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2 미, 노동 그리고 출산
  • 02. 일하는 몸, 일상화된 질병
  • 기계에 맞추어야 하는 여공들의 몸
김미정

여공들의 공장 생활은 군대식으로 규율화되었고, 여기서 여성의 몸은 하나의 부속품화되었다. 12시간 이상의 노동 시간 속에서 기계에 맞추어 돌아가는 반복되는 작업들은 여성의 몸을 그들 자신으 로부터 객체화시켰다.

우리가 막상 일을 하면 정말 기계예요.…아무튼 우리는 8시간 근무를 하였는데, 그 8시간을 위해서 바깥에 있는 16시간이 거의 다 잠재 의식 속에 짓눌리는 듯한 그런 작업 조건이었어요. 8시간 동안 일하는 동안에는 내가 이미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오로지 그 생산만을 위해서 현장 분위기에 맞춰야 되고 기계가 돌아가는 것에 따라서 우리도 돌아가야 되는 거였어요.449) “노동운동과 나” 좌담회자료집, 성공회대학교, 2002년 11월 21일, p.370.

일을 하는 8시간의 생활뿐 아니라, 노동시간 외의 생활도 온통 일과 분리되지 않은 채 강박증을 가지며 살아갔다. ‘나’라는 존재감조차 잊어버리고, 오직 생산, 현장, 기계 등에 집중해야만 하였던 그들의 생활은 앞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기나 기사, 구술 등을 통해 당시 여공들의 생활은 많이 알려졌다. 울산의 동양나일론 여공기숙사의 생활의 이야기가 소개된 ‘공업단지-여공의 하루’라는 기사를 보면,450) 『조선일보』 1976년 3월 14일자. 7백명의 여공들은 24시간의 공장 가동으로 8시간씩 3조 3교대 근무를 하여 주말이 따로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기숙사 생활도 병영 생활만큼이나 통제 받고 있었다. 그들의 하루 일과를 따라 가보자.

아침 6시에 기상하여 공동 세면장에서 세수를 끝내고 6시 30분에 회사 공용 식당에서 식사를 시작한다. 곧,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7시 30분이 되면 어제 저녁 야근조와의 교대를 위해 출근한다. 어제 저녁 야근조로부터 간단한 인수 인계를 받는다. 김양이 하는 일은 이곳 다른 동료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드로우 트위스터를 관리하는 일이다… 드로우 트위스터의 요란한 기계 소리가 가득한 이 공장에서 기계 주위를 돌면서 오전 일과 4시간 30분을 보낸다.

12시의 점심 시간은 낮 휴식이나 다름없이 활용된다. 오후 1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다 하루 일과 8시간을 끝내고 안식처인 기숙사로 돌아온다. 야근조인 이모양은 오전 7시30분 아침조와 교대가 끝나 기숙사로 오면 10시부터 ‘일제 취침’을 해야 한다. 자신이 피곤도 하지만 회사측이 야근조의 취침 시간은 강제성을 띨만큼 철저히 관리한다. 이 시간 동안만은 외부 면회도 일체 금지시킨다. 점심을 먹고나서 대부분 또다시 수면에 들어 간다. 오후 5∼6시쯤 야근조는 기상한다. 아침조는 일과 후인 오후 3시 이후, 야근조는 오후3시 이후, 야근조는 오후 5시 이후가 각각 자기 시간이 되는 셈이다.451) 『조선일보』 1973년 3월 14일자.

여공들의 경우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개인 생활은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된다. 작업 시간의 경우 여공들의 몸은 한 인간으로서의 몸이라기보다는 기계와 함께 공장을 원활히 돌리기 위해 움직이는 수단으로 유지되고 통제되었다.

몸의 효용성을 증대시키는 것, 노동의 효율성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몸을 통제․조절하는 것은 노동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조건이었다. ‘유순한 몸’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몸의 활동 과정의 결과뿐 아니라, 육체 활동 과정 자체에 대한 계속적인 강제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성 노동자는 공장 안에 갇혀서 자신의 자리에 배정되어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되고 공장 안에서 여성 노동자의 순위는 이미 배열되어 있는 공장 자체의 공간을 통해서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452) 여공에 관한 내용은 김원 연구를 기반으로 작성한 것으로, 여공생활과 관련한 내용은 이를 참고(김원, 『여공 1970』, 이매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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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노동 조건과 저임금의 고달픈 여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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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가 없는 공장의 경우 여공들은 보통은 4명 정도 그룹을 지어 공장 근처에 세방을 얻어 공동 자취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최저의 식생활로 생활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그들 대부 분은 빈혈과 영양실조 그리고 소화 불량에 시달리곤 하였다.453) 『동아일보』 1970년 10월 23일자.

여공들은 직업으로 인한 그리고 과도한 작업 시간 등의 이유로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일상적인 위장병이나 두통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제사 공장 등에서는 피부병이 새로운 직업병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454) 『조선일보』 1972년 2월 24일자. 저임금과 중노동, 공해 투성이의 작업 환경과 형편없는 위생 시설로 인한 질병 등에 여공들의 몸은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업무에 따라 여공들의 직업병도 다양하였다. 기숙사 시설이 열악하였던 공장의 경우는 여공들이 단체로 동상에 걸리기도 하였고, 화학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작업 공정에서 사용되던 독극성 화공 약품으로 인한 중독자가 되거나 장래 임신에까지 지장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전자 회사에서 근무하는 여공들은 대부분 시력이 감퇴하였고, 모방 직포에서 수년 간 일하는 경우 작업장에서 얻은 난청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였다.455) 『동아일보』 1975년 3월 11일자. 온종일 온수에 손을 넣어 실을 뽑아내야 하는 생사 공장에서는 손이 물에 불어 허옇게 헤지고 진물이 나며 알루미늄 공장에선 납독이 들어 얼굴이 퍼레지고 포르말린 접착제를 사용하는 합판 공장과 고무 공장에서는 주루루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었다.

여공의 몸은 공장 안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계와 함께 끊임없이 돌아가고 배치되었다.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여러 질병에 항시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여공들은 자신들의 몸에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과도 맞서야 하였다. 관리자들의 폭언, 폭행 등이 그것이다. 관리자들의 일상적인 폭력은 관행화되어 있었다. 관리자들이 여공에게 함부로 대하고 겨울 눈밭에서 굴림을 시키거나, 토끼뜀을 뛰게 하고, 머리를 잡아서 흔들어 부딪치게 하는 등과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들은 공장 안에서는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다.456) “노동운동과 나” 좌담회자료집, p.374 발췌. 억압적이고 통제된 공간인 공 장 안에서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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