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2 미, 노동 그리고 출산
  • 01. 미인의 시대
  • 유행의 시대
김미정

여성의 몸에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 중 의복은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의복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으로서 뿐 아니라 ‘보여지는 몸’을 위한 치장의 기능이 강조되어 갔다. 먹고사는 문제의 절박함으로 흔히 패션이라고 부르는 유행을 따를 수 없는 여 성들이 대다수였던 시기였지만, 직업 여성 그리고 중류층 이상의 부인들, 여학생들 사이에서 잡지나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습득한 복식, 미용 등에 대한 정보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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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는 여성의 특권․미는 새로운 행복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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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아직 이렇다할 유행은 없었다. 물자가 워낙 귀한 데다 먹고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국민복 차림, 여자라면 몸빼를 입는 게 고작이었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멋쟁이 가운데는 빌로도439) 빌로도는 우단보다 바닥의 털이 더 길고 보드라운 천으로 벨벳과 비슷하다. 치마와 마카오 양복을 입는 이도 생겨났다.

1950년대 혼인시 빌로도 치마를 받으면 남들로부터 채단 좋은 것을 받았다는 부러움을 샀다고 할 정도이니 빌로도의 물결은 과히 유행의 큰 흐름이었다.440) 박완서, 「1950년대 미제문화와 비로도가 판치던 거리」, 『우리역사의 7가지 풍경』, 역사문제연구소 편, 역사비평사, 1999, p.334. 1950∼1960년대 초까지 의복은 기본적인 기능이 강조되다가 점차 ‘미(美)’와 ‘유행(流行)’에 민감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여성 의복의 특징적인 변화는 친미적인 사회 분위기에 의해 여성 복식의 서구화가 촉진되었다는 점이다.441) 兪水敬, 『韓國女性洋裝變遷史』, 일지사, 1990. 해방기의 복식 문화는 미군 부대를 통해 나온 구호품으로 형성되었다. 농촌의 경우는 여전히 한복을 착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대도시에서는 양장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6·25전쟁기에는 구호품 의복과 한복, 투피스와 코트, 빌로도 치마 등이 유행하였다. 전시 생활 중에도 마카오산 양복지를 비롯해, 벨벳, 양단 등 각종 사치스러운 옷감이 범람하자 당시 신문에 ‘당신의 차림은 전시 생활에 알맞습니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442) 『조선일보』 1952년 6월 20일자. 한편에서는 새로운 의복의 유행으로 다양한 옷감의 다양한 의복이 소개되는 상황이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제한된 복장 착용이 강요되고 있던 상황이다. 1951년 11 월 18일 제정된 ‘전시생활개선법’ 제7조에443) 전시생활개선법 법률 제225호, 1951년 11월 18일 제정.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전시에 상응하지 아니하는 복장의 착용을 제한 또는 금지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을 통해 의복 통제가 강요되고 있던 사회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업 전선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1950년대 후반 여성들에게 활동이 편리한 양장과 바지 착용이 증가하게 되었는데 이는 일의 능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444) 兪水敬, 앞의 책, p.278.

정말 요즘에 와서는 여성들의 바지 착용에 있어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젊은 여성이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바지를 많이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요사이 유행하는 ‘맘보 바지’를 생각할 때 바지이름은 ‘맘보 바지’이건 ‘나팔바지’이건 활동하기에는 매우 편리한 복장이고 우리나라는 겨울이 추우니만큼 속옷을 많이 입고 ‘나이론’ 양말 대신 두꺼운 양말을 신을 수가 있으니 보건상 도움이 되고 더욱이 직장에서 바지를 착용하면 타이트 스커트나 치마저고리보다는 훨씬 일의 능률을 올리리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모든 복장을 간소화하려는 이때, 즉 최대의 생산과 최소의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바지는 가장 좋은 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젊은 사람들이 바지의 간단한 옷차림으로 열심히 일을 한다면 보기에는 물론 일의 결과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달리 뚜렷이 좋은 효과를 가져오리라고 믿는다.445) 石宙善, 「바지를 입는 女性들이 늘어간다」, 『女苑』 1958년 2월, pp.258∼259.

1956년을 전후해서는 몸에 찰싹 달라붙는 맘보 바지가 수입되었다. 볼륨 바지인 맘보 바지는 맘보 춤의 율동을 충분히 살리도록 고안된 것이다. 미군 상대 여성이 먼저 입기 시작해서 점잖지 못하다는 눈총 속에서도 일반 젊은 여성 사이에서 점차 유행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는 의복을 통해 여성의 몸을 매개하는 방식에 있어 전통과 현대, 유행과 통제가 함께 재현되는 시기였다. 한복과 양장의 공존, 기능성을 강조한 바지와 빌로도 치마, 맘보 바지의 등장, 전시생활개선법, 신생활운동446) 신생활 운동은 의복에 대한 부분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낡은 생활 양식을 개선하고 국민의 생활의식을 높이려는 사회 운동을 말한다. 관혼상제의 간소화 및 의식주 생활의 개선 등을 꾀하였으며 의식주 생활 개선의 하나로 여성들의 의복 간소화 운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등을 통한 의복 간소화 운동이 공존하고 있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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