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1 몸의 가치와 모성의 저항
  • 01. 근대적 여성미와 여성의 몸
  • 여성의 몸과 미에 대한 담론
신영숙

이른바 근대 사회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채, 육체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근대의 몸이란 외모와 내면이 분열되는 몸으로 인식되고 있어 전근대의 하나의 통일체 몸과 차별화된다. 전근대 사회의 몸을 표현한 대표적인 어귀,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신체는 정신과 분리될 수 있는 물질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정신과 육체는 마치 분리되는 것처럼 이해됨으로써 내면과 외부의 단절, 격리가 오히려 문제시된다. 이처럼 육체와 몸을 정신이나 영혼 등과 구분한 근대적 몸은 전근대적 공동체의 가치와 의식을 담고 정신을 반영하는 몸, 주체와 타자가 분열되지 않은 통합된 전근대적 몸과는 아주 다른 실체로 비교되기도 한다.383) 김종갑, 「전근대적 몸과 근대적 몸」,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 나남, 2008, pp.21∼52.

그러나 아무리 근대적 몸이 정신과 분리된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시되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도 정신과 몸이 무관한 듯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때문에 동시에 근대적 미도 내면의 세계, 즉 정 신이나 마음을 배제한 별도의 육체미만으로 성립되기는 어렵다. 근대적 몸이나 미가 근대 과학에 맞게 계량화하면서도 윤리 도덕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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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조선미인보감』이라는 책에 소개된 기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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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사회화, 합리화, 그리고 개별화라고 하는 근대 문명화된 몸의 세가지 주요 특징은 근대 사회의 몸에 대한 규칙적인 통제와 함께 자아 정체성의 유지와 타인의 평가도에 필수적인 요소였다.384) 크리스 쉴링, 임임숙 역, 『몸의 사회학』, 나남출판, 1999, p.259. 또한, 근대적 정신 세계에서 자유 연애 등 남녀 간의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고자 하는 여성의 주체성에 비례하여 여성의 몸도 중시되기는 하였지만 여성의 자아 정체성과 몸을 하나로 인식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근대 여성의 몸은 섹슈얼리티에 따른 대상화 나 소비 문화에 의한 상품화 등으로 객체화되기 십상이었다.

근대 일본의 1920∼30년대 미술 작품의 이른바 ‘모가(모던 걸의 일본식 표현)’는 종래의 규범이나 관습을 타파하는 ‘전위’에 걸맞은 이미지, 특히 금기를 범하는 여성의 성적인 신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여성의 신체를 보는 것은 사회 변혁이나 근대화가 부여한 ‘남성다움’의 행위였으며, 반복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보거나 소유하는 행위는 근대적 남성성의 구축에 기여하였다는 것이다.385) 이케다 시노부, 김혜신,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의 여성표상」, 『확장하는 모더니티』, p.263 참고. 한국에서도 근대 초기 이른바 개화기 신소설의 삽화에서부터 몸의 미와 관음증 등이 등장하면서, 여성 몸에 대한 ‘시각화=상품화’ 또는 몸의 대상화는 긴밀히 연결되었다. 이 같은 삽화가 본격화하는 것은 1930년대라고 한다.386) 이영아, 『육체의 탄생』, 민음사, 2008, pp.185∼186.

한편, 아직 젠더(성별) 의식에까지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여성해방론과 함께 여성의 몸에 대한 근대적 인식도 싹트고 있다. 이전 유교적 전통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남성과 같이 존중받지 못하던 것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193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육체미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갔다. 온 몸 가운데서도 각각의 부분이 적당한 비례로 발육이 잘 되어야 한다는 육체미는 몸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논의로 이미 일정한 근대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여성의 육체미란 곧 근대적 여성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근대 국민국가와 제국주의 전쟁 등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활용도와 가치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몸은 집중적인 국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여성들 스스로는 이를 계기로 자아 실현, 또는 지위 상승 등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때로는 결실을 거두기도 하였다. 근대적 여성의 몸은 ‘권력에 의한 통제’ 못지않게 스스로의 ‘자율적 관리’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특성을 갖게 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적 몸·미의 준거가 변 화하고, 여성이 그에 대응하면서 여성 스스로도 살아갈 길, 즉 자기 정체성 확보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즉, 근대적 여성미에 대한 사회적 관심 또는 유혹 등이 커짐에 따라 여성들도 이에 편승, 추종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근대적 여성미를 자신의 몸에 체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국 여성 사회의 근대는 일반적으로 한말개화기 혹은 대한제국 시기 여성의 신식교육에서부터 그 기점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일제 식민지 사회에서도 근대화=서구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 속에 서구화를 수용하면서도 전통적 한국적 여성미를 나름대로 살리는데 고심하는 근대적 여성의 몸·미에 대한 담론들이 등장한다. 본고에서는 주로 당시의 신문, 잡지 자료 등을 활용하여 이를 재구성, 조명해본다.

1920∼30년대에 남녀 양성에 관한 자료 등이 번역, 소개되면서, <미인 제조 비법>, <과학적 견지로 보는 세계 공통 미인 표준>, <인체미의 근본이 되는 전형> 등의 글 속에 “사람의 머리, 얼굴에서 다리까지 각 부분이 균형이 잘 잡혀야 한다”는 근대적 미적 기준이 등장하고 있다. 남성미와 여성미의 다른 점은 남자의 키는 머리의 8배, 여자는 7배 반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이 있는가 하면, 미를 위한 신체, 모발 등의 손질로 화장 또는 장식에도 각종 근대적 위생과 과학적인 처방이 거론되었던 것이 이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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