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1 몸의 가치와 모성의 저항
  • 04. 전쟁에 동원된 몸
  • 여자 군속
신영숙

군속이란 군대 구성원을 말하며, 육해군에 복무하는 군인 이외의 사람들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군속은 준군인으로서 군사 법제 하에서 군무에 복무하는 점에서는 군인과 다름없다. 군속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군인 못지 않게 중요하다.420) 신영숙, 「아시아 태평양전쟁기 조선인 종군간호부의 동원실태와 정체성」,『여성과 역사』 14, 2011. 아래 특별히 주를 달지 않은 것은 대부분 이 글을 참고한 것이다.

일제의 군대 문관 안에 보통 교관, 기술관, 법관, 감옥관, 통역관, 간호부, 사정관, 경부 등이 군속으로 구분된다. 또한, 속(屬), 촉탁원, 고원(雇員) 및 용인(수위, 간호부, 소사, 급사, 마부, 소방부 등)도 군속에 포함되어, 이들은 육해군의 요구에 따라 작전지에서 복무하므로 따라서 선원이나, 비행장 설영 대원(토목 작업원), 여성 타이피스트, 조리사, 이발사, 야전 우편국 직원 등도 포함된다. 종군 간호부는 물론 군병원에서 일하는 기록계 여성 등도 당연히 군속이다. 준군속, 군(노)무원 등도 군속과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채 같은 뜻으로 쓰인다.

군속의 동원 방법은 일반적으로 1939년 9월∼1942년 1월의 모집, 1942년 2월∼1944년 8월 관 알선, 1944년 9월∼1945년 8월 징용 등 시기별로 나뉜다. 장기전에 따른 생산 체제와 병력 체제의 병행은 필연적이었으며, 군속 동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쟁 말기 인력 동원은 12∼60세의 남녀 모두가 대상이었으며, 생계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든 군에 동원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여성 동원은 일본의 생산 연령 인구의 71%가 전시 노동력으로 동원된 상황에서 당시의 강력한 국가주의와 함께 ‘남성은 전선, 여성은 총후(후방)’라는 경계선을 절대시한 파시즘의 결과이기도 하다. 즉, 1차 대전 때부터, 군사를 후원하는 여성은 ‘출정에 용기를 주는 여성’, 조국애의 상징으로 미화되거나 ‘국가와 민족의 어머니’로 칭양되었다. 약한 여성을 국가와 함께 보호하는 것은 남성이고, 이에 ‘싸우는 남성의 치어 리더는 여성’이란 성별 역할 분담이 여성 몸에 각인되어 갔다. 그 결과 야스쿠니 신사에 57,000여 명의 여성이 합사되었고, 그 대부분은 전장으로 동원돼 나간 종군 간호부, 군속, 학도 등 전쟁의 희생 제물인 여성 몸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군위안부’도 포함되어 있다.

해군 군속에도 여성들이 포함되었는데, 신체 건강하고, 특수 기능을 가진 자는 소속 장관의 인허를 받아 사용 가능토록 하였다. 2008년 7월 현재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 확정된 피해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조선인 여자 군속에도 간호부가 가장 많았고, 그밖에 사무원, 교환수 등이 있었다. 이들은 최전방에서 부상 군인 치료뿐 아니라 교환수, 이사생(理事生, 해난 사고 심판 등에 관계하는 사무직) 등 기능직과 식사, 빨래, 하역 등 잡역직에 종사하던 여성들로 그 몸을 무참히 혹사당하였다.

<표> 조선인 여자 군속들
피해자 동원 시기 동원 장소 신분 비고
박A씨 1943 진해 해군병참부 이사생 여성청년단
박B씨 1943 겨울 요코스카 해군포술학교 전화교환원 치바현
정씨 1944 인천 조병창 공원(工員) 소학교 5년

위의 표에서 여자 군속들은 1943년 여성청년단으로 강제 징용되어, 경상남도 진해 해군병참부 시설부에서 조선인 노동자에게 피복을 지급하는 일을 하였다는 군속 박A씨, 또 다른 박B씨도 일본 치바현에서 바느질 학교를 졸업한 후 정신대에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하여, 1943년 겨울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타테야마(館山) 해군포술학교의 군속 시험에 합격한 후 전화 교환원으로 근무하였다.

이렇게 전시 총동원 체제에서 조선 여성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들도 식민지 ‘이등 국민’으로 국가와 군에 종속 또는 예속돼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일본 여성의 경우 군속 등으로 전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거나 자기를 개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여성의 몸으로 그 가치를 높일 수도 있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전쟁에 동원된 여성의 몸은 국가 사회적으로 그만큼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시 체제에서 조선 여성의 몸은 민족 문제, 젠더 문제는 물론 여성 계층 간의 문제로까지 중첩되는 차별과 억압의 고통 속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종군 간호부에도 적십자사의 간호부로 정식 군속에 편입된 구호 간호부와 모집에 응한 육군 간호부의 차이뿐만 아니라 용인이나 간호학교생 등으로 임시 또는 속성 간호부에 동원된 피해자 내부 간의 신분 차이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군위안부와 간호부의 몸은 어쩌면 하늘과 땅같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남성 군인들 눈에는 여전히 하나의 여성, 즉 성적 희롱(폭력)의 대상, 몸 덩어리일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이른바 황군 체제 속의 군인과 군속, 그리고 ‘위안부’를 포함한 여자 군속으로서 여성 몸이란 관계를 규정하는 젠더적 특성이다. 그들은 전쟁 시기에 국가를 위해 당연히 희생을 감수해야 할 여성의 몸인 것이었다. 여성의 몸이 누릴 인격 또는 인권 문제 등은 전혀 고려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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