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2 미, 노동 그리고 출산
  • 03. 출산의 제한과 통제 사이
  • ‘아들 낳기’의 현실적 굴레
김미정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1960∼1970년대에는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자녀 가운데 반드시 아들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가족계획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면서 여성들은 임신의 불안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계획사업은 국가에 의해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었으나, 이로 인해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계기 또한 마련되었다.

통계를 보면 인공 임신 중절을 경험한 부인은 전체 임신 여성의 43.2%라는 놀라운 수이며 심지어 많은 경우는 10회 이상 경험한 사람도 있다. 모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파 수술을 경험한 부인 중 3분의 1이상이 소파 수술로 인한 각종 부인병으로 휴유증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파 수술이란 기계적으로 자궁 경관을 억지로 열어 자궁안의 태아를 긁어내는 과정으로 자궁벽의 손상을 일으킬 염려가 있으며 깨끗이 제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소파 수술을 경함한 부인으로서 월경 이상이 오고 허리가 아프며 기운이 없고 정신이 흐려지며 다음 임신하면 자연 유산이 습관적으로 오며 대하증과 자궁내막염 등을 일으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473) 『과학의 창』 서울 부녀자 3할이 임신중절 ; 『조선일보』 1974년 4월 16일자 상식의 허실 한방. 임신중절만을 가족계획으로 아는 것은 잘못이다.

임신 중절이 몇 가지 단서 조항을 전제로 합법적으로 허용된 이후, 기혼 여성들에게 인공 임신 중절은 앞의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흔한 경험의 하나가 되었다. 때때로 임신 중절은 아들을 낳기 위해 선택적으로 딸을 낙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가족 계획이 보급된 이 후 크게 변화지 않았다. 아들을 낳아야 재생산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사회 분위기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74) 『매일경제』 1971년 8월 5일자 전통 못 깬 아들중시 아들만이 자식인가; 『동아일보』 1972년 6월 26일자 폐습, 아들제일주의 ; 『동아일보』 1973년 3월 12일자 남아선호율96% 이상자녀수삼명 ; 『동아일보』 1973년 7월 20일자 아들낳는비결 ; 『동아일보』 1977년 6월 13일자 남아선호 ; 『매일경제』 1978년 6월 30일자 한국인의 남아선호 95%, 가족계획연구소 분석.

자녀를 적게 낳는 것에 동의하고 실제 피임을 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현실적 간극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였다. 아들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 계획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수월하였던데 비해 상대적으로 아들이 없는 여성에게 가족 계획에 참여시키려는 노력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들이 없는 여성의 경우에는 다산에 대한 불리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였다. 1960∼1970년대 한국 가정에선 아들이 없으면 집안의 혈통이 끊긴 것으로 간주하고 아들만이 그 집안의 대들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래서 일반 가정에선 딸보다 아들을 더 갈망하였고, 이러한 인식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재생산을 위한 여성의 몸은 제도의 통제와 현실 사이에서 이중 부담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대한가족계획협회의 분석(1975)에 따르면 피임을 하고 있는 전체 부부 중 45%가 아들을 둘 이상 두고 있으며 반대로 아들 없이 딸만 있는 가정에서 가족 계획을 하고 있는 부분은 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아들 선호 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도시보다 보수적인 농촌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하였다. 가족 계획 요원들에게도 아들이 있는 집에 찾아가 가족 계획에 대한 계몽을 하기는 쉬워도 딸만 둔 집에 가서 설득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로 간주되었다.475) 『구술사료선집』 2: 가족계획에 헌신하다-1960년대 이후 가족계획협회 계몽원의 활동, 국사편찬위원회, 2005.

이러한 내용은 몇 해 전 영화의 소재로 제공되기도 하였다. 영화 ‘잘살아보세(2006)’는476) 감독 안진우, 「잘살아보세」(2006) 코미디 드라마. 가족계획사업 시행 중에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담아낸 영화이다. 당시 현실을 반영한 이 영화에서도 드러나듯이 가족 계획 정책 시행 당시 농촌에서는 자식 농사만이 남는 장사라고 믿는 마을 주민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출산 의지는 매우 강고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이들을 계몽하기 위해 투입된 가족 계획 요원이 다양한 사건들을 겪게 되는 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시기 국가에 의한 제도적인 통제와 현실 사이의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내용도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29 여)는 딸만 둘 낳고 젊은 나이에 불임 시술을 받아 한동안 주변에서 화제의 대상으로 오르내렸다. 정씨의 시집은 마을 전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지 집안인 데다가 남편이 2대 독자여서 자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에서는 “정씨가 대학 교육을 받은 데다가 시아버지가 공직까지 맡고 있어 가족 계획 시범을 보이자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라.”고 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그렇지. 큰 가문에 손이 끊기는 그런 이유 때문에 하였을 리가 없다. 소문이 잘못났거나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고 수군거렸다. 상반된 추축은 곡절이 있을 거라는 쪽이 맞아 들어갔다.

이 집안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숙의를 거듭한 끝에 정씨가 두 번의 출산으로 더 이상 임신하기가 어려울 만큼 몸이 허약해졌는 데다가 아들은 꼭 있어야 된다는 이유 때문에 정씨의 남편이 다른 곳에서 아들을 낳아오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마음이 허전해진 정씨는 곧 서울에 가 아예 영구 불임 시술을 받아버렸고 남편은 본의 아니게 새 부인을 맞아야 하였다. 계약 조건은 한달에 세 번씩 새 부인 집에 찾아가되 아들을 낳으면 정씨집 호적에 올리고 딸을 낳으면 부양비와 생활비로 매달 20만원씩을 보내준다는 것이었다.…477) 『경향신문』 1977년 8월 29일자 농촌 새풍속도 변화 속 성문화 아들 선호의식. (강조는 필자)

가족 계획의 사각 지대라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사례는 농촌에서 특히 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을 낳기 위해 축첩을 하거나 씨받이 여인을 두는 집안이 농촌에서는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이○○씨(44)는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어도 자녀가 없었지만 축첩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2년 전 부인의 성화에 못이겨 처가 동네의 30대 과부를 맞게 되었다. 부인은 “당신의 마음씨로 보아 그 여자에게 빠질 염려가 없으니 한번만 눈 딱 감고 아들을 하나 얻자.”는 것이었다. 소원대로 30대 과부는 1년 후 아들 하나를 낳아주었고 이씨는 아들을 낳아준 여인이 대전 시내에 나와 잡화상을 낼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구태여 숨길 이유도 없어, 가까운 친지들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고 친척들은 “이씨 내외만 같다면야 축첩이 크게 나쁜 것도 아닐거다.”는 말을 해주었다.…478) 『경향신문』 1977년 8월 29일자.

제도와 사업을 통해 아이를 많이 낳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비해 현실 속 많은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는 않더라도, 아들만은 반드시 낳아야 하는 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가족계획사업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이나 출산 등을 여성 스스로 일정 부분 조절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활용하여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출산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는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집안을 위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이러한 출산(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은 이를 담당한 여성이 한 집안에서 제대로 재생산의 의무와 역할을 이행하였는 지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가족계획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의 여성들은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한다는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또 아들을 낳아서 한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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