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2 세시 풍속과 사회·문화
  • 02. 세시 풍속의 계급적 성격
  • 민간의 세시 문화
  • 3. 여름철 세시 풍속
정승모

일제강점기까지도 단오절에는 줄포, 익산 등 호남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한 단오 사욕(端午沙浴)이 있었고 전주 등 내륙 지방의 단오 수욕(端午水浴), 즉 물맞이 행사가 이어져 왔는데 이것들은 부인네들의 가장 큰 연중행사로 여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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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풍속도첩』 단오 씨름
『단원풍속도첩』 단오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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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울산읍지』 풍속조에는 5월 5일 단오에 각저희(角觝戲), 즉 씨름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마두희(馬頭戲)라는 줄다리기 행사가 나오는데 5월 15일이다. 이날 주민들은 동서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면서 농사점을 치는 데, 동편이 이기면 흉년이 들고 서편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마두(馬頭)’라고 한 것은 동쪽의 큰 산이 뻗어 바다에 이르는 형태가 말머리 같고 또 서쪽을 돌아보지 않고 내닫는 형세라 읍인들이 이를 싫어하여 새끼로 끌어 서쪽을 바라보게 하는 시늉을 내며 즐긴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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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
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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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에서 우러나온 물로 머리감기
창포에서 우러나온 물로 머리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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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책에는 유두(流頭)에 대한 언급도 있다. 즉 ‘욕동유수(浴東流水)’라고 하여 6월 15일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목욕을 한다는 유두절 행사가 있었음을 기록하였다. 유두음식(流頭飮食)이라는 것은 이날 차례를 지낸 후 논 가운데의 논두렁에서 특별히 마련한 음식을 진설하고 주인이 신농씨에게 풍년을 빌고 그것을 논에다 남몰래 분식(分食)한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칠성각이 있어 복을 빌고 자식두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제사를 드린다. 또 중이 불사를 행하고 법요(法要)를 시작할 때 칠성을 청하는 법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 금과 원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서울 인왕산의 칠성암에 신당이 있는데 기도일이 되어 선비들이 와서 재를 올리고 기도를 드리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한다고 하여 유생들이 종종 온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도 도교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조선의 풍속에 사람이 죽으면 일곱 구멍을 뚫어서 북두 형상과 같이 만들고 혹은 종이에 북두 형상을 그려서 시체를 받쳐놓는 것을 칠성판(七星板)이라고 한다. 이것은 북두성의 힘으로 살을 제압하려는 도교적 의미 가 담겨있다.

호미씻이는 한자말로 ‘세서(洗鋤)’라고 한다. 농민들에게는 이날이 여름에 맞는 가장 큰 축제라고 할 수 있는데, 농사일은 위도나 지형의 고도에 따라 파종 시기가 다르므로 결국은 그 일이 끝나는 시기에도 약간의 편차가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는 칠석 행사로 치르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백중 행사인 지역도 많다.

장유(張維, 1587∼1638)는 『계곡집』 「세서」라는 제목의 시에 “농가에서는 김매기가 끝나면 남녀노소가 모여 마시고 즐기는데 이것을 세서라고 한다. 내가 농촌에 있을 때 이것을 목격하였으므로 시로써 기록해 둔다(農家耘事已畢 老少男婦聚飮 謂之洗鋤 余田居目擊其事 而記以詩”고 하였다.

호미씻이[洗鋤]

남정네는 하얀 대오리 갓 머리에 쓰고 / 田翁白竹笠

여인네는 푸른 무명 치마 / 田婦靑布裙

삶은 박에 오이 썰어 새우도 듬뿍 올려놓고 / 烹匏斫瓜薦鰕魚

오래 된 옹배기엔 막걸리가 찰랑찰랑 / 老瓦盆盛黍酒渾

잔디 덮인 언덕의 뽕나무 그늘 아래 / 靑莎原頭桑葉陰

앉자마자 사방에서 꽃 피우는 농사 얘기 / 坐來四座農談喧

저쪽은 이쪽보다 김매기가 늦었다느니 / 東家耘較西家晚

아랫배미가 윗배미보단 벼가 더 잘 됐다느니 / 低田禾比高田繁

잔 돌리는 청년들에 노인들 거나해져 / 少年行酒長老醉

짧은 옷 소매 일어나서 춤도 절로 덩실덩실 / 短袖起舞何蹲蹲

일 년 내내 고된 농사 이 날 하루 즐거움 / 一年作苦一日歡

농촌 들녘 오늘만은 모든 근심 잊으리라 / 田家此夕百憂寬

알다시피 지난해 세금 독촉 아전이 들이닥치자 / 君不見去年吏到索租時

바삐 마련하랴 사흘 굶기도 하였었지 / 翁姥狂奔三日飢

농부들 즐거운 일 어찌 쉽게 얻으리요 / 田家樂事豈易得

가지 말고 천천히 실컷 먹고 취하시라 / 勸君醉飽無遽歸

(『계곡선생집』 권26, 칠언고시).

서거정(1420∼1488)의 문집을 보면 15세기경 칠석에 ‘걸교(乞巧)’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도 7월 칠석에는 걸립을 하고 백중날에 호미씻이 행사를 가진다고 하였다. 경기도와 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서는 백중날보다는 칠석날이 중요한 세시가 되는데 농사력으로 볼 때 백중보다 일주일이 앞선 이날 전후로 농사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칠석날에는 각 가정에서는 부인들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밀전병과 햇과일 등을 갖추어 가족들의 건강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 칠석 치성을 드린다. 칠석날에 아녀자들이 길쌈과 바느질솜씨가 늘기를 기원하는 풍속을 소개한 글이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의 『촌은집(村隱集)』에 나와 있다. 칠성신과 관련되어 있어 절에서는 이날 신도들이 칠성각에서 무병과 장수를 비는 치성을 드린다. 칠석날의 민속 행사에는 이와 같이 불교적 요소와 도교적 요소가 함께 들어와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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