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2 세시 풍속과 사회·문화
  • 02. 세시 풍속의 계급적 성격
  • 민간의 세시 문화
  • 4. 가장 오래된 대명절 추석
정승모

추석은 가위(嘉俳), 한가위, 중추절(中秋節)이라고도 한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서늘하여 생기가 절로 도는 때다. 특히, 농가에서는 일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므로 가장 중요한 명절로 쳐왔다. 오곡(五穀) 백과(百果)가 익는 계절이라 집집마다 술을 빚고 살찐 닭을 잡아 배불리 먹고 취하도록 마시고 즐기면서 이르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만 늘 한가위 같아라.”라고 한다.

가위의 어원에 대해 ‘갑이’의 종성(終聲), 즉 ‘ㅂ’이 생략된 것으로 은혜를 갚는다는 ‘갑(갚)’의 뜻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위의 기원은 상고 시대로 올라간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왕이 이미 6부를 정하고 절반으로 나누어 둘로 만든 다음 두 왕녀를 시켜 각각 부내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패를 갈라 편을 만들었다. 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밤 10시경이 되도록 삼(麻) 길쌈을 하다가 8월 15일에 이르러 그 성적을 살펴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차려 사례하게 하였는데, 이때 노래하고 춤추고 온갖 유희가 연출되니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 때에 진 편의 여자 한 사람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라고 하는데, 그 소리가 애절하였다. 뒷날 사람들이 이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짓고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신라 제3대 왕인 유리니사금(儒理尼師今) 9년(서기 32년)의 일인데, 내용만 보면 여성 노동을 권장할 목적으로 한 행사 같으나 결국은 검약을 실천하고 풍속을 순화하기 위해 왕이 관여한 나라 전체 행사로서의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중국 사서인 『구당서(舊唐書)』에도 신라에서는 8월 보름에 임금이 신하들을 궁전 뜰에 모아 연회를 차리고 활을 쏘며 놀게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회소곡은 김종직의 『점필재집』 중 「동도악부(東都樂府)」를 통해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에는 이날이 되면 누구든지 반드시 차례를 드리고 성묘(省墓)를 하였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각 가정에서는 모두 일찍 일어나 ‘추석빔’으로 받은 새 옷을 갈아입고 하루 전에 만든 술과 떡, 그리고 햇과일로 제사를 지낸다. 특히, 추석에는 머슴이나 거지라도 모두 돌아가신 부모의 무덤을 돌보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주인은 머슴에게 새 옷과 신발, 허리띠까지 해주었는데 이를 ‘추석치레’라고 하였다. 산소의 잡초는 대개 추석 전에 베는데 이를 벌초(伐草)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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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송편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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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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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절식(節食)은 송편(松餠)이고, 특히 달떡이라 하여 동그랗게 빚는다. 중국의 ‘월병(月餠)’이나 일본의 ‘월견단자(月見團子)’도 이와 같은 것이다.

농가에서는 추석날 비가 오면 이듬 해 보리 농사를 망친다고 하여 좋지 않게 여긴다. 옛 문헌에도 “추석날 달이 없으면 토끼나 개 구리가 포태를 못하고 보리가 결실을 못한다.”고 하였다. 달이 있는 추석날 저녁은 달마중을 가는데 정월 보름 때와 마찬가지로 ‘망월(望月)한다’고 하며 달을 보며 각자 소원을 빈다. 떠오르는 달을 제일 처음 보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아낙네들의 속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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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의 거북 놀이
경기도 이천의 거북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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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놀이
거북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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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에 벌어지는 세시 놀이로는 강강술래, 소멕이놀이, 거북 놀이, 씨름 등이 있다. 강강술래는 주로 호남 지방에서 행해지던 풍습이다. 보름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 모여 손을 서로 잡고 원을 만들어 서서 목청 좋은 한사람의 선창에 따라 나머지 사람들이 ‘강강술래’라는 후렴을 합창하며 도는 놀이다. 중부 지방 농촌에서는 소멕이 놀이나 거북 놀이를 한다. 두 놀이는 정월 보름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농사일을 마친 농군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이듬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경기도 이천 지방은 특히 거북 놀이로 유명하다. 남부 지방에서는 추석이 지나야 추수를 하기 때문에 추석 차례에 올릴 소량의 햅쌀을 얻기 위해서는 조그만 땅뙈기에 이른 벼를 일부러 심어야 한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8월 보름 이전에 수확이 가능한 ‘자채(紫彩)쌀’이라는 자주빛 나는 벼 품종을 많이 심었기 때문에 비교적 풍족한 추석을 맞이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거북 놀이의 중요한 배경 이 되었다. 추석날 낮에 15∼16세된 동네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이맘때쯤 익는 수수깡 잎으로 크고 작은 거북을 만들면서 놀이가 시작된다. 큰 것 두 개는 어미 거북과 아비 거북이고 작은 것들은 새끼 거북이다. 저녁이 되어 어둑해지면 이들은 거북으로 몸을 가리고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덕담을 건네고 바가지에 떡 등 먹을 것을 얻는다. 순례가 끝나면 동네 사랑채를 빌어 얻은 떡들을 나누어 먹는다. 물론 떡은 햅쌀인 ‘자채쌀’로 만든 것이어서 거북 놀이를 통해 그 혜택이 가난한 집 청년들에게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농촌과는 달리 어촌의 추석 행사는 풍성하지 못하다. 그러나 추석을 최대 명절로 여기는 점은 농촌이나 다를 바 없다. 단지 배를 부리는 집에서는 각자의 배에 모시는 ‘서낭’신에게 음식을 차려 어장이 풍성하도록 비는 것이 색다르다.

과거 서당에서 교육을 받던 시절에는 아이들도 추석을 맞이하여 며칠씩 쉬게 되는데 이때 아이들이 노는 놀이 중에 ‘원놀이’나 ‘가마싸움’ 등이 있었다. ‘원놀이’란 지방 수령을 흉내내어 모의 재판을 여는 놀이이고, ‘가마싸움’은 넓은 마당에서 이웃의 학동들과 편을 갈라 가마를 서로 부딪쳐 부서지는 쪽이 지는 놀이다. 이긴 쪽에서 그 해 과거 합격자가 나온다고 하면서 경쟁심을 높이기도 하였다.

추석날은 단오날과 마찬가지로 지방마다 주로 장터에서 씨름대회가 열린다. 이긴 사람에게는 장사란 칭호를 주고 상으로 황소, 광목, 백미 등을 준다. 씨름판 주위에는 소싸움, 투계(鬪鷄, 닭싸움), 닭잡기놀이 등도 벌어진다.

추석도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명절 값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석이 유구한 역사를 지녀온 우리의 대표적인 명절이지만 논농사보다는 밭농사를 위주로 하는 이북 지방에서는 본래 보리 추수가 끝난 후에 맞이하는 단오를 추석보다 더 크게 여겨왔고, 논농사 지 역인 남부 지방에서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모내기 방식인 이앙법(移秧法)과 이모작(二毛作)이 보급되어 추석 이후에야 비로소 벼 수확이 가능해지면서 중양절(重陽節)이나 정월 대보름으로 명절 행사를 넘기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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