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3 타자화된 하층 여성의 몸
  • 03. 불완전한 혼인
  • 양반의 첩살이
  • 1. 주인의 성적 침탈
이성임

성욕은 식욕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닌 본성 중의 하나여서 이에 대한 정서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양반 남성들은 보다 쉽게 성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대상은 여비와 기녀였다.

여비는 자색은 기녀만 못할 지라도 쉽게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따라서 양반 주인의 입장에서 비의 성을 꺼릴 것 없이 농락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갓김치종’이라 부르기도 하고, “종년 간통은 누운 소타기보다 쉽다.”는 속담이 생겨나기도 하였다.321) 이영훈, 앞의 책, 2000, pp.102∼103. 그러나 여비도 일시적으로 성적인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장기적으로는 첩이 되어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일시적으로 농락을 당하는 경우는 이문건 가의 비 향복(香福, 香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322) 이하는 이성임의 연구를 바탕으로 기술하였다(「조선 중기 성 관념과 그 표출양상」, 『조선시대 사회의 모습』, 집문당, 2003, pp.431∼436). 이문건의 유배 생활은 그리 외롭지 않았다. 부인과 아들·며느리가 내려와 함께 생활하였으며, 을사사화에 화를 입어 경흥에 유배된 조카 염(爓)의 아들 천택(天澤)도 함께 내려와 수학하고 있었다. 이 때 향복은 나이 어린 여종으로 상당(上堂)에서 이문건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문건은 향복이 강간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에 이문건은 향복의 어미인 삼월(三月)을 불러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나 향복은 자신을 범한 자가 누구인지를 발설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이문건은 향복이 강간을 당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하가로 쫓아 버렸다. 강간을 당하면서 소리쳐 거절하지도 않고 누가 그러하였는지를 밝히지 않아 동정의 여지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내심으로는 강간을 당한 여종이 자신의 시중을 드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여 일 후 향복을 범한 상대가 도령이었으며, 도령이 세 차례에 걸쳐 범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처음에는 아들 온(熅)에게 혐의를 두었으나 온은 몸이 아파 누워있는 상태였으므로 결국 염의 아들 천택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그러나 이문건은 천택이 향복을 강간한 사실을 알고도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 다만, 며칠 후에 공부를 끝내고 나서 색을 경계하라는 뜻을 전할 뿐이었다. 이후에도 향복은 차비 온석(穩石)과 통간하게 된다. 주목되는 사실은 통간한 인물보다 강간을 당한 여종에 대한 처벌이 더 가혹하다는 사실이다. 향복이 천택에게 강간을 당할 때 소리쳐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가로 내려가도록 하는가 하면, 온석과 통간하였을 때는 오히려 강간을 당한 향복을 구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에 향복은 딸을 출산하는데 그 아비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이문건도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향복의 딸을 자신의 아이라고 인지(認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어린 딸도 향복의 신분을 따라 이문건 가의 비로 사환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미 삼월(三月)—향복(香福)—딸 3대가 이문건 가의 비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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