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3 세시 풍속과 생업: 생산
  • 01 생업과 세시의 제 관계
  • 생업이 무시된 정신 편향의 그릇된 세시관
주강현

설과 대보름은 농경의 준비기, 그리고 단오 무렵이면 눈코 뜰 수 없는 농번기, 칠석과 백중 무렵이면 중경제초가 끝난 상태에서의 여름철 휴한기, 추석이 오면 수확기로 접어들고, 시월상달이면 추수를 끝내고 여유롭게 상달 고사로 천신한다. 각각의 세시들은 충분히 농경의 진척 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어업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세시의 외적 표현이 놀이와 음식 등이 포함된 축제와 제의, 아니면 그밖의 번거롭거나 각별한 모습의 속신 등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 내적 토대는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생업적 변화가 배경이 되고 있다. 모두의 결론은 이러하다. ‘정신’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세시를 바라봄에 있어 물질 생산의 토대를 무시하고 오로지 놀이라거나 속신 따위로만 간주하는 ‘정신 편향’의 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2) 주강현, 「정신의 세계관: 밥 없이 사는 인간의 이야기-근현대 물질민속연구사의 내재적 비판시론」, 『생활용구』 2, 짚풀문화연구회, 1998.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 리가 『동국세시기』를 지극히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와 별개로 『동국세시기』의 시대적·세계관적 제한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동국세시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오늘의 입장에서 『동국세시기』 방식의 세시기로만 만족할 만한 이유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가령 『동국세시기』에는 봄철 농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춘경(春耕): 농가에서는 이날부터 춘경이 시작된다(청명).

하종(下種): 농가에서는 이날로서 채마전(菜麻田)에 하종을 한다.

과연 춘경을 청명에만 할까? 남새밭에 한식날에만 씨앗을 뿌릴까? 봄에 춘경을 시작함은 당연한 것이기는 하나, 그 춘경의 범주에서 이미 논갈이는 그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 뻔하며, 채소 씨앗도 채소의 종류에 따라서 각기 파종 시기가 다른 것이다. 당대 농서의 전반적 수준에 비추어 ‘함량 미달’이다. 당대의 여러 농서들이 보여주는 생업적 수준을 동시에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이며, 세시기들에 반영된 농경 문화의 제 사례들이 그러한 농서의 사회·경제사적 기반과 무관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서에 반영된 세시의 맥락을 『동국세시기』류의 세시기와 연계하여 분석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즉, 생업이란 관점에서 기존의 세시기류를 재분석하고, 아울러 기존의 농서를 세시적 관점에서 재조망한다면, 양자의 결합으로 세시의 문화사는 보다 풍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지적 호기심을 물질적 기초에 두기보다는 정신적 영역에만 두려는 경향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보던 쟁기의 노동 관행보다는 굿판의 신바람이 한결 신명이 날 것이며, 힘겨운 두레 노동보다는 역시 대보름의 줄다리기가 훨씬 살맛나는 축제임에 분명하다. 일상에서 축제로, 평범함에서 별난 것으로, 금 기에서 열어젖힘으로, 닫힘에서 열림으로 나아가는 인간 본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어서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권장할 일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경향에 있지 않다. 우리의 학문이 식민지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학문적 굴절을 맛보았다면, 생산 관계에 관한 소외 현상의 원인 규명 역시 학문적 식민성에서 굴절된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 민속학의 자생이론, 즉 내재적 발전 경로가 차단된 상태에서 ‘정신 편향’의 연구가 20세기를 지배하였다. 가령 농서 편찬에서 우하영(禹夏永)이 보여주었던 바, 『천일록(千一錄)』의 지역적 분석틀 등의 엄밀성은 오늘의 입장에서도 매우 탁월한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전통에서 내재적 뿌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와 분단으로 말미암아 생산 관계에 관한 일정한 거리두기가 지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세시의 토대인 생업과의 관련성에 관하여 주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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