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2 미, 노동 그리고 출산
  • 02. 일하는 몸, 일상화된 질병
  • 18시간, 만원 버스 그리고 몸 수색
김미정

1960∼1970년대 여공과 함께 버스 여차장 또는 안내양이라 불렸던 직업 여성들이 있다.457) 식모와 안내양 관련한 연구는 김정화, 「1960년대 여성노동-식모와 버스안내양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11, 2002 참고. 이들은 버스에서 차비를 받고 잔돈을 거슬러주는 등의 일을 하였다. 안내양이 일하면서 주로 사용하였던 ‘오라이∼’라는 단어는 코미디 프로에서 간혹 재현되기도 하고 이 시기를 회상할 때 등장하는 하나의 소재거리가 되기도 한다. 안내양은 1982년 시민 자율 버스가 도입되면서 줄어들기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에는 사라지게 되었다.

안내양은 여차장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연령은 대부분 19세에서 23세였다. 안내양의 근무 시간은 평균 18시간에서 21시간 정도였다. 보통 2일 근무하고 하루를 쉬는 형태였다. 그들은 18시간 이상의 과중한 근무를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피로와 수면 부족, 공기 나쁜 차내에서의 근무로 인한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458) 『경향신문』 1972년 3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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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여차장
버스 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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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여차장이 등장한 것은 1961년 8월이었다. 그들의 작업 환경을 보면 후생 시설(숙소, 세면장, 화장실)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459) 『경향신문』 1972년 3월 10일자. 후생 시설의 부족은 안내양들의 노동 조건이 매우 열악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내양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 중 하나는 특히 몸 수색[檢身]이었다. 속칭 ‘삥땅’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루의 업무가 끝난 후 받는 몸 수색에 대해 대부분의 안내양들은 수치감을 느꼈다. 몸 수색을 하는 사람이 주로 남자 직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이때 안내양들은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였다. 어느 회사에서나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감독이라는 사람들을 통해 검신을 하였고, 이러한 검신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460) 『동아일보』 1974년 5월 25일자.

1971년 YWCA에서 조사한 버스 업체는 전국에 55개 회사 중 기숙사가 있는 곳은 40개, 세면장은 31개뿐이며 남녀 공동 숙소도 5곳이나 되어 불안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숙소나 세면장이 있는 것도 대부분 협소하고 불결해서 오히려 각종 병의 온상이 될 우려가 있을 정도였다.461) 『경향신문』 1972년 3월 10일자.

매우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안내양들은 과중한 근무와 수면 부족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만성적인 질병을 가지게 되었다.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해서 오는 위장병, 불결한 환경에서 오는 감기, 편도선염, 그리고 항상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긴 허리, 어깨 다리 등의 신경통, 동상, 피부병 등은 안내양들이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질병들이었다.

당시 자동차 노조 서울버스 지부서 56개 회사 4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버스 안내양의 34%가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 있을 정도였다.462) 『동아일보』 1977년 2월 23일자.

안내양들은 자정까지 근무하는 격무로 피로에 지친 데다 온수 시설의 미비로 발을 씻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고 근무 중에 기숙사 출입을 금하고 있어 땀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지도 못한 채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계속 근무해 손발이 얼어 터져 동상에 걸리기 쉬운”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또 당시 겨울에는 방한화와 장갑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동상 환자가 생기기도 하였고, 여름에는 무좀에 시달리기도 하였다.463) 『동아일보』 1977년 2월 23일자.

만원 버스에 하루 18시간 이상 매달려 살아가는 그녀들에게는 최소한의 휴식과 세면도 허용되지 않았다. 과중한 노동에도 그 가치가 폄하됨은 물론, 재생산의 몸으로써 보호되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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