이다.

장소와 사람 외에 본인 스스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였을까? 본인에게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신중함과 집중력이었다. “복통이 비록 심하더라도 가벼이 행동치 마시며 힘줌을 일찍 하지 마시어 기다리시고, 자연스레 힘주시게 되거든 의도적으로 힘을 주시며…”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가볍게 행동하지 말고 때맞추어 힘을 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는 걸으라고 한다. ‘복통이 심하더라도 사람을 붙들고 천천히 행보’하라는 것이다. 또한, 틈틈이 흰밥과 미역국을 먹어 힘을 보충할 것도 권한다. 누구나 흰밥을 먹을 수는 없었겠지만, 속을 비우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출산은 대단히 신중을 기하는 일이었다. 왕실의 여성이나 일반 여성들이나 위험한 과정이기는 마찬가지였고 이러한 주의 사항은 금과옥조처럼 중시되었을 것이다.

순산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주의 사항은 계속된다. 해산 후에는 일단 안정을 취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몸을 밟아 주라고 하며 너무 덥지 않게 하되, 차고 단단한 음식을 금하였다. 출산으로 몸이 이완돼 있는 상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젖 문제도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처음 유즙이 모였을 때 아프더라도 주물러서 흘러내리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중요한 역할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리를 잘 못하면 젖몸살로 크게 고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신중을 기해도 출산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순산이 보장되지는 않았다. 난산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았고 또 순산한 후에도 여러 증상들로 고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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